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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국서 1조원 넘는 매출 올리고도 법인세 한 푼 안 냈다…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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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외 탈세 52명 세무조사 착수

‘포춘 100대 기업’ 중 4곳 포함


한겨레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이 31일 세종시 국세청에서 역외 탈세자 세무조사 착수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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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플랫폼 기업인 ㄱ사는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얻은 온라인 서비스 판매수익 등 국내에서 5년여에 걸쳐 1조원 넘는 매출을 올리고도 이를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았다.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 수천억원대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이다.

세법 및 조세조약상 외국 법인이 국내에 고정 사업장을 두고 영업하면 한국 국세청이 세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ㄱ사는 ‘한국 내 자회사 쪼개기’를 통해 국내에서 주요 사업 활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했다. 국세청은 ㄱ사를 포함한 역외 탈세 혐의자 52명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31일 밝혔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 대상엔 국내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상장사 6곳과 코스닥 상장사 2곳은 물론,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지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 가운데 4곳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탈세 유형별로는 △사업구조를 위장해 국내 소득을 국외 유출한 다국적기업 21명 △현지법인을 이용해 수출거래를 조작한 수출업체 19명 △투자수익을 부당 반출한 사모펀드 및 역외에 편법 증여한 자산가 12명 등이다. 이들이 국내에서 세금을 내지 않고 국외로 빼돌린 소득금액은 총 1조∼2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만 국세청은 국세기본법의 비밀유지 조항 등을 들어 조사대상 기업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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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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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사업구조를 위장해 국내 소득을 유출한 다국적기업 21명에 대해 국세청은 “글로벌 디지털 기업이 국내 사업장을 숨긴 채 우리나라 통신망을 이용해 국내 소비자로부터 창출한 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국외로 이전했거나, 거래실질을 위장해 과세를 회피하고 소득을 국외로 유출한 사례들”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글로벌 플랫폼 모기업 ㄱ의 경우 자회사 기능 전체로 보면 이 회사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업활동을 수행하므로 국내 사업장을 등록하고 국내 사업 수익 전체를 신고해야 하는데도 자회사를 쪼개 각각 단순 서비스제공자로 위장하면서 세금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거래·실체·사업 구조를 인위적으로 설계해 사용료 및 배당소득 원천징수를 누락한 외국계 기업도 확인됐다.

한편, 이번에 적발된 사례 중 국내 의류 수출기업 ㄴ사는 지배주주의 자녀 명의로 홍콩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제품을 수출하는 것처럼 꾸며 이익을 가족회사에 몰아줬다. 지배 주주 일가는 이렇게 빼돌린 돈으로 해외 주택 27채를 사들이고 여기서 발생한 임대 소득세도 내지 않았다.

또 외국계 은행 출신인 사모펀드 운용사 대표 ㄷ씨는 국내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얻은 이익 대부분을 자신이 소유한 조세 회피처 내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받아챙겼다. 통상 사모펀드는 기업 매각 등을 통한 투자수익의 20%가량을 성공보수로 받는데, 국내 펀드운용사엔 성공 보수의 3%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외의 자기 몫으로 슬쩍 빼낸 것이다.

국세청은 2019∼2021년에도 역외 탈세 세무조사를 통해 3년간 총 4조149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세무조사 1건당 과세액은 역외 탈세가 68억1천만원(2021년 기준)으로 일반 법인(9억8천만원)보다 7배 정도 많다. 다국적 기업 등의 대규모 조세 회피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은 “올해부터 역외 탈세 세무조사 부과세액을 내부 성과지표로 선정해 역외 탈세 대응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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