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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美 여야 중도 의원들 뭉쳐 ‘국가 부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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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한도 유예안 하원 통과

조선일보

지난 31일(현지 시각)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가운데) 미국 하원의장이 연방정부 부채 한도 유예 법안 표결을 앞두고 본회의장에 들어가기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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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던 미국 국가 부도 위기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미국 연방 하원은 한계에 이른 정부의 부채 한도 적용을 2025년까지 2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재정책임법 2023′을 찬성 314표, 반대 117표, 기권 4표로 지난달 31일 저녁(현지 시각) 통과시켰다. 이로써 사흘 앞으로 다가온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7부 능선을 넘게 됐다.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 이번 법안은 양당 강경파에 휘둘려 통과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았지만, 국익을 우선한 중도 표가 쏟아지면서 예상 밖으로 순조롭게 타결됐다는 평가다. 하원 의석은 222대 213석으로 야당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법안이 상원을 통과한 뒤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 이번 사태는 최종 마무리된다.

상원은 민주당(51석)이 공화당(49석)에 앞선 다수당이고, 가부 동수일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통과 가능성이 높다. 상원은 1일 법안 표결을 위한 사전 절차를 시작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의장은 세 차례 대면 만남을 갖는 등 수차례 협상 끝에 지난달 28일 최종 합의안을 내놨다. 한 달 넘게 지속되며 세계 금융시장을 긴장시킨 이번 위기 해소 과정은 국익을 우선시하며 타협으로 이견을 좁히는 미국 의회 정치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극우와 극좌 의원들이 분노한 가운데, 법안이 결승선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양당 의원들의 초당적 연합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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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지난 2월 2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공화당이 내놓은 부채 한도 조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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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는 지난달 초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의회 지도부에 “연초에 한계에 다다른 부채 한도(31조3810억달러·약 4경2000조원)를 올리지 않으면 6월 연방 정부가 디폴트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 서한을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표면화됐다. 해법을 두고 “조건 없는 부채 한도 상향이 시급하다”는 바이든 행정부·민주당과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하라”는 공화당 입장이 팽팽히 엇갈리며 미 정국은 급속히 경색됐다.

지난달 하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신용등급 강등 위험을 경고하면서 미국발 금융 위기 재발 우려는 더욱 커졌다. 히로시마 G7(7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바이든이 다음 일정인 호주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협력체) 정상회의를 전격 취소하면서까지 매카시 의장과의 물밑 협상에 힘을 쏟으며 타결안을 만들었다.

부채 한도 기한을 2025년 1월 1일까지 유예하고, 국방·보훈 항목을 제외한 2024 회계연도 정부 지출은 동결하고, 저소득층 식품 보조 프로그램 수령 요건을 강화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NYT는 “민주당은 대부분의 국내 관련 지출을 대규모 삭감에서 제외시켰다고 말할 수 있고, 공화당은 일부 연방 정부 지출을 줄였다고 말할 수 있는 타협안”이라고 했다.

어렵사리 초당적 합의안이 나왔지만, 변수는 남아 있었다. 당 수뇌부 입장과 무관하게 합의 절차 자체를 거부해온 양당 강경파 의원들이었다. 공화당 강경 보수 의원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은 더 공격적인 지출 삭감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법안을 반대했다. 랠프 노먼 의원은 “협상은 미친 일”이라고 했고, 댄 비숍 의원 등 일부 강경파는 매카시 의장 사퇴 결의까지 언급했다. 민주당 소속 강경 진보파 의원들도 사회복지와 에너지 등의 사안에서 양보한 것에 거세게 반발했다. 라울 그리잘바 의원은 표결을 앞두고 “공화당의 난폭한 인질극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까지 했다.

양측 강경파 의원들이 ‘소신 투표’를 강행할 경우 어렵사리 만들어진 합의안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 같은 걱정을 불식시킨 것은 중도 성향 의원들이었다. 이날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165명, 공화당 의원 14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표는 민주당 46표, 공화당 71표였다. 부도 위기라는 급한 불부터 끄는 데 표를 던진 의원이 이념을 추구한 표를 압도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매카시 의장 간 협상이 여러 번 결렬하는 등 막판 진통을 겪었지만, 양측은 꾸준히 “협상이 순조롭다”는 시그널을 보내며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벼랑 끝 전술’과는 다른 전향적 자세도 타결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타결 뒤 낸 성명에서 “하원이 디폴트를 막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했고, 매카시 의장은 “내가 여기(하원)에서 보낸 최고의 밤 중 하나”라고 했다.

☞미국 부채한도

미국은 헌법에 따라 국가의 부채를 의회가 정하도록 하고 있다. 2차 대전 이전까지 국채 발행의 용도를 일일이 정해야 했지만 ‘한도’만 정하는 방식으로 바꿔 비효율을 줄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엔 한도를 늘릴 때마다 의회가 대립하는 부작용만 심해져,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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