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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잊을 만하면 또... 계속되는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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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전국에서 최소 5건 발생
걷는 습관, 저품질 부품 등 고장 유발
수내역 방지장치 미작동, 점검 힘써야
한국일보

8일 오전 경기 성남시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에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가 나 출입이 통제돼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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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분당선 수내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을 태우고 올라가던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뒤로 움직여 3명이 크게 다치고 11명이 경상을 입었다. 경찰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운영ㆍ관리업체가 기기 이상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는 점검만 잘하면 막을 수 있어, 안전 검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면 충격 20배"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는 최소 5건이다. 가장 최근인 2019년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퇴근 시간에 역주행해 20명 넘게 다쳤다. 2018년에는 KTX 대전역 1층 플랫폼에서 2층으로 향하던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뒤로 미끄러져 8명이 부상했다. 2017년에도 서울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서 에스컬레이터가 뒤로 3m가량 밀리는 사고가 있었다.

역주행은 대부분 구동 체인 파손, 혹은 모터 고장으로 일어난다. 특히 에스컬레이터 탑승자가 걷거나 뛰는 등 지속적으로 충격을 가하면 계단과 모터를 연결하는 체인이 끊어지거나 기기를 한 방향으로 끌고 올라가는 모터 동력이 감소할 확률이 높아진다. 황수철 한국승강기대 교수는 “사람이 움직이면 가만히 서 있을 때보다 발판에 가해지는 충격이 20배 증가한다”며 “백화점보다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가 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비용을 아낄 요량으로 설치된 가짜 혹은 저품질 부품도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2013년 39명의 부상자를 낸 ‘야탑역 역주행 사고’는 보수정비업체가 수리 과정에서 감속기와 모터를 연결하는 ‘피니언기어’를 강도가 떨어지는 모조품으로 교체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승강기 전문가는 “에스컬레이터 관리는 최저가 입찰을 한 민간 위탁업체가 맡는 경우가 많아 마진을 맞추기 위해 저렴한 제품을 오래 쓸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방지장치는 기본 조건... '꼼꼼한 점검' 필수


역주행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도 대책을 내놓긴 했다. 2014년 7월부터 새로 설치하는 에스컬레이터에 보조 브레이크 격인 ‘역주행 방지장치’를 의무적으로 달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는 적지 않은 비용과 기술적 이유로 일괄 설치가 어려워 방지장치 없이 운영되는 곳이 상당하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자료를 보면, 2013년까지 전국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총 2만6,128대이다. 이 중 코레일이 운영하는 철도ㆍ지하철 역사에는 역주행 방지장치가 다 구비됐지만, 서울교통공사 등의 관할 구간에는 아직 설치가 진행 중이다.

장치가 있어도 점검ㆍ관리를 소홀히 하면 사고를 피할 길이 없다. 수내역 사고가 그런 사례다. 이날 사고 당시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방지장치는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부실 제품이 유통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하철이 시민의 발로 자리 잡은 만큼, 내실 있는 에스컬레이터 점검은 필수다. 에스컬레이터의 안전 점검 주기는 보통 한 달인데, 2019년 서울대입구역과 이번 수내역 사고 모두 발생 직전 실시한 검사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전문가는 “역주행은 미리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후진형’ 사고”라면서 “관련 부품을 모니터링해 사전에 이상 여부 감지가 가능한 기술을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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