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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1300개 철공소, 문래동 떠나도 ‘함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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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구, 철공소 ‘통째로 이전’ 용역 착수, 10월 본격 진행
700개 이상 업체 “찬성”에도…전문가들 “성공 어려워” 우려
청계천 복원 때 상인들 뿔뿔이…도심 제조단지 상실 문제도

경향신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철공소 집적지 전경. 최근 이 일대는 재개발을 위한 지구 정비 사업이 추진 중으로, 영등포구는 철공소를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인근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등포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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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가 문래동 철공소들의 ‘통째 이전’을 추진한다.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으로 한꺼번에 이전시키고, 공장들이 나간 자리는 재개발한다는 것이다. 영등포구는 1200곳이 넘는 문래동 철공소들을 한번에 옮기는 내용의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이전’ 타당성 검토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지난달 31일 착수했다고 8일 밝혔다.

문래동에는 1980~1990년대 2500곳 넘는 금속가공·제품제조업체가 성업했다. 현재는 1279곳이 남아 있다. 이들 업체의 90% 이상이 임차 공장으로, 임대료 상승 압박과 개발 압력 등으로 인해 점차 밀려나는 실정이다. 공장이 밀집한 문래동 1~3가에서는 지구정비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들 업체를 한번에 한곳으로 옮겨 금속가공업 생태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 영등포구의 설명이다. 주조·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도색 등 공정의 각 단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영등포구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사전 조사를 한 결과 700개가 넘는 곳이 이전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옮겨야 한다면 개별 이전보다 ‘통째로 이전’을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청계천 복원 당시 송파구 가든파이브로 이전한 상인들의 전례를 언급하며 우려를 표했다. 업태와 이해관계가 다양한 만큼 섬세하고 면밀한 조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산업생태계를 통째로 이전한다는 구상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때인 2003~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면서 청계천 상인들은 가든파이브를 대체지로 제안받았다. 하지만 공사비가 오르면서 상인들은 예상보다 더 높은 임대료를 내야 했고, 상가 공간이 업종에 맞지 않는 등의 문제로 상당수가 입주를 포기한 바 있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시스템공학 교수는 “을지로나 문래동처럼 상호관계가 잘 형성된 산업생태계가 개발에 직면하면 기존 질서를 잃을 우려가 크다”며 “거래처나 이해관계, 건물·토지 소유 여부에 따라 원하는 것이 모두 달라서 세밀하게 조사하지 않으면 상인들의 단체 이전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인 박은선 서울과기대 교수도 “가든파이브에 입주했다가 청계천으로 다시 돌아온 분들, 을지로 개발 당시 문래동으로 옮긴 분들 등 도심 개발 때마다 이전대책이 미흡해 상인들이 ‘뺑뺑이’를 도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도심 제조단지의 기능이 사라진다는 문제도 있다. 배 교수는 “도심의 산업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태계가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라며 “이 업종들을 도심에 유지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영등포구는 오는 10월 용역을 끝내고 국회, 관계부처, 서울시와 소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용역 수행기관인 지역사회연구원과 한국산업관계연구원은 이전 후보지로 어디가 적합한지, 사업비는 얼마나 들지, 업체별 수요는 어떤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구청, 외부 전문가, 이해관계자 등 10명으로 자문단을 구성해 추후 용역 내용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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