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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새벽 4시부터 줄서요"…연차내고 '소아과 오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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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생각 안 날 정도로 힘들어"
소아과 기피 현상에 병원도 줄어
전문가들 "국가 지원 늘려야"


더팩트

5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병원에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황지향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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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김세정 기자, 황지향·이장원 인턴기자] 5일 서울 은평구의 한 소아과 병원. 70대 김명숙(가명) 씨는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병원을 급히 찾았다. 김씨는 "일찍 오면 진료를 일찍 볼 수 있을까 해서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왔다"며 "애 아빠는 야간에 근무하고, 애 엄마는 아침에 일하니까 내가 데리고 왔다"고 토로했다. 기침하는 아이를 달래며 1시간2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겨우 의사를 만났다.

'소아과 오픈런'. 독감같은 호흡기 질환이 유행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란은 현실이 됐다. 부모들은 연차를 내고 새벽부터 병원을 찾는다. 맘카페에서 병원 정보를 공유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진료 티케팅'까지 하는 실정이다. 어플로 진료를 접수할 수 있는 오전 8시20분이 되자 병원 대기실 TV에 카운트된 진료 대기자 수는 무섭게 늘어났다. 3분 만인 오전 8시23분, 대기자는 50명이 더 늘었다.

근처 또 다른 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전 10시50분 병원은 북새통을 이뤘다. 복도까지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다리다 지쳐 우는 아이들도 있었다. 진료실 두 곳의 대기자 수는 각각 90명대, 40명대. 병원 관계자는 "오늘 제일 첫 진료를 본 분이 새벽 4시에 왔다"고 설명했다.

30대 여성 A씨는 24개월 된 쌍둥이 아들을 품에 안고 병원을 찾았다. 어플을 이용해 접수에 성공했지만, 또 2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A씨는 "주말에 애가 열이 나는데 안 떨어져서 보러 왔다. 애들은 보채고 장난 아니다. 집이 근처라서 여기 병원에 올 수밖에 없는데 대기는 정말 말도 못 한다. 9시에 예약을 해도 한 번에 꽉 찬다.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아기를 안고 온 20대 여성 B씨는 "어플로 예약을 하고 왔다. 둘째는 엄두도 안 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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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시간 변경 안내를 알리는 서울 내 한 소아청소년과전문병원. /황지향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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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의 한 소아청소년전문병원. 6세 아들을 데리고 온 홍지형(42) 씨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아이가 배도 아프다고 하고, 밥을 잘 못 먹어서 아내가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 해서 왔다. 미아리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라서 오전에 가게를 닫고 왔다"고 말했다. 4살 딸을 데리고 온 30대 김연우 씨는 홈페이지를 통해 진료 예약을 하려다가 안 돼 직접 병원을 찾았다. 그는 "마침 휴가를 써서 아침에 바로 왔다. 애가 어젯밤부터 열도 나고, 기침을 했다. 점심때까진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저출생 현상이 심화하면서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국 동네의원은 24% 늘었지만, 소아청소년과는 2013년 2200개에서 올해 1분기 2147개로 53개 감소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개인병원(의원) 중 소아청소년과는 456곳으로 2017년 521곳보다 12.5% 줄어들었다. 전공의 지원자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전국 기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에 달했지만 지난해는 27.5%로 하락했다. 국내 최초 어린이병원인 서울 용산구 소화병원은 진료 인력 부족을 이유로 지난 1일부터 휴일 진료를 중단하기도 했다.

열악한 진료환경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발생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저출생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낮은 진료 수가 때문에 수익도 낮고, 아이들을 진료하는 특성상 잦은 항의 때문에 기피 현상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기본적으로 경영난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대가가 충분했다면 이렇게 폐업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루에 80명 이상을 진료해야 병원이 유지될까 말까다. 최저 임금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는데 (진료 수가는) 30년째 지속이 되니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소아과 병원을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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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지만, 쉽지 않다. 사진은 진료 예약 어플 화면 갈무리. /황지향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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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인구가 감소하면서 소아청소년과가 기피 과가 됐다. 또 아이들이 진료받다 보니 '컴플레인'도 많은 편이라서 진료환경 여건이 좋지는 않다. 의사들이 피부과를 선호하는 것이 응급상황도 없고 크게 '컴플레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수가 보상이라는 인센티브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기대하는 만큼 되지 않으니까 점점 상황이 어려워진다"면서도 "다만 정부 입장에서는 보건의료 전체를 고려해야 하고, 보험료 인상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정책은 하려 하지만, 의사들이 만족할 만큼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쉽게 풀 수 없는 구조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응급의료 거점병원처럼 소아전문 병원을 지역에 거점별로 두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국가가 보험 수가와 상관 없이 시설이나 비용 등을 지원하는 등 민간의료를 활용한 공공의료 체계를 갖추도록 '소아전문 공공의료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저출산 예산은 이런 곳에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준 서울시립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필수의료 분야는 비인기과일 수밖에 없다. 응급상황이 발생하거나 미래 시장 가치가 떨어져 수요가 적은 부분들은 병원에서 투자를 하지 않아서 이런저런 문제가 결합돼 소아과를 잘 안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지는 건) 어떻게 보면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어느 과를 지원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크지 않게 해줄 필요가 있다"며 "사회 환경에 따라 숫자를 늘리고 줄일 것이 아니라 환자가 줄어들더라도 소아과 의사는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처럼 환자가 있든 간에 없든 간에 감염병에 대해서는 항상 준비해야 하듯 소아청소년과 역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인프라로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sejungkim@tf.co.kr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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