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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이슈 미술의 세계

60대 친구 넷이 말하는 ‘늙음’…“그저 또 다른 네가 더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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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20세기 블루스’

한겨레

60대 여성에 초점을 맞춘 연극 <20세기 블루스>는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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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20세기 블루스>는 오랜 친구 사이인 60대 여성 4명의 이야기다. 60대 여성을 콕 찍어 초점을 맞춘 설정 자체가 독특하다. 미국 극작가 수잔 밀러의 희곡이 원작인 이 작품은 인간이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몇가지 복잡한 측면을 다룬다.

연극은 받침대에 올려진 채 무대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카메라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유명 사진작가 대니와 부동산 중개인 실, 유능한 탐사 저널리스트 맥, 수의사 개비가 등장한다. 이들은 감옥에서 알게 된 사이다. 대니가 얘기하듯, 그들이 만난 건 ‘젊었던 70년대’였고,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내지 않았다면 별 볼일 없던 시절’이었다. 대니는 매년 한 번씩 친구들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40년이 흐르는 동안 이들의 화장하지 않은 얼굴 사진엔 나이테처럼 하나둘 주름이 늘어갔다. 2017년 대니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여는 회고전에 친구들의 얼굴 사진을 전시하고 싶어한다.

“나한테는 너희들이 역사의 시간표니까. 너희들이 로큰롤이고, 우주선 발사고, 시민평등권이라고. 엄청난 변화들이 기록도니 수십 년 역사가 바로 너희들이야.” 대니는 이렇게 설득한다. “팬티만 입은 채 온 집안을 휘저으면서 신나게 춤추고 있었거든. 근데 어느 순간 늦은 오후가 돼 버린 거야.”

덧없는 세월에 어느덧 늙어버린 자신을 돌아보며 맥은 이렇게 탄식하고, 개비는 “이 도시를 걷는 내내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씁쓸해한다. 40년 동안 세상과 그들에겐 많은 일이 일어났고, 해마다 찍은 사진엔 세월의 흔적과 함께 자신들의 생애와 상처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혼한 대니, 별거 중인 실, 동성과 살고 있는 맥, 남편과의 사별을 두려워하는 개비… 친구들은 석양처럼 저물어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공개하려는 대니의 전시 계획에 쉽게 동의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또 다른 네가 더해지는 거야.” 극 중에 대니가 아들에게 하는 대사다. 70대에 이 작품을 쓴 작가 수잔 밀러는 “우리 안에 깃든 시간에 관한 연극”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늙어가거나 낡아진다는 통념적 맥락이 아니라, 내면에 시간을 축적하고 뭔가 더해간다는 의미로 보는 시각이다. ‘젊음에 대한 예찬’은 종종 ‘늙음에 대한 폄하’로 이어지곤 한다. “세월의 흔적을 감추는 게 당연한 미덕이란 생각, 젊음을 향한 무조건적 동경이 자연스러운 노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건 아닐까요.” 희곡을 번역한 최유솔은 이렇게 되묻는다.

20대부터 40년 세월을 함께한 60대 여성들이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섬바디 투 러브’를 틀어놓고 신나게 춤추는 장면은 정겹고 즐겁다. 배우 우미화, 박명신, 강명주, 성여진, 이지현 등 무대와 매체를 넘나들며 열연해온 중견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가 연극의 묘미를 더해준다. 이주실과 류원준이 대니의 어머니와 아들로 나온다. 연극 <달콤한 노래>, <썬샤인의 전사들>의 부새롬이 연출을 맡았다.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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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새롬이 연출을 맡은 연극 <20세기 블루스>는 미국 극작가 수잔 밀러의 희곡이 원작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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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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