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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문화의 窓] 체리와 참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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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이투데이

어린 시절 대관령 아래에서 자랐다. 그때는 이 세상 모든 마을이 그렇게 산속에 있는 줄 알았다. 아니 그곳이 산속인 줄도 몰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처럼 농촌 마을도 있고, 어촌 마을도 있고,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사는 도회지 마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도 어릴 때의 기억이 인생 전부를 지배해 도회지에서 빌딩 사이로 해가 지는 것을 보아도 마음속으로 그려지는 풍경은 어릴 때 산속 마을에서 대관령 너머로 해가 지고 둑이 넘치듯 밀려오는 노을이 먼저 연상되었다.

그건 과일을 볼 때에도 그렇다. 시장에서 매실을 보고 체리를 보아도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 그런 과일나무들이 우거져 있던 고향집 마당가 풍경이다. 이른 봄 산책로에서 꽃을 볼 때도 그렇다. 이상기후 현상으로 봄이 더 짧아졌다고 하지만, 꽃이 피는 순서를 보면 봄도 여러 계단을 밟고 온다. 가장 이른 봄으로 매화와 산수유가 피는 봄이 있고, 살구꽃과 앵두꽃이 피는 봄이 있고, 복숭아꽃과 사과꽃이 피는 봄이 있다.

일찍 꽃이 피어 일찍 익는 과일이 있고, 조금 늦게 피어 늦게 익는 과일이 있다. 매실은 일찍 꽃이 피어 열매도 일찍 익는다. 요즘 꽃이 한창인 밤은 늦게 피어 늦게 익는다. 그렇지만 꽃이 일찍 핀다고 과일이 반드시 빨리 익는 것도 아니다. 꽃이 핀 날로부터 열매가 가장 빨리 익기로 따지면 앵두와 체리를 따라갈 과일이 없다. 꽃은 매화보다 늦게 피어도 열매는 매실보다 훨씬 빨리 익는다.

며칠 전 고향에 살고 있는 형님이 열매가 탐스럽게 익은 체리나무 사진을 형제 대화방에 올렸다. 새들이 달려들어 나무에 그물망을 씌운 모습이었다. 사진을 보자 바로 옛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는 종교에 대한 관용 정책을 펼치고, 재판과정에 고문을 근절한 인권 계몽 군주였다. 정치도 잘 펼쳐 합리적인 국가경영으로 프로이센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성장시켰다. 그 공적을 기려 후세 독일인들은 지금도 그를 ‘프리드리히 대왕’ 혹은 ‘영광의 프리드리히’라고 부른다.

그런 프리드리히 왕도 참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참새가 왕실 체리동산에 날아와 체리를 콕콕 찍어먹는 걸 보고 화가 나서 저 무엄한 참새를 모두 잡아버리라고 명령했다. 그해는 괜찮았는데, 다음해 엄청나게 늘어난 해충들이 체리나무의 겨울눈까지 싹싹 먹어버렸다. 삼년째부터는 봄이 되어도 새싹이 돋아나지 못해 나무가 모두 말라죽고 말았다. 그제야 왕은 참새가 체리동산의 해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새라는 것을 알았다.

참새 일화는 또 있다. 1955년 농촌을 방문한 마오쩌둥은 추수를 앞둔 논에 앉아 곡식을 축내는 참새를 모기, 파리, 들쥐와 함께 4대악으로 지목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국가지도자의 지시로 대대적인 박멸작전이 펼쳐졌다. 참새 둥지를 찾아 알은 깨뜨려버리고, 자라는 새끼들을 죽이고, 어른 참새를 그물로 잡아 아주 엄청난 수의 참새가 사라졌다. 둥지에서 깨뜨린 알 말고도 한 해 동안 2억1000만 마리의 참새가 소탕됐다. 둥지의 알까지 따진다면 10억 마리도 넘는 참새가 소탕됐다.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다음해와 그다음해 급격히 불어난 해충으로 흉년이 들었다. 삼년 만에 다시 이웃나라로부터 20만 마리의 참새를 사들여 들판에 풀어놓았으나 원래 있던 참새의 수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며칠 전 신문에서 우리나라 참새의 수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기후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들판에 뿌리는 농약 때문이라고 한다. 참새는 일 년에 세 번 번식한다. 사람이 일부러 둥지의 알을 깨뜨리고 그물을 쳐서 잡는 것도 아닌데 이토록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참새의 수가 절반 줄어들 정도라면 일년 내내 들판에 뿌려지는 농약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이것은 그냥 참새만의 방앗간 이야기가 아니다.

[사외필진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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