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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경식의 이세계 (ESG)] ‘분산에너지’ 특별법, 독립적 전기위원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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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5월25일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역사적 배경과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경향신문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발전 부문(도매시장)은 형식적 경쟁을 하면서 판매부문(소매시장)은 정부·여당의 규제를 받는 한전 독점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환경(미세먼지)과 탄소중립이 세계적 어젠다가 되기 전에는 전력 공급의 제1원칙이 안보급전과 경제급전이었다. 그 결과 연·원료의 해외 의존을 줄이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하고, 싸게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석탄 발전을 늘렸다.

이러한 전력원은 냉각수가 필요하고(원자력) 석탄 수입에 유리한 항만이 필요했다. 그 결과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임해 지역에 발전소가 건설됐다. 그러나 전력 소비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중앙급전을 위해 고압 송전망이 필요했다. 하지만 2013년 밀양 송전탑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지방에서 수도권으로의 송전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런 와중에 2015년 12월12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본회의에서 195개 당사국이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게 됐다. 2050년 탄소 순배출을 ‘제로’로 하고, 2030년까지는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기로 약속을 했다. 자연히 석탄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했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화석연료임에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석탄의 절반 수준인 관계로 석탄발전 감축과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성·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당분간은 늘려야 할 실정이다.

기후변화에 따라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는 주파수도 불안정하고 전력 소비 패턴과 시차도 맞지 않아 이를 조정하고 남는 전기를 저장할 설비(ESS)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전기 저장용 ESS는 화재가 빈번히 발생하는 등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정부도 저장용 ESS 보급을 위한 지원을 줄였다. 더구나 한전이 전력 판매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보니 민간에서 ESS에 투자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재생에너지 설비가 많이 보급된 제주도부터 재생에너지 발전을 중단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육지에서도 재생에너지가 많은 호남지역에서 이러한 일이 시작됐다. 전기 생산과 소비의 시차를 줄여서 서로에게 이득을 준다고 시작했던 스마트그리드는 아직도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2010년, 정부는 2030년까지 스마트그리드를 전국적으로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제주도(2010~2013년)에 이어 2019~2023년 광주(8000가구)와 서울(3000가구)에서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ESS와 지능형 전력계량 시스템(AMI)에 투자할 예산 부족 때문이다. 예산이 부족한 이유는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을 안 하고 한전이 직접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전이 전기 판매를 계속 독점한다는 전제로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올 9월에 시범사업이 종료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한편으로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기업들이 국제적 비영리 민간단체들이 주도하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싸게 공급해주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자연조건도 불리한데 정부 정책과 시장구조가 이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는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하지 않고 있고(민영화가 아님), 전력시장의 도매가격(SMP) 결정 구조는 아무리 싼 전기라도 가장 비싼 발전연료 가격을 지급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가격도 이러한 SMP에 영향을 받는 데다가 송배전 요금이 너무 비싸 수요 확산을 통한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지금까지의 긴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더 이상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대규모 전력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성과 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ESS와 AMI가 필요하지만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나야 하는데 한전의 판매 독점과 가격결정 구조로 너무 비싸다. 이제 전기는 공급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맞춰줘야 한다.

이번에 여야 합의로 통과한 분산법은 아쉬운 점도 많지만 이러한 전력산업, 전력시장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전력 이송의 수요를 줄이기 위해 지자체는 대규모 건물 신축·대수선 시 자기 지역 내의 분산전원을 일정 비율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분산전원은 집단에너지, 재생에너지, ESS, 통합발전소(VPP), 중소형 원자력(SMR) 등을 말한다. 분산지역 내 전기 수요를 늘리기 위해 지역별로 송전요금을 반영해 전기요금도 차별화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설정해 그동안 한전이 독점했던 전기 판매를 지역 내에서는 발전사와 소비자가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 다소비 기업은 지방으로의 이주 동인을 갖게 됐다.

이 법은 앞으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준비해 1년 뒤에 실행된다. 이 법이 송전 부담을 줄이고, 전기 생산이 많은 지역의 주민들에게 요금을 할인해주고, 전기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를 허용해 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 탄소중립과 RE100을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더욱 큰 의미는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성·변동성이 만물인터넷(IOE), 클라우드, 인공지능(AI)과 결합되고 이를 모바일 앱을 통한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에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이 육성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주시해야 할 점은 이러한 작업과정이 기존의 이해관계자(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가 아니라 곧 출범할 ‘독립적인 전기위원회’에서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전은 지금처럼 중앙급전 방식을 기반으로 품질 좋은 전기를 공급해주어야 하고, 정부는 새로운 규제기관을 중심으로 미래지향적인 중장기 전력산업 발전 정책을 수립·추진해야 한다.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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