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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사설]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자” 지금 더 절실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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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대표되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新)경영 선언’이 어제 30주년을 맞았다.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시키고 한국 산업계에 일대 충격을 주었던 ‘이건희 신경영’의 시작이었다.

해외 유명 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교재에도 오른 이건희식 경영의 핵심은 ‘양(量)에서 질(質)’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꾼 것이었다. 대충대충 만들어도 국내에서는 1등이던 삼성이 해외 시장에서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 2류, 3류 제품 취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이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삼성 사장들을 소집해 격정적으로 쏟아낸 신경영 구상을 계기로 삼성은 ‘품질 경영’과 ‘초격차’에 매진했다.

휴대폰 불량률이 11%에 달하자 수백억원어치 휴대폰을 쌓아 놓고 ‘화형식’까지 하면서 최고의 제품에 도전하는 조직 문화를 구축했다. 삼성이 세계 일류 기업의 반열에 오른 것도 이처럼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최고 품질을 만들어낸 신경영 덕분이었다. 질을 위해서는 양도 포기할 수 있다고 각오했지만 오히려 최고 품질을 달성함으로써 매출도, 자산도 30년 새 10배 넘게 늘고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겨루는 초우량 기업이 됐다. 삼성의 변신은 다른 대기업과 산업계에도 충격의 파도를 일으켜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중저가 이미지로 통하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 1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 경제에 자신감과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만든 변화 이전까지 우리는 2류, 아류 의식에 젖어 있었다. 그 정도가 우리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꾸자’는 이건희 선언 이후 우리는 글로벌 일류 국가를 넘보고 있다. 국민들의 의식 자체가 한 단계 성장했다.

이건희 신경영이 우리 사회에 던진 통찰과 메시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오히려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국제 질서는 30년 전 삼성이 느끼던 위기감을 능가한다. 미·중 패권 갈등과 안보 긴장 속에 수십년간 유지되어온 세계 경제의 큰 틀이 바뀌고 있다. 격변의 시기에 중국에서 빠져나온 돈이 일본, 인도, 베트남 등지로 향하고, 미국·EU·일본이 반도체 자립 등을 위해 다 뛰고 있다. 안으로는 가계·기업·정부 다 합해 5500조원이 넘는 빚더미, 심화되는 저출산 고령화는 ‘한국적 현상’으로 고착될 판이다.

30년 전 벼락처럼 던져졌던 이 회장의 선언처럼 지금도 한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혁신이 절실하다. 나라가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던지고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새 질서의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모두가 자신에게 올 수 있는 일시적 손해를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모두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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