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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태호 ‘유랑단’, 나영석 ‘지락실’…예능피디 양대산맥 tvN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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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감 열쇳말은 같은데 출연진 세대로 결정적인 차이를 둔다. 엠제트를 내세운 <지락실>(위),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을 등장시킨 <유랑단>.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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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가수 유랑단>(tvN, 이하 유랑단)에서 데뷔 38년 만에 후배들과 팀을 꾸린 김완선은 “삶은 정말 모르는 거”라고 했다. 이은지는 <뿅뿅 지구오락실>(tvN, 이하 지락실)에서 처음 만난 모두가 손발이 척척 맞자 “이건 천운이다, 팔자야”라며 놀란다. 요즘 이 두 사람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을까. <유랑단> 김태호 피디와 <지락실> 나영석 피디. <무한도전>(MBC)과 <해피선데이-1박2일>(KBS2)을 시작으로 10년 넘게 한국 예능의 양대 산맥을 이룬 두 피디가 지난 5월 같은 채널에서 나란히 프로그램을 내놨으니, 팔자인지 천운인지 몰라도 삶은 정말 모르는 거다.

두 피디가 처음으로 ‘함께’ 내놓은 프로그램은 열쇳말이 같다. 여성과 세대공감. <유랑단>과 <지락실>은 두 피디가 여성 출연자로만 구성된 독립 프로그램을 진행한 첫 시도다. 나 피디는 <꽃보다 할배> 번외편인 <꽃보다 누나>, 김 피디는 <놀면 뭐하니> 프로젝트인 ‘환불원정대’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남성 출연자를 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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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채널에서 각각 금요일과 목요일 예능을 책임지는 나영석 피디의 <지구오락실>(위)과 김태호 피디의 <댄스가수 유랑단>.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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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프로그램 모두, 세대를 중심에 두고 소통과 공감을 도모한다. <유랑단>은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까지 시대를 풍미한 여자 댄스 가수들이 주인공이다. 이효리가 “음악방송 1위하면 다른 가수들 다 모아 밥을 샀다”는 등 ‘선배’들이 그 시절 ‘낭만’을 이야기하면, “어머” 하며 놀라는 건 요즘 세대인 화사의 몫이다. <지락실>에서는 반대다. 안유진, 이영지, 미미, 이은지까지 엠제트(MZ) 세대는 휴식 시간에도 지치지 않고 춤추고 떠들고 자체 콘텐츠를 만든다. 그들을 보고 놀라는 ‘어른’은 나 피디로 대표된다.

문철수 한신대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는 “두 프로그램 모두 특정 세대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세대 이야기를 담아 시청자들이 교감하게 만드는 영리한 예능”이라고 말했다. 한 지상파 출신 케이블방송 예능 피디는 “지상파 피디들은 세대를 폭넓게 잡으려는 게 특징인데, 요즘처럼 공감과 소통이 중요한 시대에는 두 프로그램 모두 그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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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를 잘 끄집어 내는 나영석 피디(오른쪽)의 장점이 발휘된 <지락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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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단>과 <지락실>은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두 피디의 제작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김 피디는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처럼 입담 좋고 진행 잘하는 뛰어난 인물을 한 명 두고, 거기서 파생되는 이야기로 프로그램을 끌고 나간다. 그가 제작사를 차리고 선택한 인물은 이효리다. <놀면 뭐하니>에서 혼성그룹 ‘싹쓰리’로 시작한 이효리와의 프로젝트는 ‘환불원정대’에 이어 <서울체크인> <캐나다체크인>으로 이어져 <유랑단>에 이르렀다. 댄스 가수들을 모아 전국 공연을 하자는 아이디어는 <서울체크인>에서 나왔다. <지락실>은 <신서유기>처럼 캐릭터 있는 인물들이 게임을 하며 상황을 풀어간다.

두 피디 모두 출연자의 캐릭터를 잡아내는 점은 같은데, 김 피디가 특정 진행자의 능력을 더 빛나게 해 끌고 간다면, 나 피디는 <삼시세끼>에서의 이서진, 차승원처럼 우리가 잘 몰랐던 의외의 모습을 끄집어내면서 재미를 준다. <유랑단>은 이효리가 말하고 노래하는 것만 봐도 재미있다는 반응이고, <지락실>은 얌전한 줄 알았던 아이브 안유진이 점차 엉뚱한 모습을 보이는 데 포인트가 있다. 두 프로 모두 캐릭터가 큰 역할을 한다. 나 피디는 “몇년 동안 모아온 운을 이 캐스팅에 다 쓴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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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태호 피디(맨 오른쪽). <유랑단>도 ‘이효리’를 열쇳말로 이어진 프로그램이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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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많이 다르다. <지락실>은 새롭다는 평가가 많은 반면, <유랑단>은 ‘싹쓰리’나 <서울체크인> 때와 같은 열렬한 반응은 아직 없다. 전문가들은 ‘미묘한 의외성’의 차이가 크다고 봤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유랑단>은 출연자들이 ‘요즘 애들이 우리를 알까’ 걱정하는 모습 등을 보면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충분히 예상되곤 한다. 이효리가 <서울체크인>으로 사랑받은 것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의외의 모습이었는데, <유랑단>에서는 의외성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팀을 만들어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게 김 피디의 장기인데 <유랑단>에선 아직 이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지락실>은 제작진도 예상치 못한 뜻밖의 반전이 신선한 재미를 준다. 특정 장소를 찾아가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장면에서 출연자들은 예정시간보다 일찍 장소에 도착하는데, 방송 분량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토끼탈을 잡는 임무를 끝내버린다. “잡으랬으니까!”(안유진) 쉼 없이 게임을 요구하면서 미션이 빨리 완료될지 모르고 추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나 피디에게 출연자들은 “몇년차인데 이런 변수를 생각안하셨냐”고 무안을 준다. 나 피디는 이들에게 “영석이 형”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신서유기>에서는 출연자들이 나 피디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재미를 줬다면, <지락실>에서는 거꾸로 피디가 요즘 세대 출연자들 때문에 당황하고 지치는 모습이 의외의 재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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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락실>(왼쪽)은 제작진의 예상을 뛰어넘는 출연진의 ‘활약’이 신선함을 준다면, <유랑단>은 예능에 익숙한 출연진의 대화 내용과 예측 가능한 전개가 아쉽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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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단>과 <지락실>의 결정적인 차이는 관계의 변주다. 윤석진 교수는 “<유랑단>은 연배, 데뷔년차에 따라 깍듯하게 부르며 좋은 얘기만 해주지만, <지락실>은 막내라도 언니들이 못하면 한마디 하는 등 수평적인 관계다. 시즌1에서 안유진, 시즌2에서는 미미 등 인물들의 의외성도 그런 데서 나온다”고 말했다.

플랫폼 무한 경쟁 시대에 예능이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 없는 변화가 요구된다. 나 피디는 이미 <십오야>를 비롯한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온 반면, 김 피디는 상대적으로 변신의 모습이 덜 보인다. <유랑단>도 지상파에서 했던 <놀면 뭐하니>와 티빙에서 내보낸 <서울체크인>과 편집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주제작사에서 오티티 등 다양한 채널을 경험한 한 예능 피디는 “오티티는 주로 휴대폰으로 보기 때문에 자료 영상이 나올때 진행자들이 말을 하지 않게 하는 등 예능을 만들 때 여러 변주가 요구되는데, <유랑단>은 연출이나 편집 방식이 큰 차이가 없다”며 “의외성과 연출의 변화는 앞으로 <유랑단>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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