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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은둔형 외톨이 소행? ‘정유정 사건’ 그 후···은둔 청년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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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지난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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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 중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인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에게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5년간 외부와의 교류가 없었다거나 휴대전화에 친구 연락처가 없었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붙은 ‘은둔형 외톨이’라는 여섯 글자로 범행 동기를 손쉽게 설명하려는 유형의 기사들도 여럿 눈에 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유정과 같은 극단적 사례를 바탕으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고착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사자들은 이번 사건과,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경향신문은 지난 8일 은둔 경험이 있는 설야씨(활동명·24)·백곰씨(활동명·33)와 ‘정유정 사건 그 이후’를 주제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야씨는 코로나19 기간 3년간 은둔 생활을 했고, 백곰씨는 6개월씩 여러 번, 총합 3년의 은둔 경험이 있다. 비영리 민간단체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 더유스’의 은둔청년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본인들처럼 조금씩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던 은둔 청년들이 위축돼 다시 세상에 나오려하지 않을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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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경험 당사자 백곰(좌하단)씨, 설야(우하단)씨, 사람을세우는사람들더유스 사무국장(좌상단), 기자(우상단)가 8일 오후 ‘정유정 사건 그 이후’를 주제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화상회의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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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씨는 사건이 알려진 뒤 한동안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에 ‘은둔형 외톨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들어져서 최근 다시 은둔 생활로 돌아갔다는 친구가 힘들어 한 데에 사건의 영향이 있지 않나 짐작만 했다. 그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는 말이 떠올랐다”고 했다.

설야씨는 “사람을 죽인 건데, 동기를 쉽게 단정지어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이 강조된 기사를 볼 때면 ‘모든 은둔형 외톨이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설야씨는 “사람은 다 다르지 않나. 그런데 옛날에 게임하면 ‘게임중독’이라며 무조건 나쁘게 봤던 것처럼 모두를 나쁘게 볼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이들이 경험했던 은둔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무기력’의 감정과 닮아있었다. 설야씨는 은둔 생활 당시 “코로나19 시기가 끝나도 집에만 있으려고 했고, 게을렀고, 그러다보니 제 모습을 스스로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백곰씨는 ‘학교 가기 싫다’ ‘아르바이트 가기 싫다’는 생각에 하루 나가지 않은 게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됐다고 했다. “내일은 할 수 있을 거야 마주하고는 있는데 자꾸 미루게 되니 걱정이 커지고, 아침이 오는 게 무섭고. 가족들에게 미안하니 방 밖도 안 나가게 된 거죠.” 백곰씨가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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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관련 이미지.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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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타인을 해치고 싶다는 마음과 은둔 생활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냐’는 기자의 질문에 모두에게 전혀 연관이 없을 것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인과관계는 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백곰씨는 은둔형 외톨이인 사람과 아닌 사람이 아니라, 살인할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무조건 감싸서 ‘누구도 그럴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은둔형 외톨이 친구들은 저활력이 많다. 사람을 죽일 기운도, 에너지도, 분노도 없는 편이라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오히려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설야씨는 정유정 사건은 정말 드문 사례 중 가장 나쁜 사례라고 했다. 그는 “외톨이 생활을 하면 주변과 단절된다”면서 “그때 어떤 환경에 노출되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영향이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설야씨는 은둔을 하며 누군가를 해칠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나요?”라고 묻자 “저는 없죠”라고 대답했다.

은둔형 외톨이 연구의 권위자인 동남신경정신과 여인중 박사도 “비사회적인 것과 반사회적인 것은 다르다”며 “은둔형 외톨이들은 대체적으로 마음이 다치고 깨지기 쉬운 성향으로, 개인적으로는 나가서 뭐든 해결하는 성격의 사람보다 오히려 폭력성이나 범죄적 성향이 낮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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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한 모임공간에서 지난달 17일 은둔청년들이 다코야키 만들기 소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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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단체들 사이에서는 은둔 청년들 사이에서 이미 위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청년들 사이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모임에 다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김재열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예비 범죄자 취급을 하거나 교정하려는 시선이 생길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백곰씨와 설야씨도 비슷한 우려를 했다. 두 사람은 은둔을 하고 있거나, 회복하고 있는 이들, 또 괜찮아졌던 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라는 개념으로 사람을 낙인찍거나,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백곰씨는 “쉽지 않았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안 무서운 것, 덜 무서운 것,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며 “은둔하는 분들에게 말이 전해질 수 있다면, 그래도 알아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움츠러들지 말고 조금씩 세상 밖을 나와보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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