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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병상 있나요?" 생사 가른 중환자실 문턱…구멍난 응급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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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어 용인서도 응급 사망 발생

권역응급센터 늘렸지만 '사건 재발'

병원 몰린 수도권도 응급체계 빈틈

응급의료계, 정부 등 긴급대책 고심

중증 전담 의료진·병상 부족 되풀이

"효율적 인력 운용, 병상 정보 공유"

노컷뉴스

응급실 관련 자료화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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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새벽 12시 반쯤 경기 용인에서 후진 차량에 치인 구모(74)씨. 구급대는 복강 내 출혈을 의심, 다급히 인근 대형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아주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등 차량으로 30~40분 거리에 상급 종합병원들이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구역을 넓혀 모두 12개 병원에 수술이 가능한 중환자실을 물색해도 돌아온 답은 '수용불가'였다. 사유는 '병실과 의료진 부족'. 정부에서 확대한 최종 의료기관인 권역외상센터를 갖춘 병원에도 구씨를 받아줄 중환자실은 없었다.

용인 강남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가까스로 100㎞ 떨어진 의정부성모병원을 찾아냈지만, 기상 문제로 헬기조차 타지 못한 구씨는 결국 병원 침상에 눕지도 못하고 사고 2시간 만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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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중환자실을 찾으려 표류하던 상황은 고스란히 소방 대응 일지에 기록됐는데, 이는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소녀가 '병상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골든타임을 놓친 사건과 판박이다.

경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소아과나 산부인과 등 특수 진료과에서는 의사가 없어 중환자실 구하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라며 "이번엔 일반 환자인데도 병상이 꽉 차서 환자를 못 받는다고 하니 현장에선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권역센터 확대된 수도권서도 '표류' 도중 사망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필수 응급의료 체계에 허점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 달 전 경기도는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기존 7곳에서 9곳으로 늘렸으나 이번 구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대구 10대 소녀 사망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방침에 따라 권역별 응급시설이 늘어났으나, 또 다시 의료시설이 집중된 수도권에서 부실한 응급의료 체계의 민낯이 드러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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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구급대 앰블런스.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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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모두 제때 긴급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중증외상 환자들이 병원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대기 시간으로 치료 지연을 겪는 실정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발표된 질병관리청 통계(2015~2020 중증외상 및 다수사상)에 따르면 중증외상 환자의 이송 소요 시간은 해마다 증가해 2020년 기준 평균 32분으로 나타났다.

정부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사 사례가 반복되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달 당정협의회를 열어 중증응급의료센터를 확충(40→60)하기로 하는가 하면, 앞서 3월에는 보건복지부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통해 당번 병원제 순환당직과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확대 등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중증 응급환자의 적정시간 내 최종 의료기관 도착률이 49.6%였던 것을 5년 안에 6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정부 목표다.

그럼에도 비슷한 사태가 재발하면서 응급 의료체계 전반에 대해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료계·정부 '화들짝'…"응급체계 대수술해야"

먼저 응급의학과 의사들부터 거듭된 응급실 뺑뺑이 사건에 경각심을 내세우며 사태 해소를 위한 첫째 과제로 '상급병원 과밀 해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전날 입장문을 내고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이 갖춰져야 중증외상환자를 응급실에서 받을 수 있다"며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병원의 배후 진료능력 부족 때문으로, 환자를 치료할 의료자원이 그 시간과 장소에 없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소방청 119구급서비스 통계연보(2022)를 보면, 지난해 응급실 재이송(1, 2차 합산) 건수는 7634건으로, 이유는 전문의 부재(31%)와 병상부족(17%) 순으로 집계됐다. 구급대가 병원에 전문의와 병실이 있는지 직접 전화를 돌리느라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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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응급의료 긴급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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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들의 부담 요소와 불합리한 응급실 이용 실태도 도마에 올랐다. "응급치료 결과가 나쁘면 민·형사상 소송을 감내해야 하고, 환자 거부로 법적 처벌이 가시화되면 응급 의료진 이탈은 가속화된다"며 "경증환자들이 119 이송과 응급실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날 열린 긴급 당정협의회에서도 "중증·경증 환자를 분리해 받는 이원화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지난 당정협의회에서 원스톱 환자이송 시스템 구축과 의료진 근무여건 개선 대책을 세웠음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의료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취지다.

전문가들 "효율적 인력 운용, 응급 중환자실 선진화"

이처럼 응급의료 체계 개선안은 수없이 쏟아져 왔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 효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핵심은 권역센터들마저 중환자 전담 병실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심야에 병원을 찾지 못한 경증환자들까지 응급실에 몰리는 데다, 중환자실에는 중증질환과 일반 수술 환자 등으로 포화 상태인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에 응급시설을 늘려도 적재적소에 투입할 진료과별 의료진을 함께 증원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의 판단이다. 응급 중증환자를 맡을 전문의는 한정돼 있는데 센터만 늘리면, 기존 의료진들이 분산돼 되레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외에 응급의학과를 포함한 신경과·신경외과·흉부외과 등 전문의가 부족한 분야에 대해 응급 의료진을 늘리고, 중환자실 근무 강도에 상응하는 보상체계 마련과 중환자실 병상 정보 실시간 공유 시스템 도입 등도 선결 과제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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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 권선구에 위치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박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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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중환자의학회 박치민 총무이사는 "응급실 중환자실은 긴급한 중증 외상환자가 직행(곧장 이송)될 수 있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응급센터를 수적으로만 늘리기보다 기존 센터에서 24시간 중증환자를 받을 수 있도록 포화 현상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최종 진료를 볼 중환자실 전담 의사들을 분야별로 양성하는 것도 급선무"라며 "응급 중환자실을 공공의료 개념으로 인정하고 효율적 인력 배분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 송금희 사무처장도 "의사 수가 부족한 게 근본 원인으로 전공의 한두 명이 응급실과 중환자실 병동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병상의 경우에도 기존 중환자실 병상을 유동적으로 이동시켜 더 시급한 중증환자를 우선 수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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