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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민족영웅 발굴” 보조금 챙겨 정권퇴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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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통일운동단체는 2022년 “묻힌 민족의 영웅들, 히든 히어로를 찾겠다”며 626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그러곤 ‘윤석열 정권 취임 100일 국정 난맥’ 등 전혀 무관한 정치적 강의들을 편성해 윤석열 정권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B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같은 해 청년 창업 지원사업 보조금 1000만원을 전액 무단 인출해 사적 용도로 쓴 뒤 잠적했다.

4일 대통령실이 발표한 ‘1~4월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일제 감사결과’에 나오는 주요 적발 사례다. 정부는 최근 3년간(2020~2022년) 국고 보조금을 받은 1만2133개 민간단체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결과, 1조1000억원 규모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비리를 적발했다. 확인된 부정 사용금액은 314억원이었다.〈중앙일보 5월 19일자 1면〉 감사 대상에서 보조금 3000만원 이하는 제외돼 실제는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고, 비영리단체가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정·비리 유형은 횡령과 리베이트 수수, 허위 수령,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내부 거래 등 다양했다. 사단법인 C협회는 이산가족 교류 사업으로 받은 2000여만원을 협회장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중국 내 사무실 임차비나 전·현직 임원 휴대전화 구매와 통신비 등에 썼다.



청년창업지원금 다 쓰고 잠적…‘보조금 비리’1865건 적발



D기념사업회는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전시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비로 5300만원을 업체에 지급한 뒤 500만원을 돌려받는 등 거래처 4곳에서 3300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직원 2명의 5개월분 급여 2100만원 중 523만원을 기부금 명목으로 돌려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지역아동센터장은 센터 운영 보조금을 강사료·소모품비로 업체에 지급한 것처럼 이체 증명서를 포토샵으로 위조해 225만원을 횡령했다. 같은 장소에서 참석자 배치나 복장을 바꿔 재촬영한 뒤 날짜만 바꿔 강사비 등 보조금을 타낸 단체도 있었다. 부부가 대표인 F사회적협동조합과 G교육은 2021년 지역산업 맞춤형 일자리 창출 사업 보조금을 각각 받아 노트북 임대 등 가족 내부 거래로 3150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H연합회 이사장 등은 통일 분야 가족단체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1800만원에 달하는 업무추진비로 술을 사거나 유흥업소를 찾았다.

대통령실은 “비위 수위가 심각한 86건은 사법기관에 형사 고발 또는 수사 의뢰를 진행하고, 목적외 사용·내부 거래 등 300여 건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추가 감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는 보조금 신청 과정에서 허위 사실 등이 드러난 경우 보조금 전액을 환수하기로 했다. 집행·사용 과정에서 부정·비리가 드러난 경우에도 해당 금액을 돌려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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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투명성 확보를 위해 보조금 관리 시스템도 개선한다. 대통령실은 “보조금을 직접 수령한 단체뿐만 아니라 위탁·재위탁을 받아 실제 예산을 집행한 하위 단체도 국고 보조금 관리 시스템인 ‘e나라도움’에 전부 등록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는 전용 시스템 없이 종이 영수증으로 증빙을 받고 수기로 장부를 관리해 허술한 점이 있었는데 이를 전산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1월부터 광역단체에 우선 도입한 지방 보조금 관리 시스템 ‘보탬e’를 올해 하반기부터 기초단체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사후 검증도 강화한다. 우선 보조금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대상을 현행 3억원 이상 사업에서 1억원 이상으로, 회계법인 감사 대상을 기존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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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회계법인 감사 대상 확대는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한 사안으로,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획재정부 총괄 아래 44개 전 부처가 참여하는 ‘보조금 집행점검 추진단’을 통해 분기별로 집행 상황을 점검하고, 보조금 부정 시 사업 참여 배제 기간을 5년으로 명시할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보조금이 워낙 방대해 국민이 직접 감시하지 않으면 잘못 사용될 소지가 있다”며 포상금제 강화를 지시했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정부는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예정이다. 우선 내년도 보조금부터 올해보다 5000억원 이상 감축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2조원 가까이 민간단체 국고 보조금이 급증했으나 제대로 된 관리·감독 시스템 없이 도덕적 해이와 혈세 누수가 심각하다고 봤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명목은 그럴듯하지만, 효과 없는 사업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예산을 구조조정해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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