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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민족 영웅 발굴” 보조금 받아 尹퇴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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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 보조금 3년 1800건 비리

대통령실 “내년 예산 5000억 감축”

통일 운동을 한다는 A 단체는 ‘묻힌 민족 영웅 발굴’을 명목으로 작년에 국고보조금 626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런데 현 정부 출범 후 감사를 해보니 이 단체는 ‘윤석열 정권 취임 100일 국정 난맥 진단과 처방’ 같은 강의를 편성하고,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강의를 한 강사에게 강사비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의 원고 작성자도 아닌 사람에게 지급 한도의 3배 가까이 초과하는 원고료를 지급한 정황도 적발돼 정부는 A 단체를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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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백형선


정부가 지난 1월부터 29개 부처별로 최근 3년간 민간단체에 지원된 국고보조금 사업(총 9조9000억원 중 6조8000억원을 대상)을 감사한 결과, 보조금을 부정 사용·집행한 사례가 1865건 적발됐다고 대통령실이 4일 밝혔다. 부정 사용이 적발된 사업의 총사업비는 1조1000억원, 부정 사용이 확인된 금액은 314억원이었다.

정부 감사 결과, 민간단체들은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조금을 횡령하거나, 리베이트 수수, 가족 간 내부 거래, 사업 목적과 무관한 사용 등 온갖 방법으로 보조금을 빼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기구 관련 활동을 내건 B 연맹은 2022년 국내외 네트워크 강화 사업을 하겠다며 해외 출장 3건에 대해 국고보조금 1344만원을 착복한 게 적발됐다. 감사해보니 2건은 연맹 사무총장의 개인 해외여행, 1건은 허위 출장으로 드러났다. 지방의 C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2022년 청년 창업 지원 사업을 하겠다며 보조금 1000만원을 지급받고, 전액을 인출해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정부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 이사장은 현재 연락 두절 상태라고 한다.

대통령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부정이 확인된 사업에 대해 보조금을 환수하고 5년간 보조금 지급을 배제하는 한편, 형사고발, 수사 의뢰 등 강력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내년도 보조금 예산에서 5000억원 이상 절감하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는 작년 12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총 22조4649억원(연평균 약 5조원)에 달하는 국고보조금이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됐으며, 이 기간 보조금 규모가 매년 4000억원씩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올 1월부터 보조금 집행 실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국민 혈세로 마련된 국고보조금 용처에 대한 정부 감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가 4일 발표한 감사 결과를 보면 국고보조금은 민간단체들에 ‘눈먼 돈’이었다. 서류 조작을 통한 횡령, 리베이트 수수, 가족 간 내부자 거래 등 갖가지 회계 부정 사례가 적발됐고, 보조금이 ‘정권 퇴진’ 운동 관련 강의료나 유흥비로 쓰인 사례도 있었다.

일자리 사업 보조금 3110만원을 지급받은 D 단체는 감사를 해보니 강의실, PC, 직원도 없는 유령 단체였다. D 단체 대표는 자기가 운영하는 학원 시설, 기자재를 단체 소유로 허위로 기재해 보조금을 타냈다. E 아동센터 원장은 대금 이체 증명서를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위조해 운영비를 착복한 사실이 적발됐다. 행사나 회의를 연 사진을 일부만 잘라내 여러 건처럼 위조하거나 사진 속 현수막 날짜를 조작한 사례도 감사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같은 장소에서 참석자 배치나 복장을 바꿔 다시 촬영하는 식으로 조작해 국고보조금을 타낸 사례도 적발됐다”고 했다.

한 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독립운동가 초상화 전시 앱 개발비로 5300만원을 업체에 지급한 뒤 500만원을 되돌려 받는 등 총 4개 거래 업체에서 3300만원을 리베이트로 받고, 직원 2명의 5개월 치 급여에서 523만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돌려받아 수사 의뢰됐다. 한 시민 단체는 책자 제작 수량을 부풀리고 업체와 단가를 조정해 658만원을 부정하게 타낸 사실이 적발됐다. 이산가족 관련 사업을 하는 F 단체는 보조금을 전·현직 임원 휴대전화 구입비나 가족 통신비 등에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G 단체는 일자리사업 보조금 지급 대상 실업자를 모집하기 어려워지자 이미 취업한 사람이나 창업한 사람, 다른 일자리 지원금을 이미 받는 사람 등을 실업자로 꾸며 보조금을 타냈다.

정부는 보조금 신청 과정에서 허위 증빙 서류 작성 같은 부정이 드러난 경우 지급된 보조금 전액을, 집행·사용 과정에서 부정이 적발된 경우 해당 금액을 환수하기로 했다. 비위 수위가 심각한 86건은 수사기관에 형사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고, 목적 외 사용 등 300여 건에 대해서는 감사원에 추가 감사를 의뢰키로 했다. 정부는 보조금 수령 단체로부터 사업을 위탁·재위탁받은 단체들도 국고보조금 관리 시스템에 전부 등록하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관리 체계도 전산화하기로 했다. 또 보조금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대상을 현행 3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회계법인 감사 대상을 기존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 사업으로 확대키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보조금이 워낙 방대해 국민이 직접 감시하지 않으면 잘못 사용될 소지가 있다”며 포상금 제도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최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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