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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까칠한 사우디 왕자'…독자적 석유 감산 나선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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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골라·나이지리아 반대에 감산 합의 안돼

압둘아지즈 "100만배럴 감축은 ‘막대사탕"

왕세자 야심작 '네옴시티' 자금줄 유지 필요

저조한 中리오프닝 효과·러 저가 대량 수출 변수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MBS)의 이복형인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는 무역업체 사이에서 “까칠한 왕자(prickly prince)”로 통한다. 지난 20여년간 석유 산유국들 사이에서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지만, 2019년 왕족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에 오르면서 그의 위상은 올라갔다.

그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 OPEC 주요 산유국까지 포함한 OPEC 플러스(+)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인물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오펙 간 동맹을 강화하면서 적극적인 가격 방어에 나섰다. 반면 그가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불필요한 싸움을 거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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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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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 야심작 ‘네옴시티’ 자금줄 유지해야”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 정례 장관급 회의가 끝난 이후 사우디의 독자적인 100만배럴 추가 감산 발표는 그의 전형적인 캐릭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사우디는 7월부터 추가적으로 하루 100만배럴 원유 생산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사우디는 지난달부터 50만 배럴 자발적 감산에 들어간 이후 추가적으로 대폭의 감산에 나선 셈이다. 압둘아지즈 사우디 에너지 장관은 “유가 안정을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단독 발표는 OPEC+정례회의서 추가 감산안 논의가 무산된 이후 나왔다. 이번 회의서 주요 산유국들이 100만배럴 추가 감산분을 할당하는 안건이 논의됐지만 다른 산유국들의 반발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아프리카 회원국 중 앙골라와 나이지리아는 코로나19로 인한 폐쇄 이후 유전 투자가 지지부진하면서 자신의 생산량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추가 감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OPEC+은 지난 4월 결정한 자발적 감산 기한을 내년말까지로 연장하는 결정만 내렸다. OPEC+는 지난해 10월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한 데 이어 4월에는 하루 160만배럴 추가 감산을 깜짝 발표했는데 이 조치를 내년말까지 이어가기로 한 수준에서 결론을 맺었다.

이는 압둘아지즈 장관이 원하는 그림이 결코 아니었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유가가 리터당 80달러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복동생인 무함마드 빈 실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야심작 ‘네옴시티(Neom City)’ 조성에 필요한 자금을 대기 위해서다. 미래형 신도시인 네옴시티는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다. 적정 자금을 대기 위해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을 유지해야 하지만, 올해 내내 70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압둘아지즈 장관은 추가 감산 결정을 내리고 “이는 (유가 상승을 위한) 사우디 막대사탕”이라고 언급하며 “우리는 이번 일로 ‘케이크’를 얼리고 싶다”고 말했다. 석유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다.

사우디는 추가 감산을 결정하면서 7월부터 사우디 석유 생산량은 하루 약 900만배럴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참이었던 2021년 6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OPEC+내 이견이 나온 상황에서 사우디가 점유율을 잃으면서도 유가 부양을 위해 감산 부담을 단독으로 떠안은 것으로 볼만한 근거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UBS의 상품 애널리스트 지오반니 스타우노보는 “사우디의 하루 생산량은 1200만배럴에 가깝기 때문에 900만배럴 생산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봐야 한다”면서 “사우디가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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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옴시티 조감도.(사진=네옴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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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아지즈의 ‘막대사탕’ 먹힐까

일단 유가는 반등하는 분위기다. 5일 서부 텍사스 중질유 선물은 장 초반 전거래일 대비 약 5% 급등한 뒤 상승폭을 줄여 배럴당 73달러 이하로 거래되고 있고,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도 1~2% 오른 약 77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유가가 계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압둘아지즈 장관의 ‘막대사탕’이 계속 먹힐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재개)이 예상만큼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인플레이션을 꺾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유가 상승 추세를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현재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평균 3.55달러로 1년전보다 25%이상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 에너지장관이 세계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와 사우디간 긴장 고조도 지켜봐야 할 변수다. 서방국가들로부터 제재를 원유 수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시장에 값싼 가격에 원유를 계속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유가 안정화를 노리는 사우디의 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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