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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3살부터 돈 벌러 공장 나가고 일과 책 놓은 적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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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인터넷 ‘스타 서평가’ 김미옥씨

한겨레

김미옥씨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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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삼십 년 이상 다니던 직장에서 명퇴한 김미옥씨의 지난 4년은 놀랍다.

직장을 그만둘 무렵 시작한 에스엔에스(SNS) 페이스북에서 바로 ‘스타 서평가’로 자리를 잡더니 그 뒤로 시전문 계간지 연재와 북 콘서트 기획 등 문학·출판 관련 오프라인 활동이 이어졌다. 그가 페이스북에서 서평을 쓰면 즉각 판매에도 영향을 미쳐 매달 출판사에서 홍보를 기대하며 보내는 책도 백여 권 정도 된단다.

“2019년에 페북을 시작했는데 얼마 안 돼 친구 신청이 크게 늘고, 서평을 쓰면 알려지지 않았던 책이 갑자기 팔리더군요. 10여년 이상 창고에 쌓여있던 시인 한보리 시집이 갑자기 다 매진되었다는 소식도 있었고 소설가 하응백 선생님은 자신의 소설 <남중>이 제 글이 나간 다음 날 200권이 팔렸다고 직접 글을 올리셨죠. 진보 연구자들이 꾸리는 현대사상연구소 세미나 모음집인 <현대사상>도 페북에 제 글이 오르고 나서 한 질에 25권인 총서 주문이 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페북하기 전에는 생각도 못 한 일이었어요.”

2021년 창립한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자문위원이기도 한 그를 지난 2일 경기 성남시 서현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3월 조성기 작가가 낸 소설 <1980년 5월24일> 서평을 쓰고 작가에게 북 콘서트를 제안해 진행까지 맡았다.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역사소설인데요. 요즘은 그 시대를 제대로 쓸 작가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조 선생님을 알리려 북 콘서트를 생각했죠.” 이 소설 역시 그가 서평을 쓰고 바로 다음 날 역사소설 분야 베스트셀러가 됐단다.

그가 서평을 올리면 공감의 댓글이 쏟아진다. “글을 쓸 때 늘 가독성을 먼저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전문가 서평이나 비평은 너무 어려워 일반 독자들은 읽기 힘들어요. 그 때문에 알려져야 할 책들이 묻히죠. 제가 페북을 시작한 것도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소개하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누구나 공감하게 제 경험과 보편적인 이야기를 글에 많이 담으려고 합니다.” 그는 “서평은 책의 내용만 쓰면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작가가 책을 왜 썼고, 글쓴이는 어떻게 느꼈는지가 들어가야죠. 저는 책읽기와 글쓰기는 금방이지만 생각을 모으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그는 페북 시작 뒤 거의 매일 한 편씩 서평을 올렸다. “책을 빨리 읽는 편입니다. 문학이나 역사책을 많이 보는데요. 하루 서너권씩 읽을 때도 있죠.”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는 전작주의 독서를 추구한다고도 했다. “서평을 쓸 때 작가의 다른 책도 같이 보려고 해요. 책 구매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많을 때는 책 사는 데 한 해 800만원을 들이기도 했죠.”

그의 글이 에스엔에스에서 공감을 얻는 데는 글쓴이의 인생 스토리가 녹아있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다. 부산에서 3남2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 6학년 때부터 공장을 다녔단다. 중학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어려운 집을 돕기 위해 학원 등 여러 부업을 병행했단다.

30여년 다닌 직장에서 명퇴하고

2019년 페북 열고 서평 큰 호응

책 판매로도 연결돼 출판사 주목

조성기 작가 등 북콘서트 기획도

“좋은데 알려지지 않은 작가 초점”


“어려운 형편에 중학 못 가고 일할 때

‘날 성장시키는 것은 나뿐’이란 생각”


“초등 6학년 이후로 일을 쉰 적이 없어요. 13살에 공장 다닐 때 일 끝내고 집에 가려는 데 비가 왔어요. 그런데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더군요. 그때 나를 성장시키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시절 이후로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어요. 책은 저의 친구였지요. 책이 가장 좋았어요.” 독서에 처음 흥미를 느낀 것은 초등 4학년 때란다. “반에서 문예반장을 했는데 선생님이 학생들이 학교 비치용으로 집에서 가지고 온 책들을 고르는 일을 저에게 맡겼어요. 그때 한국단편문학전집을 봤는데 일제강점기 소설 중 우리 집처럼 못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았어요. 동화와 달리 사실적이어서 충격을 받고 전집 10권을 바로 다 읽었죠.” 그는 자신의 글이 주목받는 데는 ‘빈곤 스토리’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고생한 이야기가 페북에서 공감이 빠른 것 같아요. 페북 이용자들이 40대 이상이 많잖아요. 제 글을 보고 울었다는 분들도 있었죠.”

20대 때부터 20년 동안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그는 요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페이스북 친구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즐겁단다. “2019년 전에도 간헐적으로 공황장애약을 먹었는데 지금은 먹지 않아요. 페북 때문에 바빠서 그런지 찾아오지 않네요.”

2018년 별세한 고 김서령 작가와 함께 10년 이상 ‘철학 공부 모임’을 했다는 그는 자신이 에스앤에스 글쓰기를 한 데도 김 작가 영향이 있다고 했다. “김 선생님이 제 글이 좋다고 페이스북 글쓰기를 권하셨거든요.”

한겨레

김미옥 서평가.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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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페이스북 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말도 했다. “어렵게 살아오면서 주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젠 돌려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오는 9일 서울 홍익대 앞 에이치-스테이지에서 북 콘서트를 여는 홍소영 작가의 첫 책 <이보다 더 좋을 수 있다-싱글맘의 마음 보고서>(홍소영)도 그가 페이스북에서 “글이 좋다”며 먼저 출간 제안을 해 출판사와 연결되었단다. 그는 이 행사의 진행도 맡는다.

출판사 14곳의 출간 제의를 뿌리치고 ‘의리’ 때문에 신생출판사와 첫 책을 낼 계획이라는 그에게 ‘책읽기의 효능’에 관해 물었다. “사람들이 잘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것은 독서입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를 보세요. 불량배로 살다 감옥에서 책을 많이 읽고 삶이 바뀌었잖아요. 책의 힘은 엄청납니다.”

자신의 글을 읽고 독서를 하게 되었다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즐겁다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인생의 책’을 물었다. “20세기 정신 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자전 에세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입니다. 똑같이 굶주려도 어떤 사람은 더 배고픈 사람에게 자신의 빵을 나눠주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인간의 품위를 지키고 또한 세상을 지켜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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