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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황금알 낳던 부동산PF, 금리 상승기 163조 부실 ‘부메랑’ 돼[인사이드&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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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뇌관 떠오른 부동산 PF

IMF 후 시행사-건설사 역할 분담… 부동산 호황에 금융사 자금 투입

위험노출액 163조, 리스크 확대… 해외 석학-국제기구도 우려

최근 개발사업 잇달아 좌초… 브리지론도 본PF 전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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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경제부 기자


“한국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잠재 위험에 대해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각 금융사의 리스크를 계속 모니터링하고 위기가 전이되지 않도록 차단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5월 31일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 기조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여겨지는 부동산 PF에 대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석학도 경고장을 던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5일 한국의 상황을 분석하며 “PF에 크게 노출된 일부 비은행 금융기관이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부동산 PF에 어떤 문제점이 있기에 국내외 전문가들의 우려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 은행뿐 아니라 전 금융권 PF 가세, 위험노출액 16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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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란 시행사가 상가, 물류센터, 아파트, 주상복합 등을 짓기 위해 미래에 예상되는 분양 수입금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대출이 담보에 기반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라면, 부동산 PF는 개발 프로젝트의 미래 현금 흐름을 내세워 대출을 받는다. 투자자들은 부동산 PF 대출 여부를 검토할 때, 담보가 없는 만큼 통상적인 대출보다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 편이다.

부동산 PF는 국내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활성화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건설사가 시공과 시행 업무를 모두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자금 압박을 견디지 못한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시행사(디벨로퍼)와 시공사(건설사)의 역할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시행사는 토지 매입, 인·허가, 분양 등의 개발 전 과정을 맡고 시공사는 공사, 책임 준공에만 집중하는 ‘분업 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은행권(시중은행, 저축은행)이 부동산 PF 대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시행사 입장에서도 건설사에 비해 자본력이 부족하다 보니 외부 자금이 절실했다. 한 건설사의 재무 담당 임원은 “한국에서는 전체 프로젝트에서 시행사 자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3% 남짓에 불과하다”며 “발주처에서 자본금의 20∼30%를 책임지는 대다수의 선진국과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보험사, 저축은행, 증권사, 캐피털 등 다른 금융권도 부동산 PF 시장에 빠르게 가세했다. 저금리 기조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분양 시장도 흥행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가 상승 곡선을 그린 2017년부터 부동산 PF 대출은 급격하게 불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은 163조4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집값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직전인 2017년 말 대비 약 2.46배 수준이다. 2008년 말에는 은행권 익스포저가 전체의 83.7%에 달했다. 지금은 비은행권 비중이 전체의 70.7%를 차지한다. 금융권 전반에서 부동산 PF 대출을 취급하게 됐다는 얘기다.

업권별로 보면 신용카드사 및 리스·할부사(캐피털)의 익스포저가 4.33배로 늘어나 증가 폭이 가장 두드러졌다. 저축은행(2.5배), 보험사(2.05배), 증권사(1.67배) 등 나머지 업권도 뚜렷한 증가 추이를 보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캐피털, 저축은행 등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부동산 PF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것”이라며 “부동산과 관련된 2금융권의 익스포저가 사상 최대 수준이라 봐도 무방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 알짜 수익처였던 부동산 PF, 한국 경제 리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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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수년 동안 금융권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준 부동산 PF가 금리 상승 국면에 부실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분양 시장의 침체로 시행사 수익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개발이 좌초되는 경우도 잇따랐다. 부동산 PF에 대출을 주선한 금융사들도 연체율이 치솟자 비상이 걸렸다.

연체율이 가장 빠르게 오른 업종은 증권사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10.38%로 1년 전(3.7%)에 비해 약 2.8배로 높아졌다. 최근 석 달 사이의 연체율 변화를 살펴보면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3분기(7∼9월)와 비교했을 때 잔액은 같았지만 연체율은 2.22%포인트나 상승했다.

증권사 이외에 다른 제2금융권 연체율도 상승세다. 지난해 말 기준 신용카드사 및 리스·할부사(캐피털)의 연체율은 2.20%로 1년 전(0.47%)보다 약 5배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1.22%에서 2.05%로, 보험사의 경우 0.07%에서 0.60%로 상승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PF 연체 부담이 작은 대형 증권사를 고려하면 일부 중소형 증권사의 연체율이 20%에 육박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증권사와 캐피털,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보증은 부동산 개발 단계 중 위험도가 가장 높은 ‘브리지론’에 집중돼 있다는 분석이다. 브리지론은 본PF로 넘어가기 위한 가교 역할로 사업 초기에 시행사가 일으키는 고금리 단기 대출이다. 시행사는 본PF로 넘어가며 브리지론을 상환한다. 그러나 금리 급등기로 접어들며 PF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브리지론에서 본PF로의 전환이 어려워졌다. 시행사 입장에서도 비용 부담이 늘면서 개발 사업을 강행할 유인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글로벌 공급망 위축,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등으로 건설 원가가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손정락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개발비용 증가, 분양시장 침체는 PF 대출 상환 위험을 확대시키는 구조적인 요인”이라며 “근본적인 수익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브리지론의 부실이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 대출 부실로 금융권에서도 저축은행 업권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 우려한다. 한국기업평가의 분석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부동산 PF 익스포저 비중은 208%로 증권사(31%), 캐피털(93%) 대비 크게 높았다. 시중은행에 비해 조달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리스크가 높은 브리지론 대출에 주력한 결과다. 저축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브리지론 익스포저 비중은 128%에 달했다.

김태현 한국기업평가 금융1실장은 “PF 부실화 위험은 저축은행, 캐피털, 증권사 순으로 높을 것”이라며 “저축은행의 경우 브리지론 규모가 크고, 준공 위험도 높은 데다 정부 정책의 수혜를 입기도 쉽지 않아 PF 관련 리스크가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저축은행이 소규모 사업장 위주로 대출해온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시공 순위 150위 이내의 건설사가 책임 준공 의무를 부담하는 현장은 저축은행 PF 사업장의 16%에 불과했다. 캐피털(84%), 증권사(79%)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다. 그만큼 준공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 근본적인 위험관리 정책 필요

최근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부실로 인한 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연이어 정책을 내놨다. 2009년 이후 14년 만에 모든 금융권이 참여하는 ‘PF 대주단 협약’을 실시해 채권액 기준 3분의 2만 동의하면 사업장 대출의 만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브리지론이 본PF로 원활히 전환될 수 있게 금융 지원도 병행하기로 했다. 캠코는 사업장의 재구조화를 돕는 차원에서 1조 원 규모의 ‘PF 정상화 지원 펀드’도 조성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발 빠른 행보가 단기간의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부동산 PF 위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PF 사업장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시장 규율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가 사업성, 수익성을 엄격히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반기에 브리지론을 둘러싼 유동성 위험이 다시 대두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창원 한국기업평가 금융2실장은 “여전히 부동산 경기, 건설 원가, 금융비용 안정화 수준이 사업을 정상화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수준”이라며 “작년 하반기 이후 만기 연장된 브리지론의 차환 시점이 도래하면서 유동성 위험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우석 경제부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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