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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도덕성 상실·책임정치 실종… ‘돈봉투·사법리스크’에 흔들리는 민주당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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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 스스로 수사·재판에 발목

김남국 코인 사태 등 늑장 대응 잇따라

“단호히 대처 못한 채 위기 키워” 지적

‘DJ·노무현 정신’ 對與 투쟁 도구로 활용

정작 당내 불리한 사안에는 적용 안 해

비주류 맹목적 공격 개딸 그룹도 문제

‘이재명 리더십’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 당대표 스스로가 검찰 수사와 재판을 받는 게 위기의 진앙이다. 최근엔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태와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로 ‘사법 리스크’는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선 당 전반의 도덕성 추락과 책임정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동시에 강성 팬덤을 등에 업고 ‘혁신’을 빌미로 당내 반대파를 적으로 돌리는 친명(친이재명)계와 ‘개딸(개혁의 딸)’ 팬덤의 행태를 둘러싼 비판도 커지는 형국이다.

세계일보

지난 대선 과정에서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월 28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1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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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정치·도덕성 사라져

4일 정치학자들과 당내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은 최근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도덕성 상실’을 꼽았다. 진보진영이 이제 더는 보수진영보다 도덕성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당당하게 활동할 처지가 아니다 보니 당내 여러 비위 의혹에 단호한 대처를 하지 못한 채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돈봉투 의혹 사건과 김 의원의 가상자산 의혹 등은 예전 같으면 당대표가 신속히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지시했어야 할 사안이었는데 늑장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것이 정치권 평가다.

민주당 내 비명계인 신동근 의원은 “우리 당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도덕성이 완전히 파탄 났다”며 “통상적으로 어떤 중대한 일이 벌어지면 누군가 책임을 졌다. 그런 일이 지금은 없다”고 했다.

인천대 이준한 교수(정치외교학)는 “결국 원칙의 상실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원칙이 사라지니 입장이 엇갈리고 도덕성도 사라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국제학)는 “진보진영의 가치와 지향이 무너졌다”며 “일단 우리 편이면 나쁜 짓을 해도 다 괜찮다는 식이다. 국민들 눈에는 너무 염치도 상식도 없어 보이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러한 비판 속에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정신’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여야 대치국면 속에 ‘다시 민주주의’ 구호를 외치며 김·노 전 대통령을 현실 정치무대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출신인 점을 겨냥해 ‘검사 독재정권’이란 신조어도 만들어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작 당대표 사법 리스크와 김남국 사태 등 불리한 사안에 대해선 김·노 전 대통령의 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대여(對與) 투쟁 도구’로만 두 전직 대통령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된다.

민주당 권지웅 전 비상대책위원은 “민주당이 국민의힘, 윤 대통령만 바라보는 좁은 시야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희대 채진원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김·노 전 대통령 때만 해도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었고, 반칙과 특권에 맞서는 진보 정당이었다. 국민의 평균적인 정서와 이익을 대변했다”며 “문재인정부 때부터 극단적 지지층을 결집하다 보니 당이 변질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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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 반전의 열쇠 될까

이 대표 측 강성 지지층인 개딸 그룹은 또다른 걱정거리다. 이들은 당내 비명계에 대한 적개심으로 무장한 채 문자폭탄 공세를 가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선 찾아볼 수 없던 현상이다.

채진원 교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강성 문파’를 시작으로 정치인 팬덤의 ‘질적 하락’이 이뤄졌다고 봤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유지에 따라 ‘성숙한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자’고 지지층에 말했어야 했는데, 문파의 도 넘은 행태를 ‘양념’이라고 하니 막 나가도 되는 것처럼 해석됐다”고 비판했다. 개딸에 대해선 “완장 찬 팬덤, 골목대장 팬덤이 됐다”고 했다.

권 전 비대위원은 “코로나19 시기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만나는 대신 유튜브를 통한 기존 팬덤에만 기대다 보니 이젠 ‘이견을 배제하는 정치’에도 기대게 돼 버린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런 위기감은 당 쇄신 목소리를 터져나오게 했고, 당 지도부가 현재 혁신위원회 출범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혁신위원장에 외부인사를 영입하고 쇄신 관련 전권을 위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달 중 들어설 혁신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국면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혁신위가 뭘 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대의원제 폐지를 할 것이란 건 안다”며 “그건 혁신안이 아니다. 오히려 권리당원 권한을 약화시키고 예비경선 후 국민에게 공천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친명계가 요구하는 대의원제 폐지는 이 대표의 권한을 보다 강화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혁신 취지에 반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이 대표가 진정성 있는 혁신 의지를 보일 때에야 이 대표 자신과 민주당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채 교수는 “과거 비주류였던 조세형 전 상임고문이 ‘민주당 발전·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에 발탁돼 전권을 행사했고 거기서 발굴한 제도인 ‘오픈 국민경선제’ 덕분에 노 전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다”며 “책임자가 스스로 권한을 내려놓음으로써 진보적 결과를 얻은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왼쪽), 허영 의원


◆이상민 “李, 대표직 움켜쥐고 방패로 써” 허영 “국민들 ‘사이다 리더십’에 기대감”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거취 논란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는 민주당 5선 중진 이상민 의원, 초선 허영 의원과 ‘이재명 리더십,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 의원은 당내 원로로서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으로 통한다. 허 의원은 21대 총선 때 보수 텃밭인 강원 춘천에 70년 만에 민주당 깃발을 꽂은 인물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김근태 의장을 보좌한 김근태계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비이재명계라는 것. 하지만 이 대표 거취 관련 입장은 대조를 이뤘다. 이 의원과 허 의원 인터뷰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각각 지난 1일과 2일 진행했다. 이들의 의견을 대담 형식으로 4일 재구성했다.

―이 대표의 당대표직 유지에 대한 입장은.

이상민 의원(이하 이) “자기가 속한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물러나야 한다. 선배들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끝까지 대표직을 움켜쥐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패로 쓰고 있다. 당대표가 돼선 안 될 사람이었다.”

허영 의원(이하 허) “물러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 대표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사이다 리더십’이다. 성남시장, 경기지사를 하며 성과를 냈던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이 대표 스스로 당의 위기와 사법 리스크를 극복하고 이재명다운 리더십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

이 “이 대표가 물러나야 당 혁신도 가능하다. 앞으로 만들어질 혁신위원회에 전권을 부여할지가 당내 쟁점이다. 그런데 혁신위 구성을 누가 하나. 당대표가 한다. 그럼 혁신위 하나마나다. 그래서 이 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허 “지금 검찰이 이 대표 관련 여러 의혹에 대한 ‘스모킹건’(핵심 증거)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럴 때 이 대표가 위기 극복을 위한 리더십을 보여야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안 그러면 내부로부터 흔들리고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이 대표 퇴진이 해법인가.

이 “이 대표가 물러나면 같은 소리를 반복하겠나. 안 물러나니까 되풀이하는 것이다. 히틀러가 살아 있으면 히틀러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혁신위에 전권 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것이다.”

허 “혁신위에 전권을 주고 당대표가 관여 안 하면 된다. 중립적인 인사들을 삼고초려해 데려와야 한다. 그리고 이참에 기존 장경태 의원 주도의 기존 혁신위는 발전적 해체를 해야 한다. ‘장경태 혁신위’의 혁신안이 당내 분열과 갈등을 일으킬 내용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장경태 혁신위’의 혁신안은.

허 “전혀 공유가 안 되고 있다. 투명하지 않다. 내년 총선 공천 시즌에 임박해 공개되면 때늦은 토론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 대표 외 ‘대안’이 없으니 혁신의 전권을 이 대표가 쥐어야 한다는 주장은.

허 “본인들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다. 당 시스템을 그렇게 가져가면 남는 건 공멸하는 길이다.

이 “대안이 없다는 말은 박정희·전두환시대 때 많이 들어봤다. 민주정당은 대안이 있는 체제다. 대안이 없다면 없어져야 할 정당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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