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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제주 폐업 카센터 근로자 63%가 정비업계 맴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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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 155명 진로 추적해보니

“새 직장서도 감원·폐업 위기”

제주도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해 온 30대 A씨는 지난해 1월 자동차 종합정비소를 차렸다. 도내 전기차가 급증하면서 폐업하는 기존 정비소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정비소 업주들도 전부 말렸다. 그러나 A씨는 ‘내 가게를 갖는 것이 꿈’이라며 그동안 모은 돈에 대출까지 더해 개업을 밀어붙였다. A씨 정비소는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그해 12월 문을 닫았다. 장비는 헐값에 처분됐다.

A씨 사례는 전기차 보급 확대로 위기에 몰린 제주도 자동차 정비업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은 제주도에서 2016~2022년 사이 폐업한 정비소 근로자 155명의 진로를 고용보험 자료를 통해 추적했다. 이들은 도내 정비소 44곳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155명 중 97명(62.6%)은 업계를 떠나지 못하고 다른 정비소로 이직했다. 박세정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이들은 새로 옮긴 정비소에서도 감원이나 폐업으로 실직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29명(18.7%)은 정비업계는 떠났지만 렌터카 업체, 타이어 전문점, 자동차 판매점, 자동차 부품 판매점, 차량용 가스 충전소 등으로 옮겨 자동차 관련 산업에 계속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일부도 전기차 확대에 따른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차량용 가스 충전소도 2030년까지 올해 대비 매출액이 절반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55명 중 20명(12.9%)은 정비소 폐업 이후로 더 이상 고용보험 자료에 잡히지 않았다. 실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은퇴, 학업, 전업 주부 전환 등으로 노동 시장을 떠났을 수 있다. 새 일자리가 고용보험 미가입일 가능성도 있다. 단 9명(5.8%)만이 자동차 산업과 무관한 분야로 이직했다. 식품 제조업, 건설업, 부동산 관리 등이다.

정비소 업주들도 업계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영업 중인 업주 266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조금 넘는 145명(54.5%)만이 업체를 유지하겠다고 답했고 83명(31.2%)은 폐업하겠다고 했다. 업종 전환을 고려하는 경우는 36명(13.5%)이었는데 이 가운데 20명(55.6%)이 자동차 소모품 판매업체, 세차장 등 자동차와 관련한 일을 계속 하겠다고 했다. 전기차 전문 정비 공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업주는 1명에 불과했다. 박세정 부연구위원은 “전직 훈련, 은퇴 설계 등 종사자 개인 사정에 맞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계속 어려워지는 기존 자동차 정비업계를 전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제주=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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