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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부자들의 재테크] 보이차 357g이 2억원… 티테크에 빠진 세계 부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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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지막 품목, ‘무지홍인(无纸红印)’입니다. 시작가 1억원부터 200만원씩 호가하겠습니다. 1억1400만원, 1억1600만원 감사합니다. (중략) 1억8500만원 현재 최고. 1억9000만원 나왔습니다. 2억원, 2억1000만원 나왔습니다. 2억1000만원, 축하드립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보이차 거래 플랫폼 에세티(ASSETTEA)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끽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이차 경매를 진행했다. 이날 보이차 한편(보이차를 세는 단위, 357g 정도 보이차를 떡처럼 뭉쳐 편편하게 한 것)의 최고 낙찰가액은 2억1000만원. 1950년대 중국 운남성 써상판납주에서 생산된 ‘무지홍인’이 그 주인공이었다. 경매로 나온 보이차는 총 11종으로, 전체 낙찰가액은 4억4800만원이었다. 경매 응찰자는 40여명으로 대부분 40~70대 남성이었다. 중국과 두바이, 모로코 등에서 온 외국인 7명도 참여했다.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응찰 팻말을 연거푸 들며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보이차는 30년 이상 발효 과정을 거쳐야 제맛을 낸다. 숙성기간이 최소 30년이 넘은 골동보이차는 공급이 부족해 부르는 게 값이다. 호가 경쟁 끝에 최종 낙찰자가 된 40대 남성은 기자의 물음에 “대리인 자격으로 참여했다”면서 말을 아꼈다. 그는 “미술품과 유사한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해외 사업가라고 밝힌 다른 응찰자는 “1988년 생산된 ‘8892 후기홍인’ 두편을 자녀 앞으로 사뒀다”면서 “귀한 고급 차(茶)는 중국과 중동 지역 주요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가 당시 한편당 1500만원에 샀던 찻값은 이번 경매에서 4300만원에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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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있는 찻집 끽다거에서 만난 안성희 끽다 대표. /허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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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보이차 경매 시장의 첫 문을 연 ‘끽다’는 1910년에 제작된 보이차부터 현재 만들어진 보이차까지 120여종, 30년 이상된 진품 생차만 무려 12만편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3~4명이 한자리에서 함께 차를 우려내 마실 때의 보이찻잎의 양이 10g인데, 3~4명 정도의 가족 구성원이 매일 8000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서 조선비즈와 만난 안성희(39·사진) 끽다 대표는 “발효시켜 만드는 보이차는 다른 일반 차와 달리 오래둘수록 맛이 깊어지고 가격도 오른다”면서 “할아버지가 발효해서 손자가 마시는 차다”라고 소개했다. 끽다는 ‘차나 한잔 들게’란 뜻의 불교 용어 끽다거(喫茶去)에서 나온 말이다.

안 대표는 “중국 부호와 우리나라 보이차 애호가들은 희소성이 큰 진품 노차(老茶)에 투자한다”면서 “골동급품 보이차 매물은 한정돼 있는 반면, 이를 원하는 수요는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른다”고 했다.

세계 부자들이 차(茶)를 사는 데는 귀한 차를 마시며 탐닉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접근하는 측면도 있다. 보이차 경매 시장이 급성장한 데는 보이차가 중국 부호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된 영향이 크다는 게 안 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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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주식회사 끽다가 서울 명동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연 골동품급 보이차 경매에서 응찰자들이 응찰 팻말을 들고 있다. /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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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중국 유산계급(有産階級)의 전유물이던 보이생차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 등 정치적 영향으로 생산이 막혔고 홍콩과 대만으로 반출됐다. 현재 골동품급 진품 노차(老茶)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때문에 귀한 진품 보이차는 오래전부터 중국 상류 사회에서 중시되는 ‘꽌시(관계)’를 풀 열쇠로도 활용되고 있다. 규모나 가격, 세부 요건 등에 따라 과세 체계가 촘촘한 부동산과 주식, 미술품 등 다른 자산군과 달리 보이차는 세금도 다소 모호하다. 보이차는 개인 간 거래되는 중고물품 거래 형태인데, 우리나라나 중국 등은 가격에 관계 없이 일시적인 중고물품 거래에 대해선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끽다는 홍콩옥션, 영원다행, 베이징차협회 등 믿을 수 있는 기관과 진품 인증 및 판매 제휴를 맺고 진품 감별·실물 안심보관 서비스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글로벌 표준 차(茶) 거래 플랫폼 ‘에세티(ASSETTEA)’를 개발해 올해 출시했다. 에세티를 통해 다양한 진품 보이차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화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진품 여부를 인증·보관·관리·거래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1980년대 대만에서 활동하다 보이차를 국내에 정식 수입해 온 1세대 장인 안우섭 고문과 김재남 감사가 안성희 끽다 대표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김재남 감사는 “보이차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가품을 진품으로 속여 파는 업자들이 생겨났고, 유통 시장이 혼탁해져 한계를 느끼던 중에 블록체인 등 정보기술(IT)로 차 거래 시장을 보다 투명하게 바꿀 수 있다는 딸과 사위의 오랜 설득이 있었다”면서 “절대 꼼수를 쓰지 않고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온라인 거래 플랫폼 사업을 허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안성희 대표와 일문일답.

—보이차가 언제부터 부자들의 투자 대상이 됐나. 티(tea)테크 시장 규모는.

“알다시피 중국의 차(茶) 사랑, 차 문화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부자들이 늘어나면서 투자 시장이 급성장했다. 세계 옥션 시장에서 보이차 경매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부터다. 소더비(Sotheby’s) 등 세계 경매 회사들이 보이차 경매를 매년 연다. 지난 1936년 당시 시세 2.6홍콩달러(약 443원)에 판매됐던 보이차 ‘송빙호’는 2019년 홍콩옥션에서 1560만5000홍콩달러(약 26억6200만원)에 낙찰됐다.”

—시중에서 보이차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다. 중국 여행가면 다들 사 오지 않나. 어떤 차가 투자 가치가 있나.

“보이차라고 해서 가격이 다 오르는 게 아니다. 투자 가치가 있는 보이차는 매우 한정돼 있다. 첫째, 중국 운남성의 야생차 나무의 잎이야 한다. 둘째, 그 야생차 나무의 나이가 최소 150년 이상은 돼야 가치가 있다. 1000년 이상의 차나무도 현재 살아 있다. 운남성 야생 차나무는 모두 나무마다 관리번호가 부여돼 있고 허가를 받은 이들만 채취할 수 있게 돼 있다. 셋째, 생차여야 한다. 시중에 판매하는 보이차의 99%는 숙차다. 보이차는 본래 30년 이상 후발효돼야 마시기에 적합한데, 숙차는 악퇴발효 방식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선발효해 대중적으로 음용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든 것이다. 경매 시장에서 드라마틱한 가격 상승이 이뤄지는 건 생차다. 투자 목적으로 접근한다면 숙차가 아닌 생차를 사야 한다. 넷째, 족보가 있어야 한다. 보이차 안에서도 ▲홍인 ▲무지홍인 ▲8892 후기홍인 ▲맹해소타 ▲8582청병 ▲88청병 ▲천년고수 제일병 ▲천년고수 왕중왕 ▲금과공차 등 브랜드와 인지도가 있는 차에 투자 해야 한다. 다섯째, 이 조건을 모두 갖추면서 진품이어야 한다. 현재 유통 시장에 가품(가짜)이 너무 많다. 진품인 줄 알고 속아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전문가와 감별 시스템을 통해 이를 판별할 수 있다. 보관·관리·유통 등의 신뢰도도 매우 중요하다.”

—끽다가 보이차 거래 플랫폼 에세티(ASSETTEA)를 개발한 배경은.

“국내에서도 투자 목적으로 보이차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가품 유통 거래로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보관 상태에 따른 품질 관리 문제도 있다. 한국 보이차 1세대인 부모님은 차(茶)시장과 문화가 변질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컸다. 블록체인·인공지능(AI) 등 IT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보이차 거래 시장을 보다 투명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차 감별에 대한 노하우를 갖춘 끽다와 각 IT 분야 전문가들이 뜻을 모으게 됐다. 사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기획 및 법무 검토, 세무 검토 후 개발까지 4년가량 걸렸다. 다양한 전문가들의 자문을 모두 거친 뒤 대체불가토큰(NFT)의 기술을 활용한 진품 인증 및 거래 기록 추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진품을 판별하고 인증서를 발급하고 가격과 거래 내역도 투명화할 수 있다. 에세티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 거래는 당연히 부가세,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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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다의 김재남(왼쪽) 감사와 안우섭 고문. /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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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보다 중국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중국과 중동 지역 차 애호가와 보이차 수집가 사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온라인 유통 거래 시스템에 대한 니즈가 크다. 다행이 우리는 다양한 보이차 실물을 다수 확보하고 있고 내국인뿐 아니라 글로벌 고객들이 에세티를 이용하고 있다. 신용카드, 페이팔,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 해외 결제가 가능하도록 시스템도 구축했다.”

—앞으로 계획은.

“보이차 시장의 글로벌 전문 거래 및 인증 기관이 되는 게 끽다의 최종 목표다. 분기마다 다양한 문화를 접목한 경매를 추진할 계획이다. 오래전부터 고급 보이차는 여러 이유로 음성적으로 거래가 이뤄진 측면이 있다. 우리의 플랫폼이 세계 보이차 거래 시장을 양성화하고 건전한 차 문화를 이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안성희 대표는

▲경희대 미술대 한국화과 졸업 ▲성균관 유학대학원 동양미학 수료 ▲끽다거(2010) 매니저/다도 교육 ▲일본 우라셍케(2012.03~2012.11) 차 전문가, 다도 교육 ▲끽다거 차문화연구소 소장(2014~) ▲주식회사 끽다거 대표이사(2017~) ▲주식회사 끽다 대표이사(2021~) ▲차 전문가 1,2 과정 수료(선향다례원) ▲입회수업 수료(일본 우라셍케 한국지부)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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