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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비명계 제압 노린 이재명, 확실한 자기 사람 찾다 ‘이래경 무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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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래경 카드’ 꺼냈을까

조선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던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지난 2018년 3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그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선동’ 유죄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석방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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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혁신위원장에 임명한 이래경 사단법인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하루도 안 돼 사퇴했지만, 민주당 내 갈등은 6일 더 커졌다. 비명계는 이 대표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논란 소지가 분명해 보이는 인물을 이 대표가 혁신위원장에 임명한 배경을 두고 의문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사법 리스크’로 거취 압박을 받는 이 대표가 혁신을 앞세워 자기를 흔드는 비명계를 제압하고 당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 대표의 ‘이래경 카드’에 대해 이날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가 확실한 ‘이재명 편’이면서 혁신을 위해 자기 손에 피 묻히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을 고른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친명과 비명 갈등을 정리하고 당을 이재명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인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야권에서는 온건 성향의 고 김근태(GT)계로 분류되지만, 개인 사업체를 운영하며 당 외곽에서 강성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2018년엔 유사시 국가 기간 시설 타격 등 내란 선동 혐의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국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페이스북과 언론 기고에서는 “자폭한 천안함” “코로나 진원지가 미국” 등 음모론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계속해 왔다.

이 이사장은 또 지난 2019년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선거법 위반 재판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을 때 ‘이재명 지키기 운동’을 제안했다. 대선 경쟁이 한창이던 2021년 11월엔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 윤석열의 스코어는 완벽하게 100:0″이라고 쓰기도 했다. 비명계의 한 의원은 “이 이사장이 기본적으로 GT계지만, 열렬한 이 대표 지지자임이 분명했다. 친명 혁신위를 만들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대표 측은 검증 과정에서 이 이사장이 페이스북 등에 남긴 글을 상당 부분 파악하고도 임명을 강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천안함 자폭·조작 주장까지 사전 확인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 다른 것은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 못 할 정도의 결격 사유라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쇄신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뼈를 깎는 고통”이라며 “아주 온건하고 평탄하게 살아온 분과는 좀 결을 달리해야 한다”고 했다. 강성 인사가 아니면 당 혁신이 어렵다는 취지다.

하지만 당내 극소수에게만 공유된 혁신위원장 인선은 채 하루를 못 갔다. 비명계의 한 의원은 통화에서 “이 대표가 돈 봉투 사건, 김남국 코인 사태, 본인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쫓기자 무리수를 둔 것 같다”며 “그게 아니면 이번 혁신위원장 임명 과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최근 돈 봉투와 코인 사건에서 온정주의에 빠져 리더십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에 이 대표 자신도 이번 달에만 선거법 위반 재판이 세 번 있고, 다음 달에는 ‘대장동 사건’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재판도 본격화된다. 당대표 출마 때부터 “사법 리스크로 원활한 당대표 직무 수행이 가능하겠냐”는 문제 제기를 받은 이 대표로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 대표 책임론이 제기됐지만, 민주당은 이날 혁신위원장 새 후보를 찾겠다고 했다. 당 관계자는 “원점에서 꼼꼼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을 주는 대신 적어도 연말까지는 대표직을 지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당헌 당규상 당대표 잔여 임기가 8개월 미만일 때 사퇴하면, 전당대회를 새로 열지 않고 중앙위원회에서 새 당대표를 선출한다. 임기 2년의 당대표에 작년 8월 취임한 이 대표가 12월까지 대표직을 지키면, 중앙위에서 사실상 후임 당대표를 지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직접 발표한 혁신위원장이 9시간여 만에 사퇴하자 비명계는 “추천과 검증 과정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5선 이상민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혁신 자체가 출발부터 이렇게 상처 받았는데 쉽게 출발이 되겠냐. 곪고 터지고 하는 건 이 대표 리더십이 온전치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대표가 하루라도 빨리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영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이재명이라는 특정 개인을 위한 정당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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