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6·25전쟁서 산화한 형제, 73년 만에 나란히 현충원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현충일에 고 김봉학 일병 안장식

동생인 김성학 일병 바로 옆에

국방부, ‘호국형제’로 명명

경향신문

2011년 7월 19일 강원도 양구 월운리 수리봉에서 발굴된 고 김봉학 일병 유해의 최초 식별 당시 모습.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6·25전쟁에서 산화한 형제가 전쟁 발발 73년 만에 현충원 묘역에 나란히 잠든다.

국방부는 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유가족, 정부 주요 인사, 군 주요 지휘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 김봉학 일병(형) 안장식을 엄수했다.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동생인 김성학 일병 바로 옆에 묻혔다. 국방부는 두 사람을 ‘호국형제’로 명명했다.

6·25전쟁 전사자 형제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묻히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2015년 강영만 하사와 강영안 이등상사의 유해가 나란히 안장된 이후 8년 만이다.

김성학 일병의 유해는 전사 직후 수습돼 1960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지만 형인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찾지 못해 현충원에 위패만 모셔둔 상태였다.

김봉학 일병의 유해는 2011년 강원도 양구군 월운리 수리봉에서 처음 발굴됐고, 2016년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수습됐다. 이후 발굴 유해와 2021년 대구·경북 지역 유가족 집중찾기 기간에 채취한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정밀 분석한 결과 신원을 김봉학 일병으로 확인했다.

김봉학 일병은 1951년 9월5일 5사단 35·36연대와 미 2사단 9연대가 북한군을 상대로 수리봉 일대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격전을 벌인 ‘피의 능선 전투’에서 전사했다.

형을 뒤따라 1950년 11월경 입대한 동생 김성학 일병은 국군 8사단 21연대 소속으로 평안남도 순천 인근까지 진격 후 중공군의 2차 공세로 38선까지 철수했다. 이후 1950년 12월24일 38선 일대를 방어하는 강원-춘천 부근 전투에서 산화했다.

고인들의 막냇동생 김성환씨는 “죽어서도 사무치게 그리워할 두 형님을 넋이라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어 꿈만 같다”며 “두 형님을 나란히 안장할 수 있도록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참석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김승겸 합동참모본부의장,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정상화 공군참모총장 등도 참석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