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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대통령실의 억지와 거짓말...엉망된 '직원명단 공개'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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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와 참여연대가 대통령실을 상대로 진행해 온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행정소송 변론이 마무리됐다. 대통령실은 3번에 걸쳐 진행된 재판 내내 거짓말과 억지 주장으로 일관했다. '국가기밀', '정치적 공격' 같은 황당한 논리를 대고, 있지도 않은 법규정을 들먹이고, 재판부에 거짓 답변서까지 내며 '직원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수차례에 걸친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도 무시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8월 대통령비서실의 5급 이상 직원 288명의 성명·부서·직위·직급·소관업무 등이 적힌 명단과 세부 조직도(이하 '직원 명단')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대통령비서실이 전면 비공개를 결정한 뒤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최고권력기관인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불공정 채용' 의혹 등 인적 구조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대통령실에서 이름과 직위 등이 공개된 직원은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뉴스타파 X 참여연대,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소송 돌입> 보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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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뉴스타파와 참여연대는 공동으로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시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 비약적 증대" 주장
대통령비서실은 먼저 "직원 명단이 공개되면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30일 준비서면 등에서 대통령비서실은 "부속실·의전비서관실·홍보기획비서관실 등은 대통령의 일정·동선 등 기밀을 인지하고 있는 바 이들에 대한 인적사항이 노출되는 경우 위와 같은 국가기밀 또는 보안사항이 유출될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행정관들의 인적사항이 알려지면 이익단체의 로비나 청탁·압력 등으로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크다",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기존 법원 판례와 배치된다. 법원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위험을 이유로 정보 비공개가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2008년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명단 공개' 소송이 대표적이다. 아래는 당시 판결문 내용 중 일부.

사면심사위원회 위원들이 누구인지가 일반에게 공개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위원들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관한 위험이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어서 이러한 위험을 이유로 정보의 비공개를 정당화할 수 없다.
- 서울행정법원 008구합31987 판결문


법원은 심지어 '법무부 사면심사위원 명단' 공개 소송에서 '공무원이 아닌 공공기관의 업무를 보는 민간인 명단까지도 정보공개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뉴스타파가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한 것보다 공개대상을 훨씬 넓게 본 것이다.

'직원 명단 공개가 사생활 침해'라는 대통령실의 주장 역시 판례에 어긋난다. 지난 2017년 법원은 '역사교과서 편찬심의위원회 명단' 공개 소송에서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사생활 보호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16누65987)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공무원 명단 공개를 거부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은 비공개 대통령기록물" 주장
대통령비서실은 "직원 명단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이어서 비공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대통령기록물이란 대통령과 대통령의 보좌기관 등이 직무 수행과 관련해 생산하거나 접수한 기록물이나 물품을 말한다. 따라서 대통령비서실 직원 명단도 대통령기록물로 판단할 순 있다. 하지만 대통령기록물은 공개가 원칙이다.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로 정하려면 별도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로 정하기 위해선 생산기관의 장이 기록물을 기록관으로 이관할 때 공개 여부를 분류해야 한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의 경우 생산기관의 장은 대통령비서실장이니 당연히 대통령비서실장이 직원 명단을 기록관으로 이관하며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했다는 기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대통령비서실은 직원 명단을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했다는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지난 4월 6일 2차 변론기일에서 재판부가 "비공개 기록물로 분류한 게 맞다면 증거를 제출하라"고 했지만, 대통령비서실 측은 "확인 후 제출하겠다"고만 한 뒤 끝까지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대통령지정 '예정' 기록물이라 비공개" 주장
대통령비서실 주장 중에는 "직원 명단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가 지정 및 지정될 예정'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역시 법 규정과 판례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르면, 공개할 경우 국익 침해 우려가 있는 대통령기록물에 대해선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보호할 수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최장 30년까지 열람·사본 제작·제출이 제한된다. 그런데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기간은 대통령 임기 종료 다음 날부터 시작된다. 임기가 4년이나 남은 윤석열 대통령실의 기록물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이 문제의 직원 명단을 '지정기록물'이라 부르지 못하고, '가 지정 및 지정될 예정인 기록물'이라고 하는 이유다.

문제는 더 있다. 현재 대통령기록물법 어디에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가 지정 및 지정 예정인 정보'에 대한 내용은 없다는 점이다. 원고(뉴스타파, 참여연대)를 대리하는 최용문 변호사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가 지정 및 지정될 예정이라는 이유로 비공개한다는 논리는 대통령기록물법에 대한 대통령비서실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판례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9년 시작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의전비용 및 특활비 내역 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에서 청와대 측은 "대통령지정기록물 대상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는 이유를 들어 정보 비공개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향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공개 대상 요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아래는 판결문 내용 중 일부.

이 사건 각 정보들이 현재까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지 않은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중략).. 피고의 주장과 같이 일부 정보들이 '대통령지정기록 대상으로 의견이 제시되거나 분류된 기록'으로서 향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거나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이러한 정보들을 대통령지정기록물에 준하여 정보공개법 제9조 1항 1호에 따른 비공개대상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
- 서울행정법원 2019구합60158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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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전경. 현재 대통령실은 소속 직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정보공개 막으려 재판부에 거짓말
대통령비서실은 직원 명단의 공개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 절차도 방해했다.

지난 1월 19일 1차 변론기일에서 재판부는 대통령비서실 측에 '비공개 열람·심사'를 위한 대통령실 직원 명단 자료 제출을 명령했다. 정보공개법 20조 2항에 의하면, 재판장은 공개청구된 정보를 소송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먼저 살펴보고, 비공개의 필요성이 실재하는지 등을 심사할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 이번 소송에서 공개청구 대상은 대통령비서실 5급 이상 직원 288명이다. 따라서 대통령실은 재판부 명령에 따라 288명의 명단을 법원에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비서실 측은 지난 4월 4일 준비서면에서 "이 사건과 동일하게 이 사건 정보에 대한 비공개 처분이 적법한지 여부가 쟁점인 다른 사건에서, 해당 재판부는 비공개 열람·심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라고 썼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다른 사건'은 뉴스타파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가 대통령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대통령실의 주장은 '정보공개센터가 진행하는 소송에서는 재판부가 비공개 열람·심사를 하지 않기로 했으니, 뉴스타파와 참여연대가 제기한 소송에서도 비공개 열람·심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뉴스타파 확인결과 이런 대통령비서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정보공개센터 사건 변론조서를 입수해 살펴보니, "재판장이 다음 기일에 이 사건 정보에 관한 비공개 열람·심사를 진행하겠다고 고지했다"고 되어 있었다. 정보공개센터를 대리하는 임자운 변호사도 "비공개 열람·심사를 안 한다는 얘기는 재판 과정에서 언급된 적이 없다. 오는 9일 변론기일 때 비공개 열람·심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원, "인사자료 전부 내라"...대통령실은 끝내 거부
대통령실은 재판부가 비공개 열람·심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자 '버티기'로 맞섰다.

지난 4월 6일 2차 변론기일에서 대통령비서실은 비공개 열람심사용 자료라며 총무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 직원 각각 5명의 인사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인 직원 288명의 명단을 모두 제출하라는 법원 명령에 불응한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은 "직원 명단이 없다. 전체 직원의 인사자료를 재판부에 내려면 캐비닛 하나를 다 들고 와야 한다. 예시로 10명 자료만 제출하겠다"고 했다.

법원은 대통령비서실의 불성실한 자료 제출을 비판했다. 재판부는 "원고(뉴스타파, 참여연대)가 청구하는 정보는 직원의 성명·부서·직위·직급·소관업무 등이 적힌 명단과 세부 조직도다. 여기에 필요한 정보만 모아 새로 표로 만들어서 제출하면 된다. 기껏해야 서류 몇 장 아닌가. 다음 기일까지 제출하라"고 했다. 대통령비서실 측은 "다시 제출하겠다"면서도 "직원별 소관업무는 제출할 수 없다"고 맞섰다. "대통령비서실에는 사무분장표가 없는 부서도 있다. 없는 걸 제출할 순 없다"는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정부 조직에 사무분장표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우리 법원도 간략한 사무분장표는 모두 있다. 일단 있는 것이라도 제출하라"고 재차 명령했다. 그제서야 대통령비서실은 "알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통령비서실은 또 다시 법원 명령에 불응했다. "법원 지시대로 직원 명단을 표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 자체가 위법하거나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지난 5월 30일 대통령비서실이 법원에 낸 준비서면 내용 중 일부.

재판부에서 추가로 요청하는 인사정보에 관한 문서(직원 명단 및 세부 조직도)는 피고가 관련 법령에 의해 생산·관리하고 있던 문서가 아닌 바, 그 작성에 관하여 법적 근거 측면에서 의문이 있는 문서입니다. 만약 법원에서 원고(뉴스타파, 참여연대)가 청구하는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이 확정된다면 피고는 법원 판단을 근거로 새로운 인사정보에 관한 문서를 작성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와 같이 법원의 확정 판결이 있기 전 새로운 인사정보를 작성하는 것은 법률에 근거 없는 문서를 작출하는 것으로 부적절해 보입니다. 피고(대통령비서실)가 이와 같은 문서를 제출하는 것은 위법하거나 부적절합니다.
- 대통령비서실 준비서면 (2023.5.30)


각종 판례를 확인해 보니, 대통령실의 이 주장은 억지에 가까웠다. 당장 지난 2010년 대법원 판결 내용과 배치된다. 대법원은 비슷한 소송에 대해 "전자적 형태로 보유·관리되는 정보의 경우 공공기관에서 그 기초자료를 검색해 청구인이 구하는 대로 편집할 수 있으며, 그러한 작업이 당해 기관의 컴퓨터 시스템 운용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그 공공기관이 공개청구 대상 정보를 보유·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 기초자료를 검색·편집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의 생산 또는 가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대법원 2009두6001)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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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와 참여연대의 '대통령실 직원 명단'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대통령비서실의 비공개 처분 결정 통지서. 대통령비서실은 직원 명단을 제출하라는 법원 명령에도 불응했다.
뉴스타파·참여연대 변호인, "사법부의 권한이 대통령실에 침해당했다"
대통령비서실은 재판 변론기일이 모두 끝날 때까지 대통령실 직원 288명의 명단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지난 1일 3차 변론기일에서 재판부는 재차 자료 제출을 명령했지만, 대통령비서실은 거부했다. "피고(대통령비서실)는 지난번에 자료의 일부(직원 10명의 인사자료)만 예시로 제출했다. 이번에는 직원 명단을 표 등 형태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갖고 있는 인사자료 전부를 제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재판부 요구에 대통령비서실 측은 "제출할 수 없다"고 또 버텼다. 이미 제출한 직원 10명의 인사자료만으로 비공개 열람·심사를 하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더는 소송을 끌 수 없다고 판단한 법원은 대통령실 직원 10명의 인사자료로만 비공개 열람·심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최용문 변호사는 "사법부의 권한이 대통령실에 의해 침해당한 꼴"이라고 말했다.

헌법 101조에 의하면, 사법권은 법원에 속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법원의 제출 요구는 사법권에 의한 법원의 명령이므로 헌법을 존중한다면, 법원의 요구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대통령비서실이 법원의 비공개 열람·심사를 위한 제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을 무시하는 전제에서만 가능합니다. 아마도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처사가 가능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 최용문 변호사 /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소송' 원고 측 변호인


지난 1일 3차 변론기일을 마지막으로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 소송의 변론 절차는 마무리됐다. 1심 선고는 오는 8월 17일 나올 예정이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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