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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매경시평] 어떤 시간 속에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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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간은 유일하게 작동하는 타임머신이다. 올해 부커상을 받는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말한다. 우울하고 반어적인 소설 '타임 셸터'는 좋았던 기억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을 그린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옛 담배 브랜드 하나까지 고스란히 재현한 '과거 클리닉'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갈수록 많은 이들이 과거의 동굴에 숨으려 한다. 급기야 온 나라가 국민투표를 거쳐 특정 연대로 돌아가기로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1980년대를 택한다. 스웨덴은 1970년대, 체코는 1990년대를 원한다.

시간은 변화의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변화를 가속하려는 이들은 종종 역사를 피로 물들인다. 프랑스혁명의 로베스피에르나 러시아혁명의 레닌이 그랬다.

변화에 굼뜬 조선이 변화를 거부하는 러시아 차르에게 의지하려던 때도 있었다. 127년 전 6월 5일 민영환은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외무대신을 만난다.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하러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그는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한 고종을 보호하고 일본에 진 빚을 갚게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이듬해 6월 5일에는 런던에 도착한다.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사절로 간 것이다. 그의 여행기(해천추범과 사구속초)는 조선인 최초 세계 일주 기록이다. 일본 메이지 정권 실세들이 같은 길을 거쳐간 것은 거의 한 세대 전이었다. 30세의 이토 히로부미도 낀 이와쿠라 사절단은 2년 동안 미국과 유럽의 선진 제도와 문물을 살펴보고 100권의 보고서(미구회람실기)를 냈다. '천 리를 한순간에 도달'하는 전신과 철도에 놀라워했고 산업혁명에 앞선 영국의 공장을 보며 번영하는 제국의 비밀을 풀었다. 두 나라 엘리트는 모두 부국과 강병의 길을 고민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달랐다. 미래는 엇갈렸다.

고스포디노프는 늙은 유럽을 그렸다. 그는 공기 중에 떠도는 불안의 냄새를 맡았다. 지난날 공산주의자는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 오늘날 포퓰리스트는 빛나는 과거로 돌아가자고 속삭인다. 하지만 황금시대는 흔히 상상 속에만 있다. 기억이 반드시 실제 일어난 사실은 아니다.

기억을 잃을 때 맨 먼저 사라지는 것은 미래의 개념이다. 미래가 없는 이들은 과거에 투표한다. 다가올 날들에 대한 불안과 공포, 우울감을 떨쳐버리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나 브렉시트도 그런 심리를 반영한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옛 소련제국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과거는 재발명되고 향수는 독이 된다.

늙은 대륙의 딜레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소설 속 70대는 자신의 20대나 30대 시절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에게는 엄청난 부정의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버리고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려는 젊은이는 없다.

소설에서처럼 우리도 과거로 가는 국민투표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산업화시대를 높이 살 것이다. 또 누군가는 민주화시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산 이들의 기억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국의 압축 발전은 전설적이다. 러시아 차르에게 군사와 재정 지원을 간청하던 나라의 1인당 실질구매력은 이제 일본을 앞섰다. 늙어가는 속도도 초현실적이다. 지금처럼 출산율이 0.8명도 안되면 다음 세대 인구는 부모 세대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출산율이 4.5명에 이르던 1970년대의 성장 활력은 꿈도 꿀 수 없다. 젊은이가 줄어들수록 세상을 바꿔보자는 외침도 잦아들 것이다. 파괴적 혁신은 공허한 주문이 될 것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산업화나 민주화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난날의 신화 속으로 도피할 수 없다. 가속의 시대에는 현상에 머무르는 것조차 시대착오적이다. 이 여름 나라 밖으로 가는 이들은 시간여행자로 돌아올 것이다. 화두는 무거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시간 속에서 살 것인가.

[장경덕 작가·전 매일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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