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3 (화)

전기 시키신 분~ 바다 위 초대형 ‘배’터리, 2025년에 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본 기업, 140m 선체에 2차전지 가득 실은 ‘배터리 탱커’ 개발 추진

2만여가구 하루치 전력량 싣고 어디든 수송…외딴 발전기와 도심 연결

경향신문

일본 기업 파워엑스가 개발 중인 전기 운반선 ‘배터리 탱커’의 운항 상상도. 선체에 장착한 96개의 대형 배터리에 전기를 채운 뒤 바다를 따라 원거리 이동한다. 파워엑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기반의 동영상 속에 축구장보다 긴 선체를 갖춘 대형 선박이 등장한다. 일단 겉모습은 평범하다. 유선형 선체와 이렇다 할 구조물이 없는 평평한 갑판을 지녔다.

그런데 이 배, 항구에서 독특한 ‘화물’을 싣는다. 항구에 몸을 바짝 붙인 배에 기다란 줄 여러 가닥이 연결된다. 얼마간 이 상태로 항구에 머물던 배는 줄을 걷어내더니 망망대해로 나가 항해를 시작한다.

이 배가 실은 화물은 바로 ‘전기’다. 선체 안에는 충전용 대형 배터리가 가득 탑재됐다. 바다를 따라 원거리 이동한 뒤 지정된 곳에 전기를 토해내는 것이 이 배의 핵심 임무다. 현재까지 이런 목적의 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상을 기초로 만든 이 동영상 속의 배가 2025년 현실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 파워엑스는 특정 장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해양을 통해 또 다른 장소로 옮기는 신개념 수송선을 개발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기름을 옮기는 유조선처럼, 전기를 옮기는 이른바 ‘전조선’의 등장이 머지않은 셈이다.

특히 이 배는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를 수송할 예정이다. 바람과 태양 등 재생에너지가 잘 생산되는 외딴 지역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도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경향신문

개발 중인 ‘배터리 탱커’ 내부 구조. 컨테이너처럼 생긴 직육면체 안에 대형 배터리 96개와 전기 저장을 위한 부대시설이 들어간다. 파워엑스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선체에 96개 배터리 ‘빼곡’

파워엑스가 ‘배터리 탱커’라는 이름을 붙인 이 선박은 말 그대로 떠다니는 초대형 배터리다. 길이 140m짜리 선체에 대형 배터리 96개를 빽빽이 실었다.

파워엑스가 이 배에 실은 배터리 종류는 ‘리튬 인산철 배터리’다. 파워엑스는 공식 자료를 통해 “충·방전을 6000번 반복할 수 있는 성능을 지녔다”며 “(화재 등에서) 안전하다”고도 평가했다.

리튬 인산철 배터리는 리튬이온 등 다른 배터리보다 가격도 낮다. 다만 리튬 인산철 배터리는 같은 저장용량을 지닌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약 50% 무겁다. 하지만 바닷물의 부력에 의존해 저속으로 움직이는 해상 운송에선 중량이 큰 문제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에 저장할 수 있는 전기 용량은 총 241MWh(메가와트시)다. 한국의 평균적인 4인 가구 전력소비량을 기준으로 할 때, 2만여가구에 하루 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 300㎞ 항해해 ‘전기 방출’

배터리 탱커는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진 친환경 전기를 저장해 옮기는 임무에 특화돼 있다. 바람이나 태양광으로 만들어진 전기는 주로 외딴 곳에서 생산되는 일이 많다. 이런 전기는 지상이나 해저에 설치한 전선을 통해 전기 수요가 많은 도시로 이동시켜야 한다. 길게는 수백㎞에 이르는 원거리 송전이 불가피하다.

그러려면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하다. 송전탑을 세우고 전선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배터리 탱커를 투입하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그런 공사 없이 전기를 쉽게 옮길 수 있다.

전기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까지는 전선으로 전기를 옮긴 뒤 배터리 탱커에 전기를 가득 저장하고, 바다를 통해 먼 도시로 이동해 전기를 토해내도록 하면 된다. 파워엑스는 이 배를 2025년까지 완성한 뒤 이듬해부터 시험 운항할 예정이다.

파워엑스는 현재의 배터리 밀도(배터리 1㎏당 저장할 수 있는 전기의 양)를 감안할 때, 송전선을 이용할 때보다 경제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해상 운송거리는 최대 300㎞라고 봤다. 하지만 파워엑스는 기술 발달로 배터리 밀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 거리 또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 지진 걱정 없이 수송

파워엑스는 일본의 지질학적 특징 때문에 이 배가 더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에선 해상 풍력 발전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바다 밑에 전선을 깔아 육상으로 옮기는 일이 어려울 때가 많다. 지진이 워낙 잦아서다. 지각 변동으로 전선이 끊기거나 뒤틀릴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태평양과 면한 일본 주변 바다는 수심도 깊어 전선을 까는 일 자체가 어렵다.

배터리 탱커를 쓰면 그런 걱정에서 해방된다. 개별 해상 풍력 발전기에서 전기를 빨아들인 뒤 바다를 항해해 육상으로 옮기면 그만이다.

파워엑스는 “배터리 탱커는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