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일 송기호 변호사가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합의 과정에서 논의한 내용을 담은 문건 일부를 공개하라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21년 3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있는 소녀상 위로 비가 내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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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양국은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양국 외교 장관이 발표한 합의에는 일본 정부 측 법적 책임을 명확히 짚은 내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합의 발표 직후 열린 참의원 회의에서 “위안부가 강제연행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송 변호사는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합의를 발표하기까지 양국이 협의를 거치는 동안 일본 측이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는지 등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라는 취지였다. 외교부가 이를 거부하자 송 변호사는 2016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외교 국익’ 두고 엇갈린 1·2심
1심은 협의 관련 문서를 전부 공개해야 한다며 송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문서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보호되는 국익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피해자 개인들로서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인간의 존엄성 침해, 신체 자유의 박탈이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국민의 일원인 피해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데에 책임감을 갖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12·28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피해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떠한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그 합의 과정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됐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2019년 3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1별관 앞에서 송기호 변호사가 한일 위안부 합의 문서 공개소송 재판 뒤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에 제출한 길원옥 할머니의 호소문을 공개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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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송 변호사가 청구한 정보가 외교관계 등에 관한 것이라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문서가 공개되면 일본과 쌓아온 외교적 신뢰관계가 심각하게 타격을 입을 수 있고, 향후 다른 나라와 조약이나 협정을 체결할 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1심이 ‘피해자와 국민의 알 권리’를 우선했다면 2심에선 ‘외교상 국익’ 쪽으로 추가 기운 것이다.
2심 판결은 사건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판결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한명인 길원옥 할머니는 재판부에“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진실인 강제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이 알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드린다”는 호소문을 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 판결로 완전히 배제된 ‘피해자들의 알 권리’
이날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일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알 권리는 완전히 배제됐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명으로, 2017년 1심 승소 때만 해도 40명이던 피해 생존자는 다수가 고령으로 사망하면서 올 5월 기준 9명으로 줄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94.4살이다. 외교부는 문서가 생성된 지 30년 후 해당 문서를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미 고령인 피해자들이 지금으로부터 22년 후인 2045년 문서 내용을 확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플랫]‘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별세…남은 생존자 9명
송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이 피해자 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기본적인 책무를 저버렸다”고 했다. 그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에서도 일본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다”면서 “단지 외교 관계라고 해서 사법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면 국민 인권 보호에 직결되는 외교가 법치, 알권리, 투명성 원칙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 김혜리 기자 harry@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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