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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의선 매직’ 다시한번 통할까…‘80세’ 기아, 62년전 명차 부활 추진 [왜몰랐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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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생 기아, 내년에 ‘팔순’
숫자 8의 해 “부활에 딱 좋아”
K-360·브리사 부활 또는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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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왼쪽), 기아가 부활 검토중인 브리사와 K-360 [사진출처=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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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간 사라졌던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주의 유산을 되살려내 현대차 정통성을 재확립시킨 정의선 회장이 이번에는 기아 정통성 확립에 나선다.

현대차는 8일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서울 강남)에서 한국 첫 독자 개발모델인 ‘포니’를 비롯해 현대차의 헤리티지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포니의 시간’ 전시를 개최했다. 49년만에 복원한 ‘포니 쿠페 콘셉트’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정의선 회장도 전날 전시장을 먼저 찾았다. 정 회장은 ‘포니의 시간’ 전시 오프닝 행사에서 “포니라는 독자 모델을 개발하면서 축적된 정신적·경험적 자산은 오늘날의 현대차를 만들었다”며 이번 전시회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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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의 시간’ 전시 오프닝 겸 ‘리트레이스 시리즈’ 출간 기념회에서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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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현대차에 이어 기아도 헤리티지를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냐는 질문에 “기아도 삼륜차와 브리사 등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준비 과정이 필요해 내부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현대차 포니처럼 기아의 유산인 삼륜차와 브리사를 복원할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포니 쿠페 콘셉트가 공개된 이후 기아의 두 차종도 복원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두 차종은 내년에 부활한 모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기아는 1944년생이다. 내년에 ‘팔순’이 된다. 국내 기업들은 10년 단위로 창립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숫자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수비학(Numerology)과 기독교·불교·도교에서 십진법의 숫자 8은 부활, 재생, 회복, 새로운 시작, 행운, 완성을 의미한다. 눕히면 무한대(∞)가 된다. 영원을 뜻한다.

2륜→3륜→4륜, ‘바퀴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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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60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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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아는 모든 바퀴를 섭렵했다. 첫 시작은 두 바퀴 자전거다.

기아 모태는 광복 직전 1944년에 설립된 경성정공이다. 자전거로 유명한 삼천리자전거의 전신이기도 하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에서 자전거 부품을 생산했다.

한국전쟁 기간에 부산으로 옮긴 경성정공은 1952년 4월 사명으로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다. 이곳에서 국산 최초 자전거 ‘3000리호’를 생산했다.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기아산업은 자전거, 리어카 등을 생산했다.

기아산업이 자동차 대장정에 나선 시기는 1959년이다. 일본 혼다와 오토바이 생산 기술제휴를 맺었다. 같은 해 마쓰다와 삼륜차 생산 기술협력 계약도 체결했다.

1962년 1월에는 국내 최초로 앞바퀴가 1개이고 뒷바퀴가 2개인 삼륜차 ‘기아 마스터 K-360’과 이륜 오토바이 ‘기아혼다 C-100’을 조립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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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 [사진출처=포스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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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는 중형 삼륜차인 T-2000과 경소형 삼륜차인 T-600모델을 내놨다. T-2000은 대박났다. 1973년까지 1만5925대가 판매됐다.

삼륜차 성공으로 자금력을 확보한 기아산업은 경기도 시흥시 소하리에 공장을 만들었다. 소하리 시대가 열렸다.

1974년에는 소하리 공장에서 후륜구동 승용차 ‘브리사’를 내놨다. 브리사는 1981년에 전두환 신군부의 산업합리화 조치로 강제 단종되기까지 현대차 포니와 함께 택시로도 인기를 끌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는 주인공 김만섭(배우 송강호)의 택시로 등장했다. 영화 촬영용 브리사는 해외 중고차 거래사이트를 통해 수입된 74년식 모델이다.

1980년에는 승합차 대명사가 된 ‘봉고’를 출시했다. 1987년에는 프라이드로 승용차 사업을 본격화됐다.

디자인 경영 넘어 디자인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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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쿠페 복원 모델과 기념 촬영하는 정의선 회장(왼쪽)과 조르제토 주지아로 [사진출처=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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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듬해에 부도로 쓰러졌다. 현대차에 인수된 기아는 연구개발 통합과 플랫폼 공유 등으로 기술력을 키우고 원가절감 활동을 펼쳤다. 1998년 2조원에 달하던 영업적자는 이듬해인 99년 흑자로 돌아섰다.

하지만 국내 RV시장 위축과 환율하락 등 악재가 겹쳤다. 소비자들에게 현대차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하면서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체질 개선’을 통해 위기를 돌파했다.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로 취임한 정 회장은 ‘디자인 경영’을 추진했다. 현대차와 차급도 성능도 비슷하다면 ‘디자인’에서 차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 회장은 디자인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섰다. 첫 시작은 당시 크리스 뱅글, 발터 드 실바와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여겨지던 피터 슈라이어다.

정 회장은 독일로 직접 날아가 설득하는 ‘삼고초려’ 끝에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으로 데려왔다.

당시 정 회장은 “아무리 좋은 차를 만들어도 디자인이 나쁘면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슈라이어 사장을 영입했다.

슈라이어는 기아차 디자인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며 기아차에 날개를 달아줬다. 기아는 연구개발비의 15~20%도 디자인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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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엠블럼 변천사 [사진출처=기아, 편집=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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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는 ‘디자인 매직’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뒤 현재는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중이다.

정의선 회장은 할아버지의 유산인 포니를 부활시키고 진화시켜 현대차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기아에도 같은 전략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유산을 부활시켜 정통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에 걸 맞는 청사진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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