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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시장 넘어 아시아 미술 중심지 꿈꾸는 홍콩[영감 한 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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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미술관 큐레이터를 만나다

동아일보

김민 문화부 기자


홍콩은 아트페어와 글로벌 갤러리, 경매까지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여겨집니다. 수년 전 아트페어 취재차 홍콩을 방문했을 때 정작 좋은 미술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꽤 당황한 기억도 있습니다.

최근 홍콩을 가보니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품을 볼 수 있는 ‘홍콩고궁문화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인 ‘M+’가 시주룽(西九龍)문화지구에 문을 열었습니다. 시주룽문화지구는 홍콩을 아시아의 문화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 아래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이 시작된 곳입니다. 최근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며 새로운 관광지로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홍콩의 분위기에 대해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 출신 큐레이터인 정도련 M+ 부관장, 그리고 백남준아트센터의 첫 번째 학예실장을 지냈던 토비아스 베르거 타이쿤 큐레이터입니다.

“M+, 아시아의 첫 글로벌 시각 문화 뮤지엄”


정도련 부관장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 한국인 최초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로 일했고, 10년 전부터 M+에 합류해 준비부터 개관까지 함께했습니다.

정 부관장은 M+에 대해 “시각 미술뿐 아니라 건축·디자인, 영상 등 세 분야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시아 최초의 시각 문화를 다루는 글로벌 미술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직접 찾은 M+ 미술관은 영국 테이트모던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헤어초크&드뫼롱’이 맡았는데 인상적인 전시 공간이 돋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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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에서 전시 중인 울리 지크 컬렉션 작품. 홍콩=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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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소장품, 전시 기획, 프로그램 중 M+가 중점을 두는 부분을 묻자 “다 중요하지만 역시 소장품이 기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M+는 지금 이곳이 황무지였던 2012년부터 소장품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1970년대 중후반부터 최근까지 중국 현대미술의 태동과 발전의 궤적을 보여주는 울리 지크(중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 출신 컬렉터) 컬렉션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각 문화’에 관한 미술관이기 때문에 홍콩 영화 황금기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것도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특정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홍콩에서 시작해 중국 전체를 보고, 그 후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M+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한국인으로 홍콩 미술관을 이끌게 된 사연도 궁금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미술사 개론 수업을 들었다가 빠져들었습니다.

“어릴 때 그림에 소질이 있어 ‘예술고등학교에 가라’는 말도 들었죠. 그러다 미술사 수업에서 ‘이미지를 언어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마술처럼 느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학자의 길이 외롭다고 느끼던 차에 미술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면서 큐레이터의 길을 갑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워커아트센터, MoMA를 거쳐 M+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는 글로벌 미술계로 진출하고 싶은 젊은 예술가와 큐레이터에게 “중요한 기관들의 움직임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또 개인의 커리어를 넘어 넓은 시야로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감옥을 개조한 미술관,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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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경찰서와 감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타이쿤’에서 열리고 있는 퍼트리샤 파치니니의 개인전 ‘HOPE’ 전경. 홍콩=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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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찾은 장소는 문을 연 지 5년 된 복합문화공간 ‘타이쿤’이었습니다.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이 장소는 옛 경찰서와 교도소를 리모델링한 독특한 곳입니다. 타이쿤의 현대미술 전시장에서는 호주 출신 작가 퍼트리샤 파치니니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베르거를 만났습니다. 베르거는 개관 전 M+에서도 일했고, 홍콩의 유명한 비영리 예술 공간인 ‘패라 사이트’에도 있었습니다.

경매장과 갤러리의 예쁘고 얌전한 작품을 보다 타이쿤에서 파치니니의 조각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감각을 자아내는 조각들은 독특한 시각 언어로 ‘모성’과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과거에는 여성 감옥이었다는 점도 특별했죠.

베르거는 5년간 1200만 명이 타이쿤을 찾았고 대부분이 10, 20대 젊은 관객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공간이 주는 특별함, 빌딩 숲으로 빽빽한 홍콩에 몇 안 되는 야외 공간이 있다는 점,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습니다.

홍콩의 미술 기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베르거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도쿄 현대미술관 등 나라마다 여러 기관이 있지만 국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M+를 비롯한 홍콩의 기관들은 향후 아시아 내 여러 지역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미술계를 잘 알고 있는 그는 “1990년대부터 좋은 전시를 선보인 아트선재센터처럼 되는 것이 타이쿤의 목표”라며 “문화적으로 봐야 할 차세대 도시를 누군가 물으면 서울이라고 답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은 ‘대안공간 루프’를 비롯한 비영리 공간에 대한 지원이 오래전부터 활발했다”며 “공간 중심인 홍콩보다 한국이 더 시스템을 잘 만들어 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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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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