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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재파일] '8종 마약' 유아인 불구속 송치…법 앞에 무너진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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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칼날이 무뎠나, 유아인 방패가 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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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부터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 씨의 프로포폴 상습 투약 기록을 건네받은 경찰이 유 씨에 대해 본격 수사에 나선 건 지난 2월 5일부터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9일)로 125일째이고, 넉 달 하고도 나흘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을 명분으로 시작한 수사인데, 유 씨는 최소 8개 종류의 마약(류) 투약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한 차례 유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찰은 일단 불구속 상태로 유 씨와 공범을 검찰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유아인 머리카락 120개가량 압수"…최소 8종 투약



경찰은 지난 2월 5일 미국으로부터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던 유 씨에 대해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유 씨 소변 채취는 물론 모발까지 압수했는데,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정밀 감정을 보낸 머리카락 수는 120수(120 가닥) 가량이고, 모발길이는 대체적으로 10cm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통상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머리를 짧게 이발하는 행태에 비하면, 유 씨는 경찰 압수수색을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과수는 해당 모발들을 3cm 단위로 끊어서 정밀 감정을 실시했습니다. 국과수는 해당 모발 겉면에 마약 성분 등이 묻어 오염됐을지도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세척 작업 후 모발 내 대사체에 마약 성분이 있는지 정밀 감정을 실시했습니다. 검사 결과 코카인과 대마, 프로포폴, 케타민 등 모두 4개 종류의 마약(류)이 검출됐습니다. 또한 코카인의 경우 10cm 길이 모발 전 구간에서 검출된 것으로 나왔으며, 모발이 한 달에 1cm 자란다는 걸 감안할 때 유 씨가 거의 1년 가까이 장기간 코카인에 노출됐을 거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고 독성학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경찰은 이후 병‧의원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유 씨의 졸피뎀 상습 투약 정황도 포착했습니다. 또 보강 수사 과정에서 미다졸람과 알프라졸람 등을 투약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렇게 최소 8개 종류의 마약(류)을 투약한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는 너무나 확실한 증거들입니다. 경찰에서는 유 씨 모발을 추가로 압수해 검증을 맡기면 투약 성분이 추가로 검출될까 봐 차마 못 하겠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높게만 느껴졌던 법원의 문턱 : 압수수색 영장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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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독성학, 마약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해 보면, 과학적으로만 보자면 유 씨의 투약 사실은 명백히 입증된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왜 법적으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거나 영장 등 법 집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연거푸 나오는 걸까요.

우선 경찰이 유 씨 주소지 두 곳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한 건 지난 3월 7일이 유일합니다. 경찰 수뇌부에서는 타이밍이 좀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를 보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영장이 발부됐으니 서울 이태원동과 한남동 주소지 두 곳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습니다. 입국하던 유 씨에 대해 소변 채취와 모발 검사 등으로 급습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핵심 증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유 씨 지갑 등 개인 물품을 압수하는 데 그쳤습니다. 마약 정밀 감정 결과에서도 유의미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경찰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 있습니다. 경찰이 지난 2월에 이미 유 씨를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기각했습니다. 때문에 경찰이 원하던 압수수색 시점이 다소 지체된 측면이 있습니다. 법원은 당시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은 신중해야 한다는 등의 취지로 기각했습니다. 영장범죄사실을 보강해 재신청하느라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습니다. 일률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필로폰을 10여 차례 투약한 혐의로 구속된 작곡가 ‘돈스파이크(본명 김민수)’ 사례와 놓고 봐도, 유 씨의 5개 종류 마약 투약 혐의가 덜 중하지는 않습니다. 유독 유 씨에 대한 법 집행 절차가 지체 또는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게 일반 국민들의 법 감정입니다.

법원에 읍소한 유아인 : 구속영장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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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인 지인 미대 출신 작가

유 씨 주소지 압수수색에서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간 경찰은 유 씨를 정식으로 1차 소환 조사(지난 3월 27일)했고 이후 공범들 수사에도 공력을 쏟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범은 앞서 지난 2월 5일 귀국할 때 유 씨와 함께 입국했던 인물 4명입니다. ▲명문대 출신 작가 최 모 씨를 비롯해 ▲유명 유튜버와 ▲미국 국적 남성 등입니다. 이들 공범들 가운데 일부는 대마 양성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공범들을 상대로도 압수수색에 나서며 동시에 유 씨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중순(5월 16일) 유 씨를 2차 소환 조사하고 집으로 돌려보낸 뒤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본격 수사에 나선 지 100일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동안 혐의를 대체적으로 부인해 오던 유 씨 측은 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서는 일부 혐의를 인정하며 쉬운 말로 납작 엎드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판사가 공범 최 씨와 따로따로 심문을 진행할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함께 받겠다며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 수사팀이 느끼기에는) 이번에도 법원의 문턱은 높았을 겁니다.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 이민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이 부장판사는 “경찰이 관련 증거를 확보했고 유 씨가 기본적 사실관계 자체는 상당 부분 인정하며 대마 흡연은 반성하는 점을 감안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도 감안됐다고 이 부장판사는 판시했습니다. 유 씨는 구속영장 기각 이후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청사를 나서며 법원에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곳곳에서 경찰과 신경전



이렇게 놓고 보면 유아인 씨 또는 유아인 씨 측 변호인단이 경찰과의 법리 다툼에서 일단 앞선 것으로 보입니다. 변호인단이 대법원 판례 등을 분석해 법리 다툼에 영리하게 잘 대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코카인 투약 혐의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형량이 가장 높은 데다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경찰 입장에서는 증거 인멸 우려가 매우 크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유 씨 측은 투약 시기와 장소를 특정하지 않으면 유죄로 볼 수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공소제기를 한다면 공소사실이 특정 안 되는데 어떻게 유죄가 되느냐는,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어떻게 보면 일종의 법 기술적인 마인드입니다. 법원은 “코카인 투약 혐의는 다툼의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라며 일단은 유 씨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모발 대사체에서 구간마다 코카인이 검출됐는데도 말입니다.

경찰과 유 씨 측 소환 일정을 놓고 번번이 신경전을 벌였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27일 소환 조사와 지난 5월 16일 소환 조사 모두 소환 일정을 요란하게 바꾸며 경찰 수사팀을 압박했습니다. 비공개 소환인데 왜 기자들이 나와 있느냐, 사실상 공개 소환이라며 경찰에 거세게 항의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유 씨 측의 번외 신경전에 경찰이 끌려 다닌 것 아니냐는 평도 경찰 안팎에서 나옵니다.

유아인 씨의 공범으로 피의자 입건된 미국 국적 남성이 경찰 압수수색에 항의하며 법원에 준항고를 제기한 점도 경찰 수사팀 입장에서는 부담 요소입니다. 유 씨의 지인인 이 미국 국적의 남성은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일부 범죄사실을 문제 삼으며 또다시 법원에 공을 넘겼습니다. 법원의 판단이 이번에도 유 씨 측 손을 들어줄지 여부는 모르지만, 이렇게 될 경우 재판에서 관련 증거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합리화에 빠졌다"던 유아인, 치료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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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탈 행위들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그런 식의 자기 합리화 속에서 잘못된 늪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27일 밤 9시 15분쯤, 유아인 씨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소환 조사 후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에게 밝힌 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마약 투약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건 유 씨 스스로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알 것입니다. 국과수에서는 1명이 마약을 투약할 경우 투약자 수가 6배 단위로 늘어나는 것으로 어림잡아 추산하고 있습니다. 공범들이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는데,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은 혼자만의 범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약 투약자들은 서로 '상선'을 소개하며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마약 치료에 일시적으로나마 인간관계를 단절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마약중독치료전문가들은 배우 유아인 씨의 상태를 어떻게 진단할까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장기간 상습 투약한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에 완치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유 씨의 추가 투약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유 씨가 하루빨리 전문 병원에 내원해 치료를 받는 방법 말고는 뚜렷한 대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병원을 찾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아인 씨가 나름의 거액을 들여 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해 법리적 싸움에서는 일단 우위를 선점했을지라도 기소 이후가 진짜 본 경기인만큼 현시점에서 유 씨가 가벼운 처벌을 받을 거라고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구속 수사에 실패했다고 해서 1심 재판 결과가 가볍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보여줄 태도 또한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코카인 투약 장소와 시기를 특정할 증거가 보강된다면 이번 사건 흐름은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배준우 기자 gat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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