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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日제철소 기술, 죽을 각오로 배워 … 50년전 쇳물 기적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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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코 쇳물 생산 50년 ◆

매일경제

1. 1973년 6월 9일 고로에서 쇳물이 흘러나오자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사장(가운데)과 임직원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2. 1973년 6월 9일 촬영한 포항종합제철 포항 1고로 전경. 3. 1974년 6월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국내 최초 초대형 유조선 진수식.  4. 1978년 11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10만1번째 생산된 포니가 출고를 앞두고 있다. 포스코·HD현대중공업·포니정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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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9일 대한민국의 첫 쇳물이 쏟아지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용광로에 불을 지핀 지 12시간 만인 오전 7시 30분쯤 출선구에서 시뻘건 쇳물이 나왔어요. 박태준 사장님과 현장 임직원들이 다 같이 만세를 외쳤습니다."

송연수 전 포항종합제철(포스코 전신) 주임(80)은 50년 전 포항제철소 1고로(高爐·용광로)에서 첫 쇳물(용선)이 생산되던 장면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당시 고로의 출선구를 여는 일을 맡았다. 포항제철은 기술도, 자본도, 경험도 없는 대한민국이 포항 영일만 황무지에서 기적처럼 세워올린 최초의 종합제철소였다.

송 전 주임은 1973년 2월 포항제철에 입사해 1999년 퇴직할 때까지 고로에서 근무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첫 쇳물이 탄생하는 순간은 기적과도 같았다"면서 "출선 후 쇳물이 모두 빠져나오면 다시 출선구를 막아야 하는데 기술도, 경험도 없던 터라 출선구를 막을 때 무척 애를 먹었다"며 웃었다.

김일학 전 기성(83)은 이때 쇳물이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각목으로 바닥을 문지르는 고된 일을 맡았다. "각목으로 쇳물이 눌어붙지 않게 하는 일은 너무 고됐습니다. 뜨거운 쇳물 가까이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열을 견뎌내기 쉽지 않았죠. 매일 주야로 작업해야 해서 손에 물집이 잡혔고 탈진 상태에 이르렀어요. 하지만 당시로선 나라를 위한다는 사명감 때문에라도 이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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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고 박명하 전 포스코 이사는 생전 포스코 사보 인터뷰 기사에서 "제철설비에 대해 아무것도 없었고, 대학에서 배운 게 아무 소용 없었다"며 "고로가 가동되기 전 6개월간 일본 동부 연안에 위치한 한 제철소로 연수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밤을 새워가며 필사적으로 공부했다"고 밝혔다. 박 전 이사는 "모든 장치와 기기들이 처음 보는 것이었고 퇴근 후에는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연수생들끼리 교육자료를 교환하며 우리 나름의 기술표준서, 작업표준서를 만들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9일로 포항제철 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온 지 꼭 50년이 됐다. 흔히 제철업에서 고로는 제철소 심장, 쇳물은 피에 비유된다. 포항제철 고로에서 생산한 뜨거운 쇳물은 조선, 자동차, 가전, 건설 등 각 산업계로 흘러 들어가며 대한민국이 제조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부는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기 위해 6월 9일을 철의 날로 지정했다.

정부는 1960년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산업에 기초 소재를 제공하는 철강산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일관제철소 건설이 추진됐다. 한국 철강산업은 1970년 이전까지는 보잘것없었다. 1918년 가동을 시작한 황해도 송림군 소재 겸이포제철소가 한국 최초의 제철 생산시설이었지만, 전쟁 무기로 쓰이던 선철을 생산해 일본에 공급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970년 4월 1일 포항제철소 착공식 때 했던 "민족 숙원사업인 제철소 건설 실패는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다. 실패하면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소위 '우향우 발언'에선 당시 정부와 포스코가 가졌던 절박감이 묻어난다.

포스코가 성장하고 철강 생산이 늘어나면서 자동차, 조선 등 국내 주요 제조업도 함께 커졌다. 포스코가 생산한 양질의 철강재를 국내에서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오금석 한국철강협회 실장은 "철이 없으면 자동차, 조선, 기계, 건설산업 등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느 나라에서든 철은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자동차, HD현대중공업 등 현재 글로벌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제조 기업은 포스코의 철강 생산을 기점으로 대형 선박 건조와 고유 차량 모델 생산에 성공하게 된다. HD현대중공업은 포스코에서 후판을 공급받아 1974년 6월 대한민국의 첫 대형 선박인 대형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를 진수했다. 목선만 건조하던 나라가 강선(鋼船)을 만들게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같은 해 국내 최초의 고유 차량 모델인 '포니'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에서 16번째 자동차 고유 모델 생산국이 됐다. 이후 1988년에는 연간 생산량이 100만대를 넘는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는 데 이르렀다.

포스코 철강 생산 이후 산업지표를 살펴보면 철강업이 한국 제조업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나온 1973년 국내 조선 건조량은 1만2000CGT(표준화물선환산t수), 자동차 생산은 2만5000여 대에 불과했다. 지난해 포스코의 철강 생산량은 3864만t(국내)이었다. 철을 재료로 만드는 조선 건조량은 781만CGT, 자동차 생산은 375만7065대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말 그대로 '제철보국(製鐵報國·철로 국가에 공헌한다)'의 임무를 지난 50년간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셈이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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