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개방 1주년 특별 전시회
문화체육관광부는 1일부터 ‘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여기 대통령들이 있었다’를 주제로 8월 28일까지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에서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 특별전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관을 비롯해 일부 대통령 기념재단, 대통령 가족 등에 자문하고 소품을 대여해 전시를 구성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이승만 전 대통령(1∼3대, 재임 기간 1948∼1960)에게 영문 타자기는 필수품이었다. 경무대 집무실과 타자기는 당시 외교 비사를 다루는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조연 배우다. 78세의 대통령 이승만은 직접 타자기를 두들기며 문서를 작성했다. 타이핑 솜씨는 줄어서 두 손가락을 쓰는 ‘독수리 타법’이 되었지만,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 이외에는 그 누구도 타이핑을 대신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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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본관에서 전시되는 역대 대통령들의 상징적 소품. 이승만 전 대통령 ‘영문 타자기’.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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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사’로 불렸던 윤보선 전 대통령(4대, 1960∼1962) 관련 주요 소품은 중절모와 안경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5∼9대, 1963∼1979)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이 되기 전까지 교사로 일했다. 서예, 그림, 음악은 교사가 되기 위한 필수 과목이었다. 그는 드로잉 수첩을 갖고 다녔다. 그림을 통해 국정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했다. 그가 직접 스케치한 경부고속도로 계획안은 정밀하다. 구미 생가, 동해안, 서울 풍경 등을 그린 그림들은 그의 내면 풍경이다. 반려견 ‘방울이(스피츠)’의 귀여움도 연필 스케치에 담았다. 방울이는 1979년 10월 26일, 주인이 비극적 운명을 맞은 후에도 본관 침실 문이 열리면 꼬리를 흔들고 달려갔으나 다른 사람임을 알고선 시무룩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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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반려견 스케치’.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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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검절약했던 최규하 전 대통령(10대, 1979∼1980)의 연탄 난로와 축구를 잘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11∼12대, 1980∼1988) 사인이 담긴 축구공도 전시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13대, 1988∼1993)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애창곡 베사메 무초를 멋지게 불렀고 퉁소 연주는 수준급이었다. 퉁소는 일곱 살 때 여읜 부친의 유품이었다. 퉁소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의 통로였다. 휘파람 불기도 그의 장기 중 하나였다. 그가 숲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면 산새가 날아올 정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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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퉁소’.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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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14대, 1993∼1998)은 달리기를 좋아했다. 특히, 새벽 조깅은 그에게 건강 관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청와대 녹지원에서 30분가량 새벽 조깅을 하면서 자신과 대화했다. 고뇌 속에 주요 정책을 결심하고 복잡한 국정 상황을 정리했다.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그는 청와대 기자실에서 금융실명제 실시를 ‘깜짝’ 발표해 나라를 뒤흔들었다. 그날 새벽 조깅 때 평소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달렸다고 하는데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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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운동화’.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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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15대, 1998∼2003)은 꽃들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이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에 체포된 그는 독서와 꽃 가꾸기로 감옥 생활을 견뎠다. 그는 옥중에서도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운동하러 뜰에 나가면 국화가 한창인 듯 노란색입니다. 내가 돌본 꽃들은 피기도 싱그러웠지만 다른 데 비해 한 달 더 견디어 주어서 대견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며 한때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의 삶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피는 인동초(忍冬草)와 같았다. 대통령이 돼서도 정치 보복을 하지 않고 가해자들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며 전직 대통령 4명과 청와대에서 어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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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원예 가위’.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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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16대, 2003∼2008)은 특허 보유자로 알려져 있다. 1974년 사법시험 준비 시절 ‘개량 독서대’를 만들어 실용신안 특허를 받았다. 누워서 책을 볼 수 있게 각도 조절 기능을 갖췄다. 청와대 시절엔 온라인 통합관리시스템 ‘e-지원(知園)’을 개발했다. 그는 “대통령을 안 했으면 컨설턴트나 발명가였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발명은 그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도전, 돌파의 본능과 연결돼 있다. 그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우회하지 않았다. 근본 원인을 해부하고 문제 해결을 향해 직진하면서 파격적인 해법과 창의적인 개선 방식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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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개량 독서대’.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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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17대, 2008∼2013)·박근혜(18대, 2013∼2017)·문재인(19대, 2017∼2022) 전 대통령 관련 각각 테니스 라켓, 누비 공예 지갑, 앤디 워홀 판화 작품 ‘시베리아 호랑이’(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선물한 것)을 비롯해 1993년 김영삼정부 시절 철거된 옛 본관의 기왓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선물했던 삼성 휴대전화 등도 만나볼 수 있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청와대는 74년간 역대 대통령들이 격동의 대한민국 역사를 써내려간 최고 리더십의 무대였다”며 “대통령들의 상징적인 소품을 통해 권력의 정상에서 고뇌하고 결단을 내리던 순간들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의 공과를 다루는 기존의 전시방식을 벗어나, 스토리텔링을 통해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 대통령들을 접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기대한 것보다 전직 대통령들과 인연이 깊은 소품이 많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편, 노태우정부 시절인 1991년 준공돼 역대 대통령들이 국빈을 맞이하고 집무실로 사용했던 청와대 본관 내부는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 기간에는 그동안 카펫 보호를 위해 설치됐던 덮개를 철거해 다시 드러난 붉은 카펫도 볼 수 있다. 본관 건립 당시 설치된 작품들이 제 자리를 찾고 일부는 복원 작업을 거쳐 관람객을 맞이한다.
중앙계단의 ‘금수강산도’는 제작 당시 은을 혼합해 채색했던 금색 부분이 산화되어 검게 변한 것을 김식 작가가 직접 복원해 금빛의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충무실 전실에서 BTS(방탄소년단)를 맞이했던 10폭 병풍인 서예가 이수덕의 ‘아애일일신지대한민국 我愛日日新之大韓民國’, 국무회의장으로 쓰이던 세종실에 설치된 백금남의 벽화 ‘훈민정음’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이 공개된다.
기자회견장이었던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서는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가구와 식기 등 생활소품이 전시된다.
이명박정부 시절 영빈관 행사용으로 제작한 백자 세트, 문재인정부 시절 상춘재 행사용으로 제작한 납청유기 세트 등이 전시됐다. 구본관, 본관, 관저, 상춘재 가구와 관저 대식당 응접세트 등도 일부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청와대 시설물 보호와 관람객 안전을 위해 본관 관람객 수는 동시 수용인원 200명 규모로 조정된다. 청와대 일반 관람문의 대표번호는 1522-7760.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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