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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영장류는 인류 진화의 비밀 풀 열쇠”… 전 세계 영장류 233종 유전체 지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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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젊은 침팬지 수컷(왼쪽)이 엄마를 잃은 동생을 자신의 새끼처럼 보살피고 있다. 침팬지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영장류의 유전체를 이용한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특별호를 1일 발간했다.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영장류 유전체 연구로, 인간과 관련성이 큰 영장류의 유전적 특징이 새롭게 밝혀졌다. /미 미시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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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학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정확한 이론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학문이다. 인류는 원숭이, 침팬지 같은 다른 영장류와 함께 영장목(目)에 속해 있다. 원숭이와 인류는 결국 머나먼 과거에는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영장류학을 연구하면 좋든 싫든 다윈을 따를 수밖에 없다.

침팬지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쓰자와 데쓰로(松沢哲郞) 교토대 교수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다윈을 만날 수 있다면 무얼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침팬지의 소리를 이용해 어떻게 침팬지들과 소통하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답했다.

다윈은 15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영장류학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의 마지막 남은 친척인 영장류의 유전체(게놈)를 총체적으로 집대성한 연구 결과가 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소개됐다. 사이언스는 ‘영장류 유전체(PRIMATE GENOMES)’ 특집호에서 10편의 논문을 소개했다. 개별적인 연구 결과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백여 명의 연구진이 참여해 다양한 영장류의 유전체 특성을 집대성했다.

토마스 마르케스 보넷(Tomas Marques Bonet)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은 전체 영장류의 86%에 해당하는 233종(種)의 영장류 703마리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특히 이번 영장류 연구는 종의 상위 분류 체계인 과(科)로는 100%를 분석한 것이다. 지금까지 영장류 유전체 연구 역사에서 16과를 모두 분석해서 비교한 적은 없었다.

허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장은 “과거에 포유류와 영장류를 포함한 동물계 전체에 대한 유전체 연구가 대규모로 진행된 적은 있었지만, 영장류만 모아서 이 정도 규모로 연구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동물원에 갇혀 있는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전 세계 야생 환경에서 실제로 영장류 유전체 샘플을 모아온 것인 만큼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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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공동연구팀은 영장류의 주요 뇌와 신체 크기, 골격 등 주요 특성이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분석한 결과를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여러 영장류와 인류가 저마다의 특성에 맞춰서 진화하며 유전자도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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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가 없는 대규모 연구였던 만큼 새롭게 밝혀진 내용들도 적지 않다. 우선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영장류의 진화 계통도를 더 정확하게 그려냈다. 영장류의 공통 조상에서 인류가 마지막으로 갈라져 나오기까지 영장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분기점을 지났다. 가장 마지막에 인류와 갈라진 영장류는 침팬지다. 인류와 침팬지는 유전자의 98% 이상이 같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인류와 침팬지가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시기를 약 700만~600만년 전 정도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인류와 침팬지가 갈라진 시기가 약 900만~690만년 전이라는 새로운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인류가 독자적으로 유전적인 특성을 진화시킨 기간이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100만년 정도는 길다는 의미다.

영장류 공통 조상의 염색체 숫자도 당초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구팀은 7000만년 전에 살았던 영장류의 공통 조상이 52개(2n=52)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그동안 50개의 염색체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존재하는 영장류의 유전체를 분석하면 공통 조상의 염색체가 몇개 였는지 추정이 가능하다. 대대적인 유전체 분석을 통해 영장류 공통 조상의 염색체를 복원해 새롭게 염색체 수를 추정한 것이다.

인간에게만 나타난다고 알려졌던 미스센스 돌연변이(missense mutation)가 영장류에게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도 처음으로 확인됐다. 미스센스 돌연변이는 유전 정보 중 한개의 염기가 돌연변이로 인해 다른 염기로 대체되거나 별개의 아미노산이 단백질 내에 포함되는 걸 의미한다. 체내 단백질이 바뀌는 돌연변이는 그동안 인류만의 특징으로 여겨졌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영장류에서도 같은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걸 확인한 것이다.

영장류의 유전적 다양성도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영장류의 서식지에 따른 유전자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기온과 강수량에 의해 변이가 많이 일어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특징이 영장류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인 동시에 높은 다양성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대규모로 영장류의 유전체를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보넷 교수는 “영장류의 유전체를 통해 인간 유전체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사실을 밝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울이 없이는 본인의 얼굴이나 몸을 자세히 보기 힘든 법이다. 영장류의 유전체라는 거울이 인류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유전체 속 그늘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허재원 국가영장류센터장은 “영장류와 인류는 비슷한 유전자에서 출발했지만 한쪽은 원숭이가 됐고 한쪽은 사람이 됐다”며 “현존하는 영장류의 유전체를 분석해보면 인간의 유전체와 비교해 어떤 부분이 다르고 어떤 돌연변이는 안전한 지 등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류의 거울인 영장류의 상당수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영장류의 60% 이상이 멸종위기에 몰려 있어 생물다양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영장류의 멸종이 가속화되면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유전체를 연구할 수 있는 방법도 사라진다.

사이언스가 ‘영장류 유전체 특집호’를 낸 것도 이런 이유다. 보넷 교수는 “현재 멸종위기에 처한 영장류가 사라진다면 더이상의 연구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n7829

Science, DOI: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bn6919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이병철 기자(alwaysa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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