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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또 응급실 ‘뺑뺑이’로 환자 사망, 나태한 의료 행정이 부른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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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대구에서 10대 학생이 도심에서 응급실을 찾아 떠돌다 구급차에서 숨진 사건과 관련해 지역 의료기관들이 응급환자 이송체계를 개선하기로 했다. 사진은 119구급차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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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새벽 경기도 용인에서 차량에 치인 70대가 수술 가능한 병원 중환자실을 찾다가 2시간여 만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급대원들은 신고 접수 10분 만에 이 환자를 구조해 인근 대형 병원 11곳에 이송 여부를 문의했으나 중환자 병상 부족을 이유로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사고 발생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의정부의 한 병원이 수용 가능하다고 했지만 환자는 이송 중 구급차 안에서 심정지를 일으켰다.

최근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을 찾아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도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학생이 2시간 동안 응급실을 돌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국민소득 3만불 의료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원시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주변에 대형 병원이 수두룩한데도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국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문제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는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들이 중환자 병상을 의무적으로 1~2개씩 비워두도록 하고 이를 보상해줘야 한다. 그래야 응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즉각 수용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구조대원들이 계속 병원에 전화를 돌려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묻는 것도 한심한 일이다. 각 병원이 가용한 의료진·병상 정보를 전산망에 올리게 하고 구조대원들이 응급환자 상태를 입력하면 수용 가능한 병원이 즉각 나오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어려운 일인가. 대구시가 지난 3월 10대 사망 사건 이후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이를 다른 시·도로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벼운 경증 환자들이 대형 병원 응급실로 몰리면서 정작 중증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응급실 과밀화 현상도 심각하다. 응급실을 이원화해 걸어서 들어오는 환자는 경증 응급실을 이용하게 하고 중증 응급실은 구급차에 실려오는 환자만 받아야 한다. 선진국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얼마나 어려운 문제라서 아직도 안 하고 있나.

의사들이 위험한 응급 수술을 기피하는 것도 문제다. 응급 수술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지원 강화, 진료 결과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법적 책임 감면 등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라고 있는 부처가 보건복지부다. 그런데 그 일을 하고 있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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