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민 논설위원 |
그러나 한전 적자는 탈원전 정책과 직접적 관계가 없고 한전공대 지원과는 전혀 무관하다. 발전회사에서 전력을 사서 가정이나 기업에 파는 게 한전의 일이다. 일반 기업이라면 구매가격에 마진을 붙여 판매가격을 정하지만 한전은 전력 구매가(올해 1분기 기준 kWh당 174원)보다 판매가(146.6원)가 낮다.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구매가는 천연가스 등 에너지 원료 가격에 좌우되고, 판매가인 전기요금은 정부가 정한다. 한전 적자는 한전공대 설립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다. 채권 발행으로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한전의 부채 규모는 작년 말 기준 192조8000억원에 이른다. 한전의 적자를 야기한 낮은 전기요금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국민과 기업, 발전회사가 누린 혜택이다. 한전공대 출연금이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 돈을 아낀다고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가 해소되지 않는다.
정부·여당 등 보수진영의 홀대는 한전공대가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이라는 점을 빼면 설명하기 어렵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호남지역 득표 등 정치적 이득을 위해 한전공대 설립을 밀어붙였고, 캠퍼스도 완공되지 않은 채 성급하게 개교했기 때문에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보복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한전공대는 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이를 포함시켜 여론 수렴 등 절차를 밟았다. 법적 근거는 2021년 3월 국회에서 가결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싫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전공대에 화풀이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런 식이면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과 정책도 다음 정부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이 밉다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1971년 개교) 지원을 줄이거나, 전두환의 죗값을 따진다며 포항공과대학교(POSTECH·1986년 개교)를 탄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학들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판국에 지방에 한전공대를 설립했다는 비판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대 지원자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방대의 신입생 모집난은 수도권 집중 현상에서 비롯됐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대학이 하나 더 늘었다고 백안시할 게 아니라 해당 대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한전공대는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 차원의 에너지 연구·개발과 에너지 신산업 육성을 위해 설립됐다. 52명의 교수 가운데 에너지 분야 세계적 석학이 10명이나 된다. 미국 MIT공대와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같은 글로벌 연구기관과 협업 체계도 구축했다. 개교 첫해 국가 및 민간에서 수주한 연구과제가 94건(143억원)이다. 이런 특성화대학이 있어야 지방도 살고 국토균형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전남도와 나주시는 한전공대에 매년 200억원을 대지만 한전공대 입시에 지역인재 우대 전형 같은 것은 없다. 대학이 제시한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정원이 남아도 선발하지 않는다.
한전공대는 미완성이다. 완공된 건물은 지상 4층짜리 행정·강의동이 유일하고, 캠퍼스 안에서는 추가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 한전의 출연이 삭감 없이 이뤄져야 한다. 한전공대 관계자에 따르면 보수언론의 원색적 비난과 감사원 감사에도 학생 290명은 묵묵히 학업에 정진하고 있다. 대견하고 기특하지만 어린 학생들 마음고생이 오죽할까 싶다. 의·치대에 갈 수도 있지만 공대가 좋아서 온 이들이다. 집안이 어려워도 아이들 공부는 시켜야 한다. 제발 한전공대를 흔들지 말라.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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