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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선관위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원 감사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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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소쿠리투표 의혹도 감사받으라”

민주당 “총선에 영향 미치려 해” 여당 비판

경향신문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9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회의를 마친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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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9일 전·현직 고위 간부 등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직무감찰)를 받기로 했다. 선관위원 만장일치로 감사원 감사 수용 거부 방침을 천명한 지 1주일 만에 여당과 여론 압박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다만 선관위는 선관위 고유 직무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받는 것은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원 전원이 사퇴하라는 여당 요구도 수용할 뜻이 없다고 했다.

선관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마친 뒤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에 발생한 선관위 고위직 간부 자녀의 특혜 채용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 의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의혹을 조속히 해소하고 당면한 총선 준비에 매진하기 위해 이 문제에 관해 감사원 감사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혜 채용 의혹 건에 한해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선관위는 “선관위는 행정부 소속 기관으로 출범했으나 (1960년) 3·15 부정선거가 발생해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재탄생했다”며 “따라서 행정부 소속 감사원이 선관위의 고유 직무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규정한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칙적으로는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적절하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선관위에 대한 감사 범위에 관해 감사원과 선관위가 다투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헌법에 대한 최종해석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30분가량 진행된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위원 간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일 회의에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이미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 이를 뒤집는 데 대한 부담감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이번 사안을 소재로 선관위에 대한 공세 수위를 연일 높여가고 있고, 여론도 선관위에 매우 비판적이어서 감사원 감사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노 위원장은 회의 후 입장을 바꾼 이유 등을 묻는 질문에 “보도자료 그대로”라고만 답한 채 선관위를 떠났다.

이로써 선관위는 국회 국정조사, 국민권익위원회 특별조사, 수사기관 수사, 감사원 감사 등 외부 기관들의 전방위적인 검증을 받게 됐다. 창설 60년 만에 최대 위기다. 지난달 언론 보도를 통해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선관위는 채용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의혹을 받는 인물이 점차 늘어나자 선관위는 특별감찰을 벌여 박찬진 전 사무총장, 송봉섭 전 사무차장 등 4명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전·현직 직원 전수조사에 나섰고 국회·권익위 등의 조사에는 적극 응하겠다고 했지만, 감사원 감사만큼은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완강히 거부해왔다.

노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선관위원 전원 사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노 위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자리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도 “당장 현안에 대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감사 거부와 관련해 선관위에 대한 검찰 수사요청까지 검토했던 감사원은 선관위가 입장을 바꾸면서 수사요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감사원은 다음주 중 행정·안전감사국 소속 감사관을 중심으로 감사팀을 꾸려 최대한 빨리 감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감사원은 다만 “감사 범위는 감사원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필요하면 특혜 채용 의혹 외 사안에 대한 감사에도 착수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 경우 선관위와 감사원의 갈등이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 감사원은 “이미 조사를 시작한 권익위와는 중복되지 않도록 협조해서 감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선관위 결정 이후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감사원 감사 전면 수용과 선관위원 전원 사퇴를 요구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김기현 대표는 “헌법재판소는 이미 정치재판소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그런 데 기대서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해보겠다는 노 위원장과 선관위원들이야말로 가장 빨리 청산돼야 할 적폐”라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선관위가 감사원의 전면 감사를 거부하고 특혜 채용 문제에 대해서만 감사를 받기로 하는 반쪽짜리 결정을 했다”며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 ‘소쿠리투표’ 논란, 북한 해킹 은폐 의혹, 성범죄를 저지른 직원 부실징계 조치 등에 대해서도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의 선관위 압박을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선관위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은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면 그만이다. 문제가 있으면 철저히 찾아내 처벌하고 바로잡으면 된다”면서 “이걸 기회로 법적 근거도 없이 감사원이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관위를 감사하려는 것은 명백한 권한 남용”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계속해서 감사원이 법에도 없는 권한을 남용하면 민주당은 감사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이날 회의에서 송 전 사무차장 후임으로 허철훈 서울시선관위 상임위원(58)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허 신임 사무차장은 선관위에서 선거국장·기획국장·감사관·기획조정실장·선거정책실장 등을 지냈다.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는 박 전 사무총장과 송 전 사무차장이 지난달 30일 동반 사퇴해 조직이 불안정한 점을 고려해 신속하게 인선한 것이다. 선관위는 조직 개혁을 위해 관례를 깨고 사무총장으로 외부인사를 영입하기로 했는데, 다음달 중순 이후에나 임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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