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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朝鮮칼럼] 동아시아는 ‘原電 테크노 민족주의’를 넘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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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이후 동유럽

원전 지으려면 주변국 승인 필요

우리 전문가 안 받겠다는 일본

원전 수출만 매진하는 한국

황해 원전 비밀주의 중국

원전 기술 國富 관점에서만 보는

편협한 테크노 민족주의 답답

개별 주권·국경 넘어 超국가적 시각을

논쟁이 뜨겁다.

여당 ‘국민의 힘’은 국제원자력 기구의 안전성 검증과 한국 전문가 시찰단의 현장 점검 결과를 거쳐 후쿠시마의 처리된 오염수 방류를 승인하자는 기류이다. 야당은 ‘국민의 뜻’을 모아 우리 바다를 지키겠다며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역사적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어느 쪽 과학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한국 사회의 논의는 너무 갇혀 있다. 원자력의 특성상 자신의 주권밖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와 오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힘’도 ‘국민의 뜻’도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되살아나 수천 척의 배를 호령해도 어려운 일이다.

방사능은 국경이 없다. 히로시마 원폭의 400배가 넘는 방사능을 유출한 1986년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는 중동부 유럽은 물론 스칸디나비아와 영국의 목초지까지 오염시켰다. 오염된 풀을 먹은 소의 고기는 헐값에 다시 동유럽으로 유입됐다.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벨라루스였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북쪽으로 부는 바람의 영향으로 벨라루스는 전 국토의 3분의 1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주민을 소개(疏開)했다. 오염이 심한 22%의 땅은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다. 소련이라는 연방 체제 덕분에 큰 분쟁은 막았다.

7등급으로 가장 큰 원전 사고였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비슷한 데가 많다. 설계의 결함, 현장 책임자의 오판과 실무진의 실수, 사고 수습보다는 은폐에 바쁜 권력과 기업의 비도덕성 등은 상당히 비슷하다. 기술진의 실수와 책임자의 판단 착오, 미흡한 대처 등 인재의 성격도 비슷하다.

차이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미래의 대처 방안에 있다. 체르노빌 이후, 중동부 유럽의 어느 국가든 원전을 짓기 위해서는 인접 국가의 엄격한 환경·기술 평가를 거쳐야 한다. 예컨대 체코의 원전은 폴란드나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인접국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만 건설에 착수할 수 있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체르노빌 참사를 겪고 원전 사고의 초국가적 성격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원전은 그것을 지은 개별 국가의 안보나 주권의 문제를 넘어 그 국경 밖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권의 문제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가장 큰 희생자가 벨라루스 주민들이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도 이는 잘 확인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가 주는 교훈은 명약관화하다. 방사능 낙진이나 원전 오염수는 한 나라만이 아닌 모두의 문제이며,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후 위기에서처럼, 원전 역시 초국가적 협력과 대처가 절실한 것이다.

매년 한반도의 봄을 공습하는 황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실어 오는 중금속 미세 먼지가 서울 시민들의 평균 수명을 2~3년 앞당긴다는 연구도 있지만, 중국, 몽골 등과의 초국가적 협력 체계가 없으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을지문덕 장군을 호출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초국가적 협력 네트워크에 비하면 원전 기술을 국부(國富)의 관점에서만 보는 동아시아의 테크노 민족주의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원전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돕겠다는 한국 정부의 제안을 주권 침해라는 관점에서 거절한 일본 정부, 테크노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원전 수출에만 매진해 온 한국 정부, 황해 연안 수십 개 원전 프로젝트를 비밀주의로 일관해 온 중국 정부.

17세기적 국민주권에 대한 환상과 테크노 민족주의가 판치는 한, 동아시아 삼국이 원전에 대한 초국가적 통제 방안을 찾기는 어렵다. 이런 전제 아래 만들어지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처리 방안은 아무리 과학적이라 해도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수자원도 마찬가지다. 메콩 상류에 건설한 중국의 거대한 댐들로 하류 쪽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을 흐르는 메콩강이 말라 죽는 현실 앞에서 동아시아는 물론 아세안마저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생존권은 주권보다 신성하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한국 사회의 논의가 앞으로 원전이나 수자원, 기후변화와 인권 등에 대한 동아시아 차원의 초국가적 대처 방안을 선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아세안과 환태평양 국가들로 시야를 넓히면서.

[임지현 서강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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