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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아이들 “현충일이 무슨 날이에요”… 매뉴얼도 없는 계기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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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관리·지원 소홀 지적

시도교육청 교육 지침 ‘제각각’

수업 콘텐츠 등 별도 배포 없어

교사 임의로 자료 준비해 수업

교과목 일정 등 바빠 병행 난항

“현장서 교육 안 해도 확인 못 해”

“교과목 수업과 담임 상담도 병행하느라 바쁜 와중에 계기교육까지 진행하긴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홍보 영상 하나 틀어주고 말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아서 효과가 없는 게 사실이에요.”

서울 강서구 한 고등학교 담임교사 이모(30)씨는 6일 현충일을 앞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들이 현충일을 쉬는 날로만 알지 어떤 날인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 계기교육을 진행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서다. 계기교육은 학교 교육과정과 별개로 특정 기념일이나 주제에 관해 이뤄지는 교육을 말한다.

세계일보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추모객이 참배를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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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전날인 5일 학교 현장에서는 계기교육과 관련한 교육청의 관리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기교육은 사실상 교육자료 준비 단계부터 교사 개인에게 떠맡겨져 있다. 교육청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교사 개인이 이를 하기도 쉽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는 현충일의 의미나 태극기를 게양하는 방법을 배운 적 없다고 털어놓은 학생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개정된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보면 계기교육과 관련한 내용은 ‘학교는 필요에 따라 계기교육을 실시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계기교육 지침에 따른다’는 조항뿐이다. 그런데 2018년부터 계기교육 지침을 마련하는 주체가 각 시도교육청으로 바뀌어 교육부 차원의 통일된 지침은 없다. 일부 시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지침을 만들고 교육자료를 누리집에 게시해 놨을 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근 게시된 자료는 없었다.

교육 현장에서는 계기교육이 교사의 역량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청의 별도 안내나 교육자료가 일절 제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 이씨는 “계기교육이라는 말대로 (현충일에 대해)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 교육청에서 주요 기념일과 사회 이슈에 대해서라도 교육 콘텐츠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초등학교 교사인 조모(29)씨도 “교육청 차원에서 자료를 제공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부분 교사가 자체적으로 현충일 교육을 진행하는 형편”이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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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재량과 역량에 달려 있다 보니 교육 현장에서는 교사가 계기교육을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교사 이씨는 “학급 자율시간에 진행할 수 있지만, 교사 재량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울산 북구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 남모(27)씨도 “계기교육을 위해 따로 배정된 시간이 없어서 교사가 교육을 진행하지 않아도 확인할 길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충일에 관해 알지 못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인천 연수구 한 중학교에 다니는 윤모(13)군은 “친구들도 그렇고 현충일이 무슨 날인지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한 중학교에 다니는 권모(13)양은 “내일 학교를 왜 쉬는지도 사실 잘 몰랐는데, 현충일이라고 하니깐 초등학교 때 배운 기억이 났다”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따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태극기를 게양하는 법이 다르다는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계기교육 교육자료 등 지원이 있으면 좋지만, 획일적인 교육으로 흘러가지 않아야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교사 남씨는 “교사 커뮤니티에서 개인적으로 자료를 구해서 교육에 활용할 예정”이라면서도 “교육청에서 자료를 주더라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준호·김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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