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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세계 6위 전력인데, 작전권은 미국에…군이 ‘골병’ 든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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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ㅣ사라진 ‘전작권 환수’

‘조건부 전작권 전환’ 시한 없어

두뇌 내준 상황, 중추신경 마비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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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통수권자의 입에서 “군이 골병이 들고 말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5월11일 ‘국방혁신위원회’ 출범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전세계에 북한이 비핵화할 것이니 (대북) 제재를 풀어달라’고” 한 것이 군 골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이한 인과관계가 일단 맞는다고 가정하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상당히 일관성 있어 보인다.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으로 다시 명기하고 선제타격과 참수작전을 운위하면서 연합군사훈련을 확대하고 한-미, 한·미·일 정상회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 아세안 등 가는 곳곳 ‘북핵 규탄과 제재 강화’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우리 군의 몸 상태는 멀쩡한 정도를 넘어 2년 연속 세계 6위의 평가를 받을 만큼 막강하다. 그렇다면 ‘정신’에 골병이 들었다는 말인가. 안타깝지만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 원인이 전 정부의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사고력의 부재를 드러낼 뿐 아니라 군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다. 대다수의 군 간부들은 맹목적인 색깔론에 휘둘리지 않는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확연히 다른 비정치적 직업의식을 가지고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인식의 오류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킨다. 개인의 질병에 대한 잘못된 진단과 처방도 그러할진대 국가조직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군이 ‘골병든’ 진짜 이유에 대한 성찰은 군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의 표시다. 이미 오래됐지만 최근에는 아예 의제에 오르지도 않는 두가지만 짚어보자. 만성질환도 치명상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작권 유지해달라’는 간청


아직도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이 미군 4성장군(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움 이전에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을 준다. 연합사령관은 직속상관인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한반도에서 전쟁 진입 단계부터 종결까지 ‘책임’을 지게 된다. 7명의 한국군 4성장군 중 6명은 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 아래로 들어가고 나머지 1명(합참의장)은 ‘전쟁지도’에 참여는 하겠지만 주로 전황 보고를 받는 일을 할 것이다. 요컨대 한반도 전쟁에서 우리 군은 권한도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전작권 환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무기 국산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노태우 정부는 전작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1992년까지 정전 시(평시) 작통권을, 1994년까지 전작권을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까지 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1994년 말 작전 정보 위기관리 관련 권한을 연합사령관에게 ‘즉시’ 재위임하면서, 허울뿐인 ‘정전 시 작통권 환수’로 끝났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12년 4월17일로 날짜까지 못박아 전작권을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미국에 ‘간청’해 한차례 연기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예 환수 시한을 없애고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으로 바꿨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사실상 미군의 ‘합격 판정’ 없이는 불가능한 조건 충족을 위해 하릴없이 애쓰다가 말았다. 본래 내 것인데 되찾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논거는 표면상으로는 북한의 위협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반미 프레임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국의 정치인들 다수는 진보든 보수든 전작권 환수 주장과 반미를 쉽게 연결시킨다. 군 지휘부도 다르지 않다. 이어서 반미는 곧 친북이라는 ‘등식’을 통해 이념의 공포가 뒤따른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와 안보는 이 시대착오적인 이념이라는 기관차로 ‘가치’와 ‘힘에 의한 평화’라는 사실상 텅 빈 객차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전작권이 없는 한국군의 무기는 미군의 ‘작전자산’이 된다.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는 자기네 입장에서 어차피 해야 할 훈련을 한반도 쪽에서 해보는 정도 이상의 실질적인 의미는 없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유지·고조시킴으로써 미국의 전략적 이익 증대에 더 기여한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진다 한들 작전통제권 구조 속에서 별 의미가 없다. 한·미·일 3국 군사동맹화도 실제로는 미-일 ‘전쟁동맹’의 강화와 미군 주도의 전쟁지휘체계의 확장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다.

물론 어떤 무기든 국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지휘체계 아래에서 아무리 3축체계를 강화하고 매년 몇조원에 이르는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고 심지어 핵무기를 보유한다 해도 그것들은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두뇌를 아웃소싱(당)한 기막힌 상황에서 우리 군의 중추신경에 ‘골병’이 들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자기 군대를 스스로 지휘해 싸워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은 추상적인 자주권 이전에 보편적인 군 지휘관의 본능 아닌가.

윤석열 정부 ‘육군 편중’ 가속


한-미 연합방위체계에서 파생된 고질 중 하나는 육군에 과도하게 편중된 군 구조다. 대미 의존적 군사전략과 군 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는 노태우 정부 시절의 ‘818 계획’이다. 입법까지 됐지만 육군이 병력·상부조직 축소에 반발하면서 성공하지 못했다. 그 뒤 3군 간 ‘전력 불균형’은 점차 개선되긴 했지만 고위급 ‘인사 불균형’은 시정되지 않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개혁2020’과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 제정(2006년 12월)으로 해소되는 듯했다. 합참 예하의 고위 지휘관 참모의 보직 비율을 육해공 각각 2 대 1 대 1(국방부 직할부대는 3 대 1 대 1)로 법제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까지 인사 불균형에 대한 해·공군의 불만은 다소 줄어들었다.

전력 구조와 인사 불균형은 군의 생명인 단결력을 저해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조리보다 중대한 문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 고질적 문제가 다시 고개 들고 있다. 안보실(국방담당 차장, 비서관, 위기관리센터장), 국방부(장관, 정책실장), 합참의장 등에 모두 육군(육사) 출신이 기용됐다. 올해 5월11일 출범한 ‘국방혁신위원회’(위원장은 대통령) 부위원장도 육군 출신이다. 현재 육군 소장이 맡고 있는 합참 ‘핵·더블유엠디(WMD)대응본부’를 확대해 내년에 창설 예정인 전략사령부 사령관도 육군이 맡게 될 것이 확실시된다. 전략사령부는 항공기·미사일방어체계·잠수함·우주전력 등을 망라한 3축체계를 운용할 계획이므로 육군보다는 해·공군이 더 적합할 테지만 ‘전략’이라는 말이 육군을 끌어당기고 있다.

필자도 (육)군 출신이라서 그런지 “군이 골병들었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보자.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라면 이런 표현은 어떤 애정을 드러내는 것일 테니. 윤 대통령도 군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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