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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시든 식물 보며 ‘내 불행 탓’…우울증 아이를 다시 웃게 한 선생님[죽고 싶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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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초등교사 김대홍 씨

한국에서는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 갑니다.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곳곳에는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에게’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지친 당신이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담겠습니다. 죽고 싶은 당신도 외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중학생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친하게 지냈던 그 언니는 늘 주변의 어려움에 먼저 귀를 기울이던 사람이었다. 각자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매일같이 만나진 못했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언니의 영정사진 앞에 선 뒤에야,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김대홍 씨(42·여)는 3년 전 겨울의 기억이 또렷하다. 언니는 남편과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 언니가 우울증을 앓던 사실을 알게 된 것보다 김 씨를 더 괴롭게 한 건 ‘바쁘다’라는 이유로 언니가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를 나누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세상을 등지기 직전까지 언니가 느꼈을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 고통을 헤아리려고 할수록 죄책감은 커졌다.

언니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뒤 월요일 아침, 초등교사인 김 씨는 출근해서 공문을 한 통 받았다. 자살 예방 강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을 딱 보는 순간 마음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어요. 누군가 ‘해야 한다’고 등을 떠미는 것 같기도 했고요. 언니를 챙기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신청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김 씨는 3년째 자살 예방 강의를 하고 있다. 세종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김 씨와 8일 이야기를 나눴다.

동아일보

초등교사 김대홍 씨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기르던 식물이 시들기만 해도 ‘내 불행 탓’이라고 자책하던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김 씨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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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예방 강사 연수를 받은 이후 김 씨는 지금까지 15개 학교에 강의를 나갔다. 강의를 시작할 때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억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운을 뗀다. 동료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이 강의에서 자살 고위험군인 학생들이 보내는 신호와 쉽게 마음을 터놓지 않는 아이들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방법 등을 교육한다.

김 씨는 학교에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생활부장을 하면서 학폭 피해 학생들 가운데 마음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많이 봤다. 학교에서 정서행동검사를 시행하면, 우울감과 부정적 정서를 갖고 있다고 나타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김 씨가 가르치던 초등학생 A 양도 마찬가지였다. 정서행동검사에서 우울감 정도가 심하다고 드러난 학생들을 중심으로 상담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만난 아이였다. A 양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도 모두 ‘내 탓’을 하곤 했다. 과학 시간 숙제였던 ‘강낭콩 키우기’를 하면서도 그랬다.

아파트 화단에 심었던 강낭콩이 비바람에 흔들려 말라 시들어버리자 A 양은 말했다. “나는 불행한 존재고, 그래서 나에게 온 생명체도 불행하게 만든 것 같아요.” 강낭콩이 시든 뒤 일주일 동안 A 양은 매일 울며 극심한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였던 A 양은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깊은 아이였다. A 양은 엄마와의 기억이 없었다. A 양의 엄마는 아이가 3살일 때,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모국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우리 엄마가, 우리 이모가….’ 라는 말을 할 때마다 아이는 부러움과 함께 외로움을 느끼며 작아지곤 했다. 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아버지도 A 양의 양육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아이는 그룹홈에서 사회복지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 김 씨가 가장 먼저 한 건 A 양과 함께 식물원을 찾는 일이었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식물 ‘파키라’ 화분을 두 개 샀다. 그리고 A 양과 하나씩 나눠 가지며 약속했다.

“○○이는 선생님을, 선생님은 ○○이를 생각하면서 이 식물을 기르는 거야. 선생님은 화분에 물을 줄 때마다 ○○이가 건강하기를 기도할 거야.”

아이와 함께 ‘엄마의 나라’인 베트남 음식도 먹으러 갔다. 비록 엄마와 함께한 추억은 없지만, 낳아준 엄마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웃음도 되찾았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아이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작은 엽서에 그림을 그려 김 씨에게 조용히 건네곤 했다. 무럭무럭 자란 파키라 화분을 그림으로 그려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퇴근 후 선물을 포장해 아이를 만나러 갔던 시간들은 김 씨에게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다.

동아일보

김 씨가 동료 교사들을 상대로 자살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활용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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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자살 예방 강사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활동을 하면서 내 삶 속에서 나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 고민을 토대로 위기에 빠진 아이들을 일으켜 세울 힘을 찾게 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삶을 다시 살아갈 용기는 대단한 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다. 김 씨는 “주변 곳곳에 삶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며 “이들에게 안부를 묻고 고통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일에 함께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자살 예방 Q&A

내 가족, 친구, 이웃이 ‘죽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문을 받아 자살 예방과 관련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드립니다.

Q. 주변에 자살자의 유족이 있습니다. 조심스러워서 쉽사리 말을 건네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말을 조심하면 좋을까요?

A. 네, 자살 유족은 일반인보다 18배 더 우울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정서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입니다 누군가가 쉽게 툭 던진 한 마디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아래는 복지부가 조사한 ‘자살 유족에게 상처가 되는 말’ 1~5위입니다. 이 말들은 반드시 삼가주세요.

1위 “불효자다” “나약하게 자랐다” 등 고인에 대한 험담
2위 이제 그만 잊어라
3위 너는 그렇게 될 때까지 뭐 했어
4위 도대체 왜 그랬대
5위 이제 괜찮을 때도 됐잖아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애플리케이션(앱) ‘다 들어줄 개’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죽고 싶은 당신에게’ 시리즈의 다른 기사들은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Series/70030000000942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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