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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단독] ‘한예종 설치법’ 반발에 한발 뒤로… “박사 빼고 석사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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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한예종, 관련법 제정 위해 고육책

관련법상 ‘대학’ 아닌 ‘각종 학교’

석·박사 과정 대학원 설치가 핵심

한예종 “졸업생 학위 위해 해외로”

예술대학측 ‘특혜법·독식법’ 반대

“박사 과정 미설치, 눈 가리고 아웅”

문화예술계 독식 우려 폐기 촉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석·박사학위 과정을 두도록 하는 내용의 ‘한예종 설치법’ 제정안을 둘러싸고 사립대학 중심 전국 예술대학이 강하게 반발하자 문체부와 한예종이 석사학위 과정만 운영하는 대안까지 준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숙원인 한예종 설치법이 이들 대학의 거센 반대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자 ‘박사과정 신설 포기’란 고육책을 마련한 것이다. 한예종 설치법을 ‘한예종 특혜법·독식법’이라며 반대하는 대학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면서 국회 논의와 법 제정에 협조를 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예종 설치법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이하 예교련)은 문체부와 한예종의 박사 과정 미설치 방안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에 불과하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세계일보

지난해 10월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30주년을 맞아 서울 성북구 석관동 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진 총장이 한예종의 청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한예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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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설치법’ 제정을 둘러싼 극명한 입장 차이

6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의 한예종 설치법 논의를 앞두고 문체부와 한예종은 해당 법안이 제정돼도 박사 과정은 운영하지 않는 방안을 준비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김윤덕·박정,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이 발의한 한예종 설치법의 국회 논의와 통과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이들 법안은 한예종에 일반대학처럼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을 둘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예술영재 조기 발굴·교육 등 ‘실기’ 중심 전문 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1993년 개교한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이 아니라 문체부 산하 국립예술학교인 ‘각종 학교’여서 대학원 설립과 석·박사학위 수여를 할 수 없다. 대학교에 해당하는 ‘예술사’ 과정에 학사학위가 인정될 뿐 예술전문사의 경우 석사학위를 받지 못하고 국내외 대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에만 석사 학력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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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측은 “이 때문에 졸업생 상당수가 석·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해외로 유학가고, 반대로 한예종에 오고 싶어하는 외국 학생 유치에도 걸림돌이 된다”며 “예술전문사 과정을 마쳐도 석사학위 미인정에 따라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현재 한예종 6개원(음악원·연극원·영상원·무용원·미술원·전통예술원) 27개 학과에 재학 중인 예술전문사는 860여명이며, 졸업생은 매년 250명 정도다. 김대진 총장이 지난해 10월 개교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에서 유학 오는 학교를 목표로 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유이다.

한예종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예술대학 중에도 뒤늦게 박사 과정을 개설한 곳이 있는 등 어느 조직이나 사회든 혁신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냐”며 “설치법이 제정되면 다른 대학과 학생·교수 교환 및 학점 교류, 나아가 여건이 될 경우 공동 학위제 등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술대학들은 문체부의 전폭적 재정지원과 자율성 등으로 교육 여건이 뛰어난 한예종이 ‘실기 중심 전문 예술인 양성 학교’란 설립 취지와 달리 대학원까지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고 비판한다. 한예종이 우수한 인재를 싹쓸이하고 예술계를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예교련과 한국예술교육학회는 최근 “한예종 설치법은 예술교육의 자율적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한예종의 박사과정 신설은 학계와 평론계 등 문화예술계 오피니언 리더 형성에 밀접한 영향을 끼쳐 문화예술계 권력을 독점·독식할 것”이라는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1999년(15대 국회)과 2005년(17대〃)에도 한예종 설치법이 발의됐다 폐기된 데는 예술대학들의 격렬한 반대가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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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한예종 ‘박사 과정 미설치 방안’ 마련…예술대학 측 “말도 안 돼” 일축

이에 문체부는 한예종과 협의해 예술전문사 입학정원(378명)의 10%(37명) 수준으로 운영할 것이라던 박사 과정은 신설하지 않는 양보안을 마련했지만 예술대학들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이대영 예교련 상임대표(중앙대 예술대학원장)는 “(문광위) 법안소위가 열리기 전날 문체부에서 (그런 내용을 알리는) 전화가 와 예교련 임원들 의견을 모았는데 ‘말도 안 된다’는 것으로 얘기가 끝났다”고 전했다. 이어 “석·박사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다 완강한 반대에 부닥치니 오로지 법 통과를 위해 양보하는 것처럼 석사만 하겠다는 모습이 우습게 비쳐진다. 법 제정 후 박사 과정도 가능하도록 개정하면 그만 아닌가”라며 한예종 설치법은 문체부와 한예종이 자기들 이익만 우선시한 법안이라고 폐기를 주장했다.

물론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이기호 교수처럼 한예종 설치법을 찬성하는 예술대학 교수들도 있다. 한예종에서 행정조교로 11년가량 일하기도 한 이 교수는 “양쪽 실상을 다 아는 입장에서 (예술대학들이) 예술교육의 하향 평준화가 아닌 상향 평준화를 원한다면 한예종 설치법을 반대하기보다 한예종처럼 양질의 예술교육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스스로도 변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이 상임대표는 “하향 평준화 하자는 게 아니라 현 체제에서 한예종과 예술대학이 전체 예술교육 진흥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라면서 “한예종 설치법이 만들어진다고 상향 평준화가 되는 게 아니다”고 이 교수 주장을 일축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예술대학과 학생들의 반발 등으로) 법안소위 논의가 무산된 날 일부 문광위원이 대안 마련을 주문함에 따라 (박사 과정 미설치를 포함해 여러 방안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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