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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한열이 살려내라던 그가 북극곰 작가가 된 이유[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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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부터 '기후위기' 천착…국내외 펭귄 퍼포먼스

1980년대 연세대 '한열이 살려내' 걸개그림으로도 유명

세월호, 촛불집회 등 사회 현안마다 작품으로 표현

'지구 온난화전' 오는 10월 31일까지 여수 장도서

핵심요약
[인터뷰] 최병수 설치미술 작가



만삭이 다 된 산모가 머리 위에 지구를 이고 있다. 밀물이 산모의 배까지 차올라도 산모는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지구를 지킨다. 기저귀를 찬 아이 옆에는 모래시계가 보인다. 설치미술가 최병수 작가의 <지구 온난화 展>의 작품들이다.

'북극곰 작가'로 알려진 최 작가는 30년 전부터 환경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96년 어느 날 TV에서 남극 펭귄이 빙하가 다 녹고 남은 빈 병 위에 간신히 서 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기온 상승으로 남극 펭귄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후 그는 얼음으로 펭귄을 만들어 서서히 녹는 과정을 퍼포먼스로 보여줬다. 작품 '펭귄이 녹고 있다' 이다. 기후위기를 알리는 첫번째 작품이었다.

"팔리는 작품을 해야지 이걸 왜 하냐. 얼음은 녹아서 손에 쥘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먹고 살 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먹고 살려고 하는 거라고 했죠. 환경이 없으면 전부 못 먹고 사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기후위기를 주제로 30년을 햇어요. 옆집에 불이 났는데 불은 안 끄고 놀고 있으면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닌 것 같았죠. 그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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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 作 '가이아 아틀란스'. 최병수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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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부터 환경 작가로 활동했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민중 화가였다. 1980년대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 전에는 목수 일을 했다. 1986년 당시 서울 신촌역 인근 3층 건물에서 벽화를 그리던 미대생들을 위해 나무로 사다리를 짜고 있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애써 그린 그림을 마구잡이로 지우는 모습을 보게 됐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경찰에 맞섰는데, 경찰들은 현장에 있던 이들을 모조리 연행했다.

"저는 대학생이 아니고 중학교도 졸업 못한 목수라고 말해도 경찰은 듣는 체도 안했어요. 그냥 다 같은 화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조서에 쓰지 않으면 검찰에 송치가 안된다고 하길래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죠. 그렇게 '화가'가 됐어요."

"'내가 왜 화가가 돼야하지? 멀쩡한 사람이 간첩이 되고 목수가 화가가 되지?'라는 의문에 빠졌었죠. 사회가 총체적 위기로 보였어요. 그때서야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죠. 천성이 비껴가는 성격도 아닌 데다가 건강한 사회에서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은 거죠. 그래서 미술을 가지고 사회운동을 시작했는데 13년간 먹고 살기 위해 망치와 톱질을 들었다면 이후부터는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 연장을 들었죠. 현장 미술은 그야말로 체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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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고 있는 최병수 작가. 박명신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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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는 민중미술협의회에 가입하고 벽화 분과에서 활동했다. 그해 5월 연세대학교는 축제 중이었다. 그림 작업을 도와달라고 해서 목수의 기량을 살려 30m가 넘는 캔버스를 크게 짜줬다. 그때 같이 작업한 동아리가 이한열 열사가 속해있던 '만화사랑'이었다. 이한열 열사와 같이 작업한 적은 없지만, 서로 두어 번 마주친 사이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이한열 열사가 체류탄을 맞았다. 중앙일보에 실린 사진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걸 느꼈다. 이 상황을 그냥 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판화에 각인을 했다. 꼴딱 밤을 새서 아침까지 판화 180장을 찍었다. 그걸 본 한 여학생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그림을 크게 그리면 어떻겠냐고 했다. 높이 10m, 폭 7.5m '한열이 살려내'라는 걸개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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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최병수 작가가 그린 '한열이를 살려내'. 최병수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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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세월호' 사건에 집중했다. 모순된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 많은 학생들이 물 속에 그냥 가라앉게 놔둘 수 있는가. 그는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오랜 시간 머물면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조형물을 세웠다.

그는 한시도 순탄하게 지내본 적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는 걸 듣고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박근혜 하야', '퇴진' 같은 작품을 닥치는 대로 만들었죠. 광화문 집회 때는 5t트럭에 쇳덩이를 실어 날랐어요. 철, 쇠, 발전기 등에 쓰인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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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팽목항에 세운 작품. 최병수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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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300여 명 학생들과 기후 위기 엽서를 쓰는 이벤트도 열었다. 전시가 끝나는 대로 해당 엽서들은 UN에 보낼 예정이다. 이후에는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를 다룰 계획이다.

이번 전시는 13개월간 진행된다. 지난해 9월 하루 동안 여수 장도에서 '펭귄이 녹고 있다' 퍼포먼스를 했는데, 철수 직전까지 사람들이 작품 옆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이후 예울마루 측에 연장전을 제안했고 이야기가 잘돼 10월 31일까지 전시를 열게 됐다. 현재 전시된 작품은 10여 점. 늘 새로운 것을 찾는 그는 전시 중에도 계속 작품을 바꿔나갈 예정이다.

그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딱 한 가지다. 인류가 2027년까지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를 반드시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2027년은 UN이 정한 시한이기도 하다. 작품에 새겨진 '2027' 숫자는 바로 이러한 의미다. 그때까지는 반드시 기후위기 문제를 알리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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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 作 '모래시계 2027'. 최병수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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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도구로 설치미술이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교감하기 좋다"고 한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엄숙하지만 표현 방식은 유머러스하고 위트가 있다. 작품 '꽃게'를 '꽃을 들고 있는 게'로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조금만 설명해줘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고요. 달팽이가 달을 들고 있고, 꽃게는 꽃을 들고 있는 것처럼 쉽게 공감하고 소통하는 게 좋습니다."

최병수 작가는 자신을 두고 광대라 칭한다. 사람들이 사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주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누구나 공감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서로 벽을 쌓고 소통하지 않는 개인화된 세상에서, 광대라도 재롱을 떨고 슬픈 이야기를 전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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