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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유정 같은 사람 만날까 무서워”…여대생들 과외 앱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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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지난달 26일 부산 금정구 소재 20대 여성 A 씨 집에서 A 씨를 살인한 후 나온 정유정(23)이 자신의 집으로 가 캐리어를 챙겨 다시 피해자 집으로 향하고 있다. KBS뉴스 방송화면 캡처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대에 다니는 김모 씨(25·여)는 2일 스마트폰에서 과외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을 삭제했다.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이 과외 중개 앱을 통해 범행 대상을 물색한 것을 알고나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앱을 통하면 과외 구하기 쉽다는 말을 듣고 몇 개월 전에 가입했는데 정유정이 내 정보를 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했다.

● 과외 중개 앱 탈퇴 움직임 확산

동아일보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6.2/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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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엽기적인 범행 수법이 드러나면서 대학가에 여대생들을 중심으로 과외 중개 앱을 탈퇴하는 ‘엑소더스(대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정유정이 사용한 과외 중개 앱에는 과외교사가 약 45만 명, 학생 및 학부모 회원이 약 120만 명 가입돼 있다. 한국외대 재학생 박모 씨(21·여)는 “알고 보니 저는 물론 친구 대부분이 정유정이 사용했던 과외 중개 앱에 가입돼 있더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상당수가 중개 앱 이용을 중단하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과외 중개 앱 대부분은 과외교사로 등록할 때 얼굴 사진과 학교, 거주지역 등을 등록하게 한다. 정유정이 사용한 중개 앱의 경우 학생증 등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도 올리라고 한다. 학생 또는 학부모 회원으로 등록하면 이들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전화번호도 쉽게 얻을 수 있다. 동아일보가 과외 중개 앱 및 사이트 10곳을 확인한 결과 4곳은 학생이나 학부모 회원으로 가입하면 클릭 몇 번으로 5, 10분 내에 과외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확인할 수 있었다. 1곳은 전화번호가 기재돼 있지 않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면 곧바로 과외교사에게 연결됐다.

나머지 5곳은 과외 신청을 하거나 채팅 상담 요청을 하면 과외교사가 메시지나 전화로 답하는 방식이었다. 이 중 한 서비스에 동아일보 기자가 정유정이 했던 것처럼 ‘중학생 3학년 여학생 영어과외를 원하는 학부모’로 가입하자1분도 안 돼 “상담드릴 수 있다. 전화상담 지금 가능하시냐”는 과외교사의 메시지가 왔다.

● 중년 남성으로부터 ‘만나자’ 연락도

과외 중개 앱이 성범죄 등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경기 성남에서 중개 앱으로 과외를 여러 번 구했다는 박모 씨(27·여)는 “취업을 위해 찍은 프로필 사진을 올렸는데 온 연락 10개 중 1, 2개는 과외와 상관없이 중년 남성이 ‘만나자’고 연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 번은 ‘과외는 관심 없고 대화만 하면 된다. 원하는 금액을 주겠다’는 메시지도 받았다”고 했다. 일본어 과외를 해줄 수 있다고 올린 정모 씨(24·여)는 “일본어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30대 초반 남성을 만났는데 첫 만남에서 일본어 얘기는 안 하고 ‘사진이랑 실물이 똑같다’는 식의 말만 해 도망쳤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과외 등을 중개하는 앱의 경우 신상 정보 노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개인정보전문가협회장)는 “일부 앱에서 필수사항으로 돼 있는 전화번호 등 중요 정보는 선택사항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앱 업체가 과외교사를 인증해 인증마크를 달아주는 방식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송유근기자 big@donga.com
소설희기자 facthee@donga.com
최원영기자 o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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