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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최초 ‘성전환’ 사이클 선수 나화린, 여성부서 우승…“등수 뺏어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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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여성 선수로 국내 최초 공식 경기 출장...도민체전 여자 일반 1서 경륜서 1위

경기 후 상대 선수들 찾아 '사과'의 뜻으로 음료 건네기도...“우월한 입장이다 보니∼”

세계일보

3일 오후 강원 양양군 사이클 경기장에서 열린 제58회 강원도민체육대회 여자 일반 1부 경륜 경기에 출전한 나화린(철원·앞줄 가운데)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성전환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공식 경기에 출전한 나씨는 이날 1위를 차지했다. 양양=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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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공식 경기에 출전한 나화린(37·철원)씨가 논란 속에 우승을 차지했다.

나씨는 3일 오후 강원 양양군 사이클 경기장에서 열린 제58회 강원도민체육대회 여자 일반 1부 경륜 경기에 출전, 강릉과 춘천 대표를 제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는 출발부터 선두로 치고 나와 330m 트랙 3바퀴를 역주하면서 줄곧 선두를 지켰다.

경기를 마친 뒤에는 행여나 본인의 출전으로 1등 기회를 놓쳤을지 모를 상대 선수들을 찾아가 사과의 뜻으로 음료를 건네기도 했다.

나씨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많이 긴장했는데 온 힘으로 달린 것 같아 뿌듯하고 남은 두경기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혹시 나의 출전으로 상대 선수들이 기권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에 긴장해 2시간밖에 못 잤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에게 음료를 준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제가 아무래도 우월한 입장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등수를 하나씩 뺏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죄송한 마음을 담아 사과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8년 전 경기에 출전했을 때보다 여성부 기량이 높아져 예상보다 힘든 경기를 펼쳤다”며 “논란을 만들고자 출전을 결심했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 자체가 다시 즐거워졌고 모든 경기에 가장 높은 곳까지 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경기를 처음 뛰어본 결과 남자, 여자뿐 아니라 성전환자를 위한 제3의 경기를 신설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이틀간 남은 경기도 최선을 다해 임해 1위를 놓치지 않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4일과 5일 각각 같은 장소에서 스크래치와 개인도로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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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성전환 사이클 선수 나화린(37)씨가 지난 1일 강원 철원군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철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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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1일 나씨는 성전환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공식 경기 출전 소식을 알린 바 있다. 그는 키 180㎝, 몸무게 72㎏의 건장한 신체를 자랑한다. 골격근량은 32.7㎏다. 일반 여성의 평균 골격근량이 20~22㎏인 것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은 수치다.

아스파라거스 농장을 운영 중인 나씨는 지난해까지 36년간 남성으로 살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독립할 기반을 마련한 뒤 지난해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성전환(성확정)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나씨의 성별은 현재 공식적으로 ‘여성’이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맨앞도 ‘2’로 바꿨다. 전국체전 출전 규정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녀’ 외에 트랜스젠더에 관한 내용을 따로 두지 않아 그의 대회 출전을 뚜렷이 제한할 근거는 없다.

그는 “인생을 건 출전을 통해 차별이 아닌 구별을 얘기하고 싶었다”며 “만약 나의 전국체전 출전이 누군가의 자리를 뺏는다면 깊이 고민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꺼이 그 무대를 밟겠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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