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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849㎞ 동서트레일 '첫개통' 55구간 가봤더니 "다채로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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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시범구간 "징검다리, 모래사장" 다양한 체험
백패커 축적 노선 활용..."구두도 큰 불편 없어"
태안-울진 옛숲길 잇고 이어 "자연 훼손 없다"
휴대폰 안 터져..."26년까지 안내센터 등 보강"
"관광객들 많이 찾아 소멸 지역 활기 찾기를..."
한국일보

1일 경북 울진군 금남면 한티재에서 열린 동서트레일 55번구간 개통 기념식 참석자들이 숲길을 걷고 있다. 가파른 비탈길에 위태롭게 걸려 있던 옛 숲길을 평탄화하고 확장한 덕분에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울진=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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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또 걷다 보니 이젠 모래사장... 이거 완전 죽이는데요.”

“여긴 등산 싫어하는 초등학생 아들 녀석도 좋아하겠어요.”

“이 소나무 의자 너무 예쁘지 않아요? 퇴직하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 이리로 싹 몰리겠네.”

함께 걷기로 한 곳은 경북 울진군 금남면 수곡리 한티재 언저리서 금강송면 하원리 전치마을 야영장으로 이어지는 4.4km 숲길. 울진 등 동해안 지역에서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던 첫 번째 고갯길로 5단계 중 3단계 난이도에 해당하는 길이었다.

200여 명의 숲길 조성 관계자들이 동시에 걷는 통에 가다 쉬다를 반복했지만, 1시간 15분 동안 숲길에선 이야기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정장 차림으로 숲길 걷기 행사에 참여한 정모(50)씨는 “구두를 신고 걸어도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길이 잘 다듬어졌다”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경북 울진 망양정해수욕장까지 849㎞ 숲길을 잇는 동서트레일 55번 구간이 1일 개통했다. 55개 구간 중 가장 마지막 구간이자, 동쪽에선 첫 번째 구간이다. 55번 구간 길이는 20㎞로 구간 평균 길이 15.4㎞를 웃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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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 작은 계곡을 이뤘을 법한 숲길을 다듬기 전과 후의 사진. 1일 열린 산길 걷기 행사 참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지점에 설치된 안내 패널이다.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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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조성한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의 김정란 숲길관리실장은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구간 특성상 절반 이상이 난이도 1, 2단계에 해당하는 길”이라며 “각 구간은 누구나 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55구간은 우리금융그룹이 숲길 조성에 ESG 기금을 대면서 ‘우리금융길’이란 별칭이 붙었다.

동서트레일은 지난해 9월 849㎞의 숲길이 지나는 충남, 세종, 대전, 충북, 경북 5개 시도와 산림청 등이 공동 조성하기로 한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 한반도 남쪽의 중간에서 동서를 연결하는 첫 숲길이다. 동서트레일 내 다양한 숲의 생태·환경적, 문화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늘어나는 국내 장거리 트레일 수요에 대응하는 등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산림자원 육성을 목적으로 추진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한국형 트레일에 관심을 가진 백패커들이 자발적으로 걸으면서 축적한 노선이 바탕이 됐다”며 “마을 주민들이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사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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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개통 기념식 참가자들이 행사를 마친 뒤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계곡 광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지나고 있다. 55번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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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땀과 돈이 들어간 숲길은 달랐다. 건너기 힘들 것으로 보였던 계곡 구간에는 나무로 만든 튼튼한 다리가 놓였고, 미끄러워 균형을 잡기 힘든 산비탈 구간엔 자전거를 몰아도 될 법한 길이 생겼다. 산림청 관계자는 “모두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잇고 이어 만든 것일 뿐, 억지로 나무를 베어내 만든 길은 거의 없다”고 했다.

숙제도 적지 않아 보였다. 국정과제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홍보됐지만, 안내센터는 없었고 한티재 꼭대기에 세워진 안내판 하나가 전부였다.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 것도 흠이었다. 산림청 관계자는 “앞으로 차차 보강해 나갈 부분”이라며 “2026년까지 55개 구간 사이에 백패커들이 쉬어갈 수 있는 안내센터는 물론이고 야영장과 민박집 등을 갖춘 거점 마을 90곳을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동서트레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달희 경북도 경제부지사는 “산불 불쏘시개로 불릴 정도로 걱정거리였던 소나무 숲이 명품 숲길로 변신해 외국인 관광객도 유인할 경쟁력을 갖췄다”고 했고, 전치마을 주민 김세준(70)씨는 “숲길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 지역 경제도 나아질 것”이라고 반겼다. 손병복 울진군수도 “바다 일몰만 보던 사람들이 숲길을 통해 바다 일출도 볼 수 있게 됐다"며 숲길의 잠재성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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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재에 설치된 동서트레일 55구간 안내판. 해당 구간의 위치와 의미, 숲길 난이도, 주변 마을 편의시설, 기여자 이름 등의 정보를 담고 있다.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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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은 귀촌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됐다. 김소민(40)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는 “지리산 둘레길 인근 귀촌자들을 만나 보니 숲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고, 그게 귀촌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며 “소멸 위기 지역을 통과하는 동서트레일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임업인인 김 대표는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해 발주한 귀촌인 관련 용역을 수행하면서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걷기 행사에 앞서 열린 구간 개통행사에서 “50년 산림녹화사업으로 아름다운 숲을 갖게 된 만큼 이제는 산을 느끼고 누릴 때가 됐다”며 “동서트레일이 국민에게 큰 행복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개통행사는 지난 3월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울진 지역에서 열려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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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한티재에서 열린 '동서트레일 시범구간 개통 및 걷기 행사'에서 남성현 산림청장 등 주요 참석자들이 개통 기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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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55구간 곳곳에 세워진 안내판. 정민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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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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