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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문화가 너무 따분해졌다[P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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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요즘의 문화·예술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는 늘상 나오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정치적으로 특정한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공격이 매우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걸 보면 어쩌면 예전보다 '제도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자유가 많이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일대에서 10년 동안 영문학을 가르쳤던 작가·문학비평가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바로 이를 지적합니다. 그가 2023년 5월 16일 태블릿 매거진에 기고한 글을 발췌요약으로 소개합니다. 전문은 PADO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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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따분하다. 당신도 따분하다. 우리 모두 따분하다. 우리의 책,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끝도 없이 단조로운 넷플릭스 플레이리스트가, 우리의 음악, 연극, 예술이 지루하다. 요즈음 문화는 격렬하게 조심스럽고 신경질적으로 공손하며, 진심 어리게 적당하고 끈덕지게 명백하며, 무엇보다도 음울할 정도로 뻔하다. 결코 이미 알려진 범위 너머를 배회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로버트 휴즈는 모더니즘 예술을 두고 '새로움의 충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젠 충격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것도, 무책임하고 위험한 것, 두드러지고 독창적인 것, 괴이하고 흥미로운 뇌의 산물도 없다. 적당한 건 있다. 때론 훌륭하고 잘 만들어진 것, 프로페셔널하고 시간 때우기에 좋은 것도 있다. 하지만 격렬하고 잊을 수 없는 것, 아무런 설득도 없이 우리의 삶을 바꾸길 명령하는 그런 것은? 이젠 그런 게 어떤 느낌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하다.

무엇 때문일까? 물론 '워우크'(woke)가 첫째다. 정치지도원은 미(美)의 적이다. 데이브 히키를 흉내내자면, 미는 욕망을 추동하고 욕망은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욕망은 무질서한데 정치장교는 통제광(狂)이다. 정치지도원은 우리가 무얼 원해야 하는지를 지시한다.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 운동은 우리의 감각이 느끼는 것과는 달리 모든 신체가 동일하게 성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우리를 설득하려 한다. 우리 시대의 성 철학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정치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지침에 따라 우리의 욕망을 개혁하라고 가르친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지루함은 워우크보다 훨씬 오래된 문제다. '문화 붐'의 제도적 형성이 본격화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로, 중산층의 급격한 팽창으로 취향('클래식' 음악, 유럽 예술, 모티머 애들러가 선전하던 위대한 고전)의 과시욕이 생겨나자 이를 메꾸기 위해 설명꾼, 선전가, 조직에서 이런저런 직함을 단 사람들이 나타났다.

(PADO 웹사이트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1960년대가 되자 상황이 급박해졌다. 그 중산층의 자식들이 모든 걸 불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시기에 전미예술기금, 전미인문학기금, PBS, 그리고 1970년에 NPR이 설립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모두 대학교에 다니는 계층에게 공식적으로 허용된 의식을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기관들이었다. 같은 시기에 WASP 귀족의 보루였던 미국 명문대의 입시 과정이 대폭 개편되면서 평민들도 상류 프로테스탄티즘의 문화적 습속에 입문하게 됐다. 한편 1920년대 고안된 MFA(예술석사)가 널리 확산되고 있었다. 1940년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미술에서 석사 학위를 제공하는 기관의 수는 11개에서 147개로 늘었고 문예창작 석사도 비슷한 정도로 늘었다. 예술가는 대학의 산물이 됐다. 대학에서 생산되고 대학에서 고용되는 일은 점점 더 잦아졌다. 그렇게 대학에서 어울리고 균질화됐다.

다시 말해 예술이 규범화되고 있었다. 히키는 예술이 제도적 통제를 회피했던 이전의 세기(파리의 보헤미안, 방랑하는 모더니스트, 예지에 사로잡힌 괴짜의 세기, 랭보, 고흐, 니진스키, 존 케이지,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세기)가 지나고 예술이 표준화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도덕화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바꿔 말하자면 청중 또한 규범화되고 있었다. 전통적인 신앙은 적어도 리버럴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쇠퇴하고 있었다. 예술이 대안 종교로 부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오래된 미국식 종교였다. 앵글로-칼뱅주의의 무미건조하고 마녀사냥에 몰두하는 도덕적 에너지가 문화로 흘러들었다.

그러자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스스로의 거대 담론이 없던 미국의 인문학 교수들이 새로운 프랑스 이론의 발 밑에 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맹 관계의 기관들(뮤지엄, 재단, 계간지)에 서식하는 이들도 같은 분야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교수들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청교도적 열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비정상적인 교접에서 워우크(더 무르익기 전에는 '정치적 올바름'이었다)라는 키메라가 태어났다. 술은 지적으로 새로운 술이라지만 그것이 담긴 부대는 여전히 똑같은 도덕주의다. 히키는 이렇게 썼다. "대륙 사상의 미묘한 도구성이 미국 교수들에 의해 허세 가득하고 가짜진보적인 곤봉으로 둔갑해 반대자를 흠씬 두들겨패는 데 쓰이고 있다."

인터넷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경제적 토대를 부숴버리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렇게 심각하진 않았으리라. 콘텐츠는 물질적인 가치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음악, 글, 영화, 텔레비전,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시각예술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해당 분야의 소득은 급격히 줄었다.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은 언제나 (적어도 처음에는) 소수의 청중의 지지를 받았다. 수입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임대료는 오르고 아르바이트로 얻는 소득은 줄어드는 오늘날, 소수의 청중으론 충분하지 않다.

사실 워우크가 폭군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건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중을 소외시킬 수 있는 사치를 아주 잠깐, 아주 조금조차도 누리지 못한다. 청중을 경악시킬 수도, 청중에게 도전할 수조차도 없다. 한편 워우크는 현대 문화가 지극히 반복적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역할도 한다. '다양성'은 동질성을 숨기는 장막이 된다. 똑같은 키치성 팝 음악, 중간문학 소설, 소원성취형 스트리밍 드라마, 정치선동성(agitprop) 갤러리 예술. 늘 있던 똑같은 것도 '소외'된 '공동체'의 일원이 만들면 뭔가 새로운 게 됐다고 여기게 된다.

우리가 지루한 사람들이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게으름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게으르다. 전후 세대의 문화에 대한 열망을 두고 비웃기는 쉽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열의가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결여를 느꼈다. 그때 당시 열망은 적어도 어떤 영역에선 의무였다. 나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대학생들을, 보다 높은 의식 차원에 다다르려 했던 대학생들의 진지함을 생각한다. 많은 대학생들이 카프카와 사르트르를 읽고 유럽 영화를 보며 현대 미술을 감상하고 조니 미첼, 패티 스미스, 밥 딜런, 루 리드의 노랫말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려 골몰했다. 수전 손택이 문화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런 삶의 자세를 체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젠 그런 종류의 열망,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갈급한 감각, 보다 높은 차원의 타자에 대한 갈망을 별로 볼 수 없다(내가 80년대 초 캠퍼스에 다다랐을 때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내게 보이는 것은 나르시시즘이다. 예술은 우리를 안심시켜야지, 결코 우리를 위협하거나 우리가 모자라고 무지하다거나 미숙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서는 안되고 우리의 소중하고 졸렬한 자아를 반사해 보여줘서는 안된다는 요구.

프랜 리보위츠는 위대한 예술을 창조하는 데 위대한 청중이 심지어 위대한 예술가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청중은 전후 세대, 특히 발란신, 라우센버그, 마일스 데이비스 등을 키워낸 뉴욕의 전후 세대였다. 위대한 청중은 예술가에게 모험을 할 자유, 무책임해지고 위험해지고 난해해지고 이상해질 자유를 줌으로써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사람들이 보다 높은 교양을 갖기 위해 경쟁하면 예술가가 승리한다. 그럼 우리 모두가 이기는 것이다.


PADO 웹사이트(https://www.pado.kr)에서 해당 기사의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국제시사·문예 매거진 PADO는 통찰과 깊이가 담긴 롱리드(long read) 스토리와 문예 작품으로 우리 사회의 창조적 기풍을 자극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조망을 돕는 작은 선물이 되고자 합니다.



김수빈 PADO 매니징 에디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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