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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라이브의 황제’ 연습땐 500번 듣고 딱 세 번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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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여는 이승철 전국 투어

17일부터 ‘레트로 나이트’ 공연

“저는 신곡 연습할 땐 한 번도 안 불러봐요. 녹음실에 가선 세 번 이상 안 부릅니다.”

다른 이가 아닌, 가수 이승철(57)의 입에서 나왔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1986년 록그룹 부활의 보컬로 데뷔, 2년 뒤 솔로로 전향한 그의 대표 수식어는 ‘라이브의 황제’. 손가락을 쫙 펼쳐 국내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이를 꼽을 때 그의 이름이 빠지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그가 노래 연습 때 소리 내지 않는 건 재능에 대한 과신이나 고집 때문이 아니다. 최근 서울 선정릉역 인근에 위치한 개인 녹음실에서 만난 그는 “오히려 본 녹음 때는 작곡가가 의도를 전하려 다른 가수를 통해 가이드로 녹음해준 걸 먼저 듣고 박자, 음정은 물론 숨소리까지 똑같이 따라 부를 정도로 내 창법에 대한 고집은 없다”고 했다. “많게는 500번, 몸 안에 곡이 들어갈 때까지 듣고 또 듣죠. 다만 가수라면 감정만큼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어야 하는데 전 그 느낌이 딱 한 번 불렀을 때 가장 잘 나오거든요. 성대는 쓰면 쓸수록 상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지난 3년간은 팬데믹 때문에 강제로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미치도록 소리를 내고 싶은 시간들이었다”며 웃었다. 이승철이 오는 17일부터 여는 3년 만의 전국투어 공연 ‘레트로 나이트’에서 통상 공연 시간의 2배에 달하는 30여 곡을 선보이기로 결정한 이유다. 창원을 시작으로 춘천, 전주, 부산, 대전, 서울, 대구 등 연말까지 20개 도시에서 관객을 만나는 이번 공연에선 국내 가요계 최초로 전석 입체음향(플라잉 서라운드 시스템)을 지원한다. 라이브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객석을 맴돌며 울려퍼지게 하는 기술이다. 이승철은 “리허설도 그에 맞는 장비가 있어야 해서 지금 녹음실을 15억원을 들여 리모델링 했고, 공연 장비만 통상 공연의 두 배인 1억원을 들여 준비했다”고 했다.

그 중 오는 7월 2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서울 공연 수익은 그가 13년째 이어온 ‘아프리카 학교 건립 사업’에 기부한다. 본래 친한 동생이었던 배우 박용하가 하던 사업을 2010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물려받아 진행하고 있는 것. “10년 동안 10개교를 짓기로 했는데 6개까지 짓고 코로나로 인해 중단됐었다”며 “3년 만에 각 학교들이 얼마나 변했을지 얼른 달려가 확인해 보고 싶어 마음이 급하다”고 했다. 각 학교에는 부산 등 기부금을 마련한 공연이 열린 도시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번에는 서울의 이름이 적힌다.

그는 다만 “기부를 하되 부모들도 책임감을 갖도록 소정의 학교 입학금을 받고, 벽돌 한 장까지 학생들이 직접 올리게 한다”고 했다. 서울 대신고 설립자 집안에서 자란 그는 교육이 환경 변화에 중요하다는 걸 잘 알아 이 활동을 선뜻 시작하게 됐지만, “공짜로 화장실 지어주면 금방 더러워지고 청소할 생각도 안 하지만 주인의식이 생기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를 떠올렸다”고 했다. “부족장 회의를 거쳐 지역에 학교 설립 허가가 떨어지면 부족장들이 마을 한 구석에서 100걸음을 직접 걸어보이며 ‘여기다 이만큼 넓이로 지으라’고 알려줘요. 그때부터 아이들을 모아 진흙으로 벽돌 1만장을 만들라는 숙제를 내주고요. 그럼 신기하게도 곧 주변에 우물도 생기고, 병원도 생기며 동네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해요. 무엇보다 아이들 눈빛부터 달라지죠. 우리가 즐긴 노래가 한 도시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내후년 데뷔 40주년을 앞둔 이승철은 특히 “팬데믹을 거치며 가요계 환경이 급격히 많이 바뀐 걸 체감한다”고 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보컬리스트의 방향이 좀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요새는 노래만 열심히 하는 친구들의 공연을 보면 가끔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좋은 자세지만, 이제 시대는 가창력만이 아닌 개성, 특히 자기 연출을 잘하는 가수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는 특히 10여 년 전부터 수십 억원을 들여 차렸던 공연 음향 회사를 인터파크에 넘기고, 지난해 공연기획업체 NHN벅스·티켓링크와 콘텐츠 총괄프로듀서로서 공연 음향 자문 계약 등을 맺었다. 오디션 프로 ‘슈퍼스타K’의 독설가 심사위원으로 유명했던 그가 이제는 음향 심사위원이 된 것. “저는 공연을 3000번 넘게 해봤잖아요. 이제는 후배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공연 연출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어보자 했죠.”

이승철은 특히 “가수 생활의 마지막 목표로 언젠가 ‘한국판 명예의 전당’ 설립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해외에선 스티비원더, 스팅, 레드 제플린 등 레전드들이 다 유명한 기념 공연을 꾸준히 해와요. 그런데 국내에는 제대로 된, 명맥을 이어오는 가요 시상식조차 없는게 참 안타까웠죠. 나훈아, 조용필 등 쟁쟁한 선배들이 한데 모여서 후배들 손을 잡고 노래하는 거예요. 정말 끝내주지 않겠어요?”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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