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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소득 상위 1%보다 3%가 더 똑똑해…능력주의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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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소득자 몫 커지는 것, 능력과 관계없다는 연구 결과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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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사람, 든사람, 된사람.

기성세대라면 학창시절 윤리 또는 도덕 교과서에서 본 3가지 유형의 인간상이 생각날 것이다. 각기 어떤 분야에서 재주가 뛰어난 사람, 학식이 풍부한 사람,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다. 교과서에서는 세 유형 가운데 인격을 갖춘 된사람을 가장 높이 쳤다.

그러나 삶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요즘엔 물질적 부가 풍요로운 ‘가진사람’(또는 쥔사람)을 모델로 삼는 풍토가 만연한 세상이 됐다.

3가지 인간상 가운데 누가 ‘가진사람’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을까?

일반적으로 어느 사회에서나 고학력일수록 소득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고학력자에겐 그만큼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높은 인지 능력(지능지수 등)이 소득을 높이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스웨덴, 이탈리아, 네덜란드 공동연구진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소득 최상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더 똑똑한 것은 아니다.

소득에 가족 배경·행운 영향 나이 들수록 커져

연구진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인지 능력과의 상관관계가 희박해지며, 소득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 아래 소득층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유럽사회학저널>(European Sociological Review)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최상위 소득층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인지능력의 고원(정체)’으로 지칭했다. 연구진은 이는 최고의 소득을 누리는 데는 능력 말고도 가족 배경, 행운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며, 이들 요인의 영향력은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가족 배경은 특히 교육이나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적 취향, 물적 지원 등을 통해 직업적 성공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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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과 소득의 상관관계 깨지는 분기점은?

스웨덴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 인지능력과 소득 사이의 상관관계가 더는 계속되지 않는 분기점은 연간 소득 6만유로(8200만원)였다.

이보다 소득이 높은 최상위 1% 소득층은 그 바로 아래 소득층(상위 2~3%)보다 인지 능력이 조금 떨어졌다. 인지능력 최고 점수를 받은 사람의 비율이 최상위 3%에선 23.2%이지만, 최상위 1%에선 17%로 조금 떨어진다. 반면 두 그룹의 소득 차이는 2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인지 능력은 소득에 비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소득 백분위 40~90% 사이에서는 인지 능력과 소득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18~19살에 군 징집검사를 마친 스웨덴 남성 약 6만명의 인지능력 시험 결과와 이들의 35~45살 사이 소득, 직업에 관한 데이터를 종합 분석한 결과다. 연구진은 “초기의 작은 성공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쇄되지 않고 불평등이 확대되며 승자독식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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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불평등 심화의 또 다른 요인

연구진은 또 고소득층의 경우 직업의 명망과 인지능력이 상관관계를 갖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예컨대 의사, 변호사, 교수, 판사처럼 직업 명망 점수(ISEI=국제 사회경제적 직업 지위 지수)가 70점 이상인 직업군에서는 소득과 인지능력 사이에 별다른 관계가 없다.

연구진은 “지난 몇년 사이 불평등 심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상위 소득자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능력이 고소득의 원천이라고 변호했지만, 이번 연구에서 우리는 최상위 소득층이 소득이 그 절반인 사람들보다 능력의 핵심인 인지 능력 면에서 더 뛰어나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선진국에서 상위 소득자들의 몫이 커지는 것은 능력과는 관계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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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능력이 높을수록 소득 수준도 높은 경향을 띠지만, 최상위 소득층에선 둘 사이의 상관성이 약해진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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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구는 스웨덴과 남성이라는 지역적, 인구학적 한계는 있지만 최상위층의 소득을 결정하는 데 능력 이외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분석이 가능했던 것은 스웨덴이 2000년대 초반까지 징병제도를 유지하는 바람에 징집 연령에 해당하는 남성의 인지능력시험 점수를 모두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들의 소득과 경력, 학력 사항 등에 관한 국세청, 교육부 자료를 취합한 통계청의 협조를 받아 표본이 아닌 전수 조사와 분석이 가능했다.

연구진은 다만 이번 연구는 개인의 창의성, 심리 상태, 신체 능력과 같은 비인지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고등교육이 덜 보급돼 있는 나라에선 노동시장에서의 성공과 능력 간의 관계가 더 약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93/esr/jcac076

The plateauing of cognitive ability among top earners

European Sociological Review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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