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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한국청소년축구 40년 전에도 세계4강 쾌거 [이종세의 스포츠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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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사단 예상 깨고 멕시코에서 기적 연출
온 나라가 축구 열풍…전두환은 정치적 악용
타임머신 타고 되돌아본 감동의 그때 그 순간


만 40년 전 이맘때 한반도는 축구 열풍에 휩싸였었다. 1983 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6월 2~19일 멕시코)에서 박종환(87·당시 47) 감독의 한국대표팀이 예상을 깨고 4강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김은중(44)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국가대표팀이 2023 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아르헨티나) 8강전에서 나이지리아를 1대0으로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40년 전 ‘멕시코 4강’과 견주어보면 그 감동과 열기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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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이 성남시민프로축구단 초대 사령탑 임명장 수여식에서 꽃다발을 전달받은 후 미소 짓고 있다. 사진=김영구 기자


무엇보다 4년 전 폴란드에서 열린 2019 FIFA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정정용(54) 감독의 한국대표팀이 사상 첫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이강인(당시 18세)이 대회 최우수선수(MVP)에게 주는 골든볼을 수상할 만큼 한국축구가 훌쩍 커버려 그만큼 국민에게 주는 각인 효과가 줄었다고 할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꼭 40년 전 그때 한반도의 축구 열풍을 되돌아본다.

험한 길 뚫고 연전연승…온 국민 환호
하지만 ‘멕시코 4강’까지의 길은 험로(險路)였다. 한국팀이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가 북한의 자격정지 덕분에 가까스로 본선에 턱걸이한 것부터 마음에 걸렸다.

1981 FIFA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호주)에 나갔다가 예선탈락을 했으나 2연속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박종환 감독은 1983년 멕시코대회 참가에 앞서 종로구 견지동 대한축구협회 건물 5층에 있던 기자실에 출국 인사를 하러 왔다.

당시 필자를 포함한 언론사 기자들은 기대를 걸지 않은 채 한국팀의 예상 순위를 물었다. 이에 박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네 팀이 겨루는 조별리그를 통과해 8강에 오르면 목표를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전 직전대회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데다 한국이 속한 A조에 개최국 멕시코와 유럽의 스코틀랜드, 전 대회 개최국 호주 등 강호들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 언론사들도 한국팀의 초반 탈락을 기정사실화하고 취재기자를 파견하지 않았고 다만 축구협회가 윤번제에 따라 출장비를 부담하는 1명 동행 기자(한국일보 안봉환 기자)만 데리고 갔다.

신연호 활약…홈팀 멕시코, 강호 호주 등 연파
아니나 다를까. 6월3일 오후 3시, 한국팀은 멕시코 중부 해발 2680m의 고산도시 톨루카의 네메시오 디에스경기장에서 열린 A조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대2로 나가떨어졌다.

한국팀은 전반을 잘 버텼으나 후반 15분과 33분 도빈에게 거푸 2골을 내주고 무너진 것. 박종환 감독은 멕시코의 고산지대를 의식, 선수들에게 몇 달간 마스크를 씌우고 서울 효창구장 등에서 고지 적응훈련을 시켰으나 그 노력이 무위에 그치는 듯했다.

이어 6월5일 낮 12시 멕시코 시내 아스데카 경기장에서 벌어진 개최국 멕시코와의 2차전. 7만1000여 명의 관중은 멕시코를 응원했고 전반 10분 상대 공격수 레이나에게 선취골까지 허용했다.

이 경기에서 지면 2패로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겨도 예선탈락을 피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전반 29분 여수 출신 노인우가 왼발 터닝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렸고 경기 종료 1분 전 신연호가 역전 결승골을 머리로 받아 넣어 홈팀 멕시코에 2대1로 승리했다.

극적으로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것. 사기가 오른 한국팀은 6월 8일 톨루카 네메시오 디에스 경기장에서 열린 호주와의 3차전에서는 전반 16분 김종건의 선취골, 후반 29분 김종부의 결승골로 2대1로 이겨 2승1패, 조 2위로 8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한국팀은 6월11일 몬테레이 테크롤로히코 경기장에서 열린 B조 1위 우루과이와의 8강전에서 신연호의 선취골과 결승골로 2대1로 이겨 준결승에 올랐다. 한국팀은 6월 15일 몬테레이 테크롤로히코 경기장에서 열린 세계 최강 브라질과 준결승에서도 전반 14분 김종부가 선취골을 넣어 또 다시 기적을 연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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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부가 1983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준결승 브라질전 선제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FIFA 플러스 영상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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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8분 뒤 브라질 지우마르 포포카에게 동점골을 내준 뒤 후반 35분 마리뉴 항에게 결승골을 허용해 1대2로 물러났다. 한국은 6월 18일 3·4위전에서도 폴란드에 1대2로 져 4위에 만족해야 했고,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를 1대0으로 꺾고 우승했다.

김포공항부터 카퍼레이드…박종환 감독도 흥분
하지만 당시로서는 한국축구의 세계 4강은 대단한 것이었다. 한국축구가 FIFA가 주관한 세계 규모대회에서 처음 4강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청소년축구가 이후 4강에 오른 것은 36년 만인 2019년 폴란드 세계대회에서야 가능했다. 아울러 박종환 사단의 멕시코 4강은 전두환의 철권통치에 숨죽여야 했던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고 전두환 역시 이를 대국민 민심 무마용으로 역이용, 귀국하는 선수단에 대규모 환영 행사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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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 환영 기자회견 모습. 사진=한국정책방송원 국가기록


김포공항에서부터 귀국 기자회견이 열린 남산 하얏트 호텔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박종환 감독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뜨거운 환영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선수단 전체가 청와대 초청 등으로 환대받은 것은 불문가지였다.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전두환으로서도 한국축구의 세계 4강은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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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 고향에서 펼쳐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환영 카퍼레이드 모습. 사진=춘천MBC 영상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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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생도 시절 축구선수였던 전두환은 이후 박종환을 가끔 청와대로 불러 금일봉 등으로 격려했고 박종환 역시 퇴임 후 백담사 등에서 은둔 생활하던 전두환을 자주 찾아가는 의리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두환은 2021년 11월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박종환 감독 역시 7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가진 사재를 잘못 투자했다가 거의 날리고 지금은 어려운 노후를 보내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 하고 있다.

이종세(용인대 객원교수·전 동아일보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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