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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엄정화 “나이가 주는 부담감, 옛날 사람들이 만든 거잖아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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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종영 ‘닥터 차정숙’서 호연

대본 받고 연기까지 1년

병원과 불륜, 흔한 소재지만

따뜻한 시선 담아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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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차정숙(엄정화)은 의대를 졸업한 지 20년 만에 레지던트에 도전한다.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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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여섯 살. 전업주부로 살던 차정숙(엄정화)은 다시 의사의 꿈을 꾼다. 의대 인턴까지 마치고 가정주부가 됐던 정숙은 20년 뒤, 자신의 매일에 회의를 느낀다.

급성간염으로 쓰러진 자신에게 간 이식도 해주지 않은 남편,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녀들과 시어머니에게 서운한 마음이 계기가 됐다. 4일 종영한 <닥터 차정숙>은 정숙의 좌충우돌 레지던트 도전기를 그렸다. 따뜻하고 인정이 많지만, 그래서 더 강한 정숙을 연기한 배우 엄정화를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사람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숙이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모두가 응원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대본을, 차정숙을 꼭 연기하고 싶어서 제작이 될 때까지 오래 기다렸어요. 연기할 때는 오롯이 이 여자(차정숙)의 진심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정숙이 베푸는 친절, 따뜻한 마음 같은 것들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로서는 닭살 돋거나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시청자들이 1화부터 차정숙의 마음을 따라갈 수 있게 보여줘야겠다는 게 목표였어요.”

대본을 받고 정숙을 연기하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을 기다렸다. 엄정화는 “그래도 놓고 싶지 않았다”며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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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숙(엄정화)은 구산대병원 레지던트 가정의학과에 지원한다. 레지던트 필기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지만 나이 때문에 떨어진다. 그러나 합격자 중 한 명이 갑자기 군대에 가 정원 미달이 되면서 가까스로 합류한다.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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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숙(엄정화)은 자신의 간 이식 수술을 해 준 로이 킴 교수(민우혁)에게도 마음을 쓴다. 그가 힘들어할 때 함께 서울 한복판을 달리자고 제안한다.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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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차정숙>은 JTBC 역대 시청률 4위에 오르고, 17개국에서 넷플릭스 TOP 10에 드는 등 화제를 모았다. 흔한 병원 배경으로, 더 흔한 불륜 소재를 다룬 신인 작가(정여랑)의 작품이 이처럼 인기를 끈 건 따뜻한 시선에 있다. <닥터 차정숙>에서는 악역도 밉지 않다.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과 대학 동기, 못된 시어머니에게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정숙은 남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식으로 악역의 인생을 망쳐버리지는 않는다.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차정숙식 복수’를 한다.

정숙은 다정하다. 레지던트 일에 바쁘면서도 아들과 딸 일에는 눈에 불을 켠다.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의 딸에게 찾아가서 환자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한다. 항문 수술을 한 회장님에게는 팬티를 선물한다. 해외 입양인 출신 동료에게는 ‘친엄마를 꼭 한번 만나보라’고 조언하고, 가족을 만날 때 함께 경찰서에 가주기도 한다. 정숙의 ‘오지랖’은 정숙에게 은혜를 갚는다. 병원에서 잘릴 위기에 정숙을 구해주기도 한다. 엄정화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써주는 건 과하지 않구나’ 많이 느꼈다”며 “정숙은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해 모든 게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다. 타인을 위해 마음과 시간을 쓰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일이구나 싶었다”고 했다.

격려 없이 활동한 어린 시절
내가 잘 가고 있나 매번 의문
응원은 ‘물 마시듯’ 해줘야
후배에 칭찬 자주 하는 이유


엄정화와도 닮은 면이다. 이효리 등 후배 가수들은 엄정화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한다. 한 방송에서 이효리는 엄정화에게 “언니는 언니 같은 언니도 없는데 어떻게 버텼어요?”라고 묻기도 했다. 엄정화는 “(후배들에게) 표현을 많이 하려는 편이다. 특히 응원은 ‘물 마시듯’ 해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어렸을 때 그런 얘기를 못 듣고 활동을 했기 때문에 너무 불안했거든요. 내가 잘 가고 있는 게 맞나,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난 여기서 끝인가? 그런 쓸데없는 고민들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후배들을 만나면 (잘하고 있다고) 표현을 안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후배들 입장에서는 ‘저 선배는 맨날 (칭찬만 해)’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정말 예쁘고 잘하고 있어 보여서 그런 얘기하는 거예요. 저도 그런 말 들으면 참 좋거든요. <닥터 차정숙>에서도 김미경 선배님, 박준금 선배님하고 얘기하면 저를 칭찬 많이 해주세요. 이 나이에도 응원을 들으니까 기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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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정화.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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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는 1993년 1집 타이틀곡 ‘눈동자’를 녹음하고 이 곡이 OST로 실린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주연으로 데뷔했다. 올해 데뷔 30주년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온 엄정화는 ‘사람들 시선 속 나이’에는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여유와 중심을 찾아가는 ‘나름의 나이’를 먹고 있다.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의사에 도전하는 정숙에게도 힘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나이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기회도 사라지고 대본도 많이 줄어들었다. 좋은 작품을 찾기도 어렵고 무대는 더더욱 그렇다”며 “그런데 나이가 주는 부담감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정해놓은 거다. 이 나이 땐 이거 하면 안 된다, 너무 늦었다, 이런 거 옛날 사람들이 정해놓은 거 아닌가. 그 시간에 지금의 우리가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어 “정숙이가 잘 돼서, 드라마가 잘 돼서 저도 힘을 받았다”고 했다.

엄정화는 지난달 고려대 축제에 참여해 오랜만에 가수로서 큰 무대에 섰다. ‘포이즌’ ‘디스코’ ‘페스티벌’ 등을 불렀다. 엄정화는 “무대 올라가기 전에 갑자기 피곤해지면서 올라가기 싫었다. 너무 긴장이 됐던 것 같다. 20대가 내 노래를 알겠나 싶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며 “막상 ‘포이즌’을 부르고 나니 기운이 뻗쳐서 이 기분이라면 한 시간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진짜 감동이었다”고 했다.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어딜 가도 저를 위해서 환호하는 관객이 있다는 거는 기대할 수 없었거든요. 템테이션(팬클럽)도 있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긴 했지만 한창 활동할 때도 팬덤이 많은 아이돌 가수들과 비교할 수는 없었어요. 저는 가끔 환호소리가 들려요. 상상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번에 고대에서 그 소리를 듣게 된 거예요. 가수와 배우 활동은 서로 다른 기쁨인데요,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즉각적으로 기쁨이 오는 건 가수 활동이죠. 배우 활동은 좀 다른 종류의 즐거움인데요.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어요.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해 생각하고 감정에 빠지고 그러면 너무 괴로운데요. 괴로운 만큼 캐릭터랑 제가 만날 수 있으니까 그 카타르시스가 있죠.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잘했다’ 이런 게 있는 거 같아요.”


☞ [핀라이트]‘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것’ 엄정화가 다시 만든 강인한 여성상[플랫]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01127100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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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정화.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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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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