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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인터뷰] “모델 기반 설계(MBD)로 개발에서 생산·유지보수까지 한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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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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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모델 기반 설계(Model Based Design)이라는 용어가 있다. 소프트웨어(SW) 개발 방법론의 일환으로, 제품의 설계나 개발, 제조, 유지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지원한다. 작업의 효율성이나 정확성, 품질 향상을 위해 항공우주, 자동차, 조선 등에 도입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한상설 첨단기술연구원 위성체계단 위성체종합팀장은 <디지털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MBD가 무기체계 개발에도 도입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보수적이고 레거시 코드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국방 분야에서 시스템 설계의 복잡성과 확장성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향후 우주 분야에의 도입 가능성에 대해 소개했다.

◆첨단 기술개발의 최전선 국방, 그 중추를 맡고 있는 국방과학연구소(ADD)

한 팀장을 만난 것은 수학적 컴퓨팅 소프트웨어(SW) 기업 매스웍스가 개최한 ‘매트랩 엑스포 2023 코리아’ 행사장이었다. 매트랩은 엔지니어나 과학자를 위해 알고리즘 개발, 데이터 분석, 시각화 및 수치 계산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매스웍스의 매트랩과 ‘시뮬링크’는 MBD 구현을 위한 대표적인 SW 중 하나로, 한 팀장은 ‘국방, 우주 개발의 MBD 프로세스 적용’ 발표를 진행했다.

ADD는 국방 분야의 기술개발을 맡는 조직이다. 방위산업체와 협력해 재래식 무기부터 총, 포, 탄약부터 레이더나 인공위성과 같은 첨단 기술을 연구한다. 완성된 무기체계의 성능 평가나 검증 등도 수행하는데, 지난 연말 독특한 흔적을 남겨 ‘UFO’ 논란을 빚은 바 있는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도 ADD의 산물이다.

한상설 팀장은 1996년 ADD에 입사한 베테랑 엔지니어로, 소프트웨어(SW) 중심의 제어기 설계 및 유도무기 개발에 함께했다. MBD 프로세스를 도입한 것도 10여년 전 유도무기 개발 과정에서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흔히들 군에서 사용되는 첨단 기술 전반에 대한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군사기술’이라는 정의는 조금 모호하다. 같은 기술을 군에서 사용하느냐, 민간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군사기술과 민간기술로 나뉘는데, 그 근간은 큰 차이가 없다”며 “현재 민간 영역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공위성 기술도 군사기술에서 비롯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부서에서 근무 중이다. 인공위성 개발의 설계부터 SW, 하드웨어 제작 및 실험 등 일련의 모든 과정, A to Z를 담당하는 위성체 개발팀장이다. 유도무기 개발 과정에서 적용한 MBD 프로세스를 우주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매스웍스의 솔루션이 MBD를 위한 대표적인 툴은 아니지만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익숙함’이라고 답했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자신을 비롯해 최근 신입 직원까지도 매트랩이나 시뮬링크는 익숙하게 다룰 수 있어 협업에 이점을 지닌다.

또 “모델링이나 시뮬레이션 같은 경우 굉장히 여러 기능들을 제공하는 곳이 많은데, 가끔은 그게 엔지니어를 방해하기도 한다. 일하기도 바쁜데 계속 뭘 새로 하라고 하는 경우다. 매스웍스는 엔지니어가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 조직에서의 지원도 유용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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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D는 단순 SW 개발론 아냐··· 설계부터 생산까지 아우르는 ‘프로세스’”

한 팀장은 MBD를 단순한 SW 개발론이라고 정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단순히 시뮬레이션 툴을 사용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SW 개발부터 현장에서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요구조건이 반영돼 있는 프로세스, 일종의 가이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MBD 프로세스를 도입하지 않으면 SW를 개발하는 이들은 SW 개발만 하고, 알고리즘 개발하는 이들은 알고리즘만 개발한다. 그리고 이걸 받아서 실제 제품을 만드는 엔지니어들을 위한 별도 규격서가 필요하는 등, 제품 개발에서 생산까지 계속해서 복잡성이 커진다. 이 과정에서 휴먼에러가 발생할 수 있고, 이걸 잡아내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를 모델을 기반으로 설계하는 MBD 프로세스를 적용할 경우 전 과정에서의 작업 능률이 대폭 향상된다는 것이 한 팀장의 설명이다. 효율성이나 정확성, 품질이 높아지는 동시에 개발에 필요한 시간 단축 및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개발운영(DevOps)와 닮았다는 점이다. 개발(Development)과 운영(Operations)이라는 다른 레이어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MBD는 하드웨어 설계를 위한 시뮬레이션이나 실제 생산까지 관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사일로(Silo)화돼 있는 프로세스를 통합하려 한다는 목표는 같다.

한 팀장은 무기개발 및 인공위성에서의 MBD 적용 사례를 공유했지만 그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거의 모든 공산품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도입에 적극적인 것은 우주 분야다. 우주 발사체의 경우 회수나 수리가 어려운 만큼 매우 정밀한 기술이 요구된다. 실제 발사체와 SW 단의 시뮬레이션, 그리고 우주상의 발사체와 동일한 장치를 지상에서 구현해 검증하는 하드웨어 검증까지, ‘디지털 트윈’을 넘어 ‘트리플 트윈’을 구현한다. MBD 프로세스를 통해 이런 구현의 복잡성을 낮추고 높이는 데 특화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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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쉽지만은 않은 길, 거부감 이겨내야

국방은 극도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분야다. 전문가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MBD라는 프로세스를 도입한 것도 상당한 모험이었다는 것이 한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10여년 전 실무를 맡고 있던 당시 처음으로 MBD라는 걸 알게 됐다. 내부에서도 선뜻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정작 도입하려 해도 하드웨어 개발 단에서 ‘귀찮은데 그걸 왜 해?’라고 하면 프로세스가 안 만들어지고, 그래서는 반쪽짜리 MBD에 불과하다”며 조직 차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실제 한 팀장이 ‘MBD 전도사’가 된 것도 당시의 본부장, 팀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제가 MBD를 처음 도입할 때 이 화두를 던진 것은 당시 본부장님이었다. 내부적으로 검토 끝에 ‘괜찮겠다’고 했더니 본부장님은 ‘괜찮은 걸로 끝나면 안 되고 실제로 해봐야지’라고 했고, 당시 팀장이 이를 받아들여 제가 하던 사업에 적용하게 됐다.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MBD 프로세스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기존의 경험을 토대로 우주 분야에도 MBD 도입을 추진 중이다. 우주 분야는 MBD 프로세스에 안성맞춤인 데다 내·외부적인 기대도 크고, 방위사업청이나 학계, 산업계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에는 MBD를 도입하면서 자신은 있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이 생겼다. ADD 내부에서도 MBD 도입을 고민 중인 분들이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많은데, 신뢰도가 최대의 가치인 국방 분야에서 MBD는 도움이 됐으면 됐지, 장애가 되진 않는다”고 피력했다.

다만 MBD 프로세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요술램프는 아니라고도 부연했다. 초기 모델링을 잘 하지 않으면 없으니만 못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팀장은 “코드를 잘 짜지 못하는 후배들이 오더라도 MBD를 잘 쓸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의 코드 역량에 상관 없이 MBD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며 “코드의 시대가 저물고 모델의 시대로 넘어가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 아닐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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